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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겨울과...일상(5)


BY 들꽃편지 2001-03-01

가방에 작은책 한 권씩을 넣어 가지고 다닌다.
오늘 가방속에 있는 책은 앵초꽃이 화려한 좋은생각 3월호다.
버스안 내 자리에 앉아 첫장을 넘겼다.
이슬먹은 새싹. 녹차잎을 따고 있는 두 아줌마.분홍분홍 진달래.
책 갈피갈피마다 봄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려 그려, 오늘이 2월의 마지막날이지.
고럼 고럼, 겨울은 이제 한물간 것이여!
바람은 아직 겨울옷을 벗지 못하게 만들지만
그늘진 귀퉁이마다 겨울의 잔해가 덕지덕지 남아 있지만,
내일은 3월이라고, 달력이 유채꽃을 이마에 붙이고 유유히 서 있을테
까.겨울 너는 꼼짝없이 주저앉아 일을 것이구만.

한복집 바닥엔 살구색 한복천이 길어질대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할머니 네분이 살구빛으로 한복을 똑같이 맞췄다고 했다.
'봄바람 너울너울 나부끼는 살구꽃잎처럼
봄길따라 어디를 가시려하나
봄볕에 그을리고 타들어가는 여자마음.
나이는 저승길이 내일모레라지만
마음일랑 탓하지마라 부질없다 하지마라.'

오후내내 말을 하기 싫었다.
지난 겨울의 슬픔이 가슴아래 앙금처럼 남아 있다가
한 가지 생각에 뒤집어져 진정이 되질 않았다.
쓰린 가슴으로 창가에 눈을 하염없이 바라 보았던 지난 겨울.
이제 가면 그만인 것을 뭔 어리석은 미련인가 말이다.
다시 올 겨울은 지난 겨울보다 덜 힘겹길 바랄뿐.

아이들 간식을 사 가지고 집에 오니
꽃씨 한 봉투가 내 이름을 달고 도착해 있었다.
채송화라고 자기 이름을 밝히고 말이다.
입바람을 훅 불면 날아가는 먼지같은 씨알.
겨울 사이 죽은 식물은 뽑아내고 채송화씨를 털어 넣고
그 위에 흙을 살살 덮어 주었다.
죽은 것은 사정없이 잘라내고 뿌리채 뽑혀지는 것.
삶이란 그래 버릴 건 버리고 잊을 건 잊어야 하거든.
살아서 내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만을 취하게 되거든.
죽은 시간은 이미 과거잖아.
비록 흔하고 잘디 잔 씨앗이지만 살아 있는 시간이거든.
살아있음으로 해서 내일이 있고, 그것이 지금의 내겐 가느다랗게
숨쉬고 있는 기쁨이잖아.

햇볕이 잘 들고나는 곳에 채송화 자리를 만들었다.
앉은뱅이 채송화꽃은 야들야들한 색색의 꽃잎을 가지고 있다.
어느날 어떤색으로 꽃이필까?

먼 길을 돌아 겨울을 떠나보내며 스텐드 불빛아래 엎드려 있었다.
그 흐리고 답답한 불빛아래 내가 살고 있었다.
이제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넓은 빛을 받으며 의자에 앉고 싶다.
의자에 앉아 등뒤의 지난날은 뒤돌아 보지 말고,
허리 곧게 세우고 다리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는 마음이고 싶다.
보내지 않았지만 겨울은 떠났고,
기다리지 않았지만 봄은 내 팔에 팔짱을 끼었다.
내일부터 봄은 성큼성큼 걸어 가겠지.
나도 봄따라 보조를 마추려면 뛰어야 할거야.



어느날,내 마음이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애절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날,내가 누군가의 모두를 이해하고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그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어느날,내 눈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면 이 시간은 이 세상에
서 가장 놀라운 시간이었습니다.
- 좋은생각 3월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