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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설을 머리에 이고


BY wynyungsoo 2002-01-05

"어머! 눈이 그새 많이 쌓여있네요?!" 어제는 아침부터 괜히 기분이 저조하고 음성마저 착 가라앉는 느낌에 이유도 없이 영 기분이 아니올시다. 해서 난, 오전 일들을 마무리하고 약수터로 향했다. 칠 흙 같은 하늘에선 잔 설이 조금씩 뿌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시야를 가리며 쏟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굳은 날은 약수터에는 인적이 드물다는 생각이니 잿빛내심을 풀어보려는 심산으로 서둘러서 약수터를 올랐다.

약수터를 오르면서 욕심으론, 아무도 없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는데 제일 높은 곳의 약수터에는 두 사람이 물을 받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남정네이기 때문인지 순간 움칫해지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해서 난 초면인데도 얼른 목소리 톤을 높여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니 중년을 훨씬 넘게 보이는 한 분이 물을 받는 도중인데 "어유 아주머니 통이 좀 작으면 양보를 해 드리련만..." 하면서 괜히 미안한 눈치를 보인다. 하니 난 두려워했던 마음에 나 또한 미안해서 "아유, 아닙니다. 어서 받으십시오?" 하곤 물통을 다음 차례에 놓고 운동기구들이 나열해 있는 자리로 가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철봉들에 매달려서 소리 없이 과묵하게 내리는 잔 설을 올려다보니 회오리바람의 율동으로 미세한 먼지가 이는 듯한 시각으로 다가오며 머리가 어지럽게 느껴졌다. 해서난, 고개를 원 위치로 하고 운동을 계속 반복하면서 척추의 돌출 된 연골을 강화운동으로 다독이면서도 온 몸으로 받아 머리에 인 잔 설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으며, 상기된 양 볼에 내려앉는 잔 설의 차가운 미소도 상큼하니 마음에 와 닿았다. 철봉 운동을 할 때는 입으로 숫자세기를 한 100번을 세기로 목표를 이미 세워놓고 시도를 하는데도 계속 실패는 연속이다.

해서 철봉에 매달려서는 숫자를 100번까지 채우려고 힘이 들어도 어금니를 악물고 꼭 시도를 하려는데 매번 숫자 까진 못 채우니 기록을 깨곤 떨어지기 일수다. 그래도 반복 시도를 하면서 목표의 숫자를 채울 요량으로 매달린 상태에서 제건 체조 노래도 흥얼거리며 나만의 개성을 살리며 애써 마음을 비우려고 있는 푼수 없는 푼수를 동원하고 있다. 그러다가 좀 쉬었다가 할 요량으로 약수 물 터로 가서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내 물통이 아주 얌전하게 물을 받아 마시고 있지 않은가! "아니! 그 친절하던 남정네는!?" 하곤 두리번거리다가 하산하는 길을 따라서 내려다보니 아니 글세, 그 분이 벌써 저 만치 내려가고 있는 뒷모습이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아마도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그냥 물통을 대놓고 내려갔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죄송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친절한 분에게 감사합니다. 란 인사도 못 드린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늘 약수터를 오르는 분이니까 다음에 인사를 드리면 되겠지! 하곤 생각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여전히 뿌연 하늘에서는 잔 설의 미소가 나의 예쁜 콧등을 간질 업히며 반겼다. 이젠 이 거대한 공간 안에 조막 막한 나 호박꽃 여심뿐이다. 세상에나 얼마 만에 맛보는 나만의 공간인가! 그것도 잔 설이 나부끼는 운치만점의 공간인, 이 공간에서 몇 시간의 낭만을 만끽할 것을 생각하니 글세, 뭐랄까!...

환희?! 희열?! 아~ ! 너무 좋다.~ ! 갈 내내 만추의 가자미 눈빛에 모두 옷을 반납한 앙상한 나뭇가지들에는 대신 흰 백의 설 옷을 입히지 않았는가! 여기에서 더 멋지고 근사한 나만의 공간은 없으리란 생각이니! 나 이 호박꽃 여심은 내심깊이에 멍울 졌던 잿빛 미소들을 말끔하게, 싹 쓰리, 잔재 없이 팍팍 토해내고 말리라 하며, 나는 철봉 틀에 매달려서 고래고래 테너 톤으로 "♬그 겨울의 찻집♪~"을 열창하며 자신과의 싸움으로 언쟁을 계속하며 스트레스를 토해했다.

매번 한 5일 간격으로 약수터를 오를 적마다 반겨주는 까치도 잔 설이 내리는 눅눅한 날씨라 그런지! 두문불출이니 까악~ ! 하며 반겨주는 까치의 음률이 그리워지는 날이기도 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맨 팔목으로 올라왔으니 정확한 시간을 모르겠고, 대충 한 4-5시간은 경과했으리라는 예견임에 손수레에 약수물통을 싣고 세월아! 내월아! 하고 발믐발믐 가파른 길을 내려오는데, 저온의 날씨에 내리는 잔 설의 흔적은 별로 미끄럽지도 않고 차곡차곡 다져져서 낭만을 즐기기에는 매력만점이니, 눈길도 이 호박꽃 잿빛미소를 다독여주는 느낌으로 다가오니 더 없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온 산하가 잔 설의 흔적으로 설 옷을 입은 나뭇가지에선 이따금씩, 쌓였던 잔 설 덩이가 툭툭하고 설원으로 다이빙하는 모습은 마치 이미 고인이신 "육영수 여사님의 목'을 연상하게 하는 고고한 학의 율동으로 다가왔다. 참 좋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이 순간 너무 행복하니까 겁도 난다. 하니 내심으로만 행복을 삭혀야지! 또 방해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난 얼마나 좋은지! 그냥 눈가에 이슬이 맺히도록 내심까지 촉촉이 젖어드는 느낌임에 어제 그 기분을 무어라 형용할 수 없으리 만치 황홀하기까지 했었다.

비록 단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찡한 감동의 희열을 만끽하고 내려오는데, 주위 환경이 얼마나 고요하고 조용한 분위기인지! 야산 지킴이 들의 과묵한 표정과, 겸허한 자세로 동면의 꿈나라 여행길 행로에 혹여 누가 될까봐서! 달콤하고 꿀 맛 같은 잠이 깨게되면 어쩌나싶어서! 난 손수레가 토해내는 음률도 조심스러워서 살살 달래가며 무게실린 손수레를 끌어안다시피 하면서 긴 시간을 헉헉대며 약수터 초입을 빠져 나와서는, 긴 호 홉으로 한숨을 내쉬곤 역으로 눈을 돌려서 설경을 올려다보았다.

눈꺼풀을 치켜 뜨고 올려다보며 살피니, 흐뭇한 미소로 동면을 취하는 잔 풀과 나무들이 이 호박꽃 미소에게 살랑살랑 손짓하며 "행복하세요?" 하고 미소로 답례를 주는 것 같은 시각으로 다가왔다. 해서 나도 내심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윙크"로 기약하곤 손수레를 끌고 신나게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심신은 마치 함박눈의 춤사위처럼 창공을 훨훨 날아오를 것 같이 새털 같은 느낌이니, 기분은 최상이며 석 청 같은 보약을 먹은 느낌이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