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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78) *화를 다스리는 법*


BY 쟈스민 2002-01-05

언젠가부터 아래층에 새로 어떤 이들이 이사를 왔는데,
날이 날마다 들려오는 그 집 내외간의 다투는 소리가 우리집까지
들려오곤 하였습니다.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고, 나중엔 참으로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만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
나름대로의 생각을 그냥 그렇게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우리집에 부부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저녁을 잘 먹고나서 컴 앞에 앉아 있는 나를 황급히 불러대는
남편에 이끌려 거실로 부리나케 나와 보니 TV를 가리키며 저것 좀
보라고 소리쳤습니다.

아주 큰 소리로 ...

화면속엔 아리따운 여자가 매끄러운 얼음을 지치며 스케이트 타는
모습외엔 별로 눈에 띌게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계속 저것 좀 보라고 외쳐댔습니다.

뭘 보라는 거야 ... 투덜거림 뒤로 자세히 보니 경기장 바깥으로
하얗고 가지런히 둘러쳐진 행사용 천막이 보였습니다.
참고로 남편은 이벤트용 행사용품 임대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고 있어서인지 남편은 마구 자랑스럽게 외쳐댔습니다.

난 무덤덤한 표정으로 괜히 사람 놀래킨다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컴 앞에 앉았습니다.
남편은 그런 내가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마도 "아 정말 대단하군요...
저렇게 큰 행사를 당신이 맡았다니 ..."
뭐 그런 말을 기대하고 나를 불렀는 가 봅니다.

나는 그가 하는 일이 보잘것 없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늘 그런 일련의 행사가 그의 일이고 보니 별로 큰 놀랄일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 뿐인데,
그에겐 그 일이 무척이나 자랑하고픈 일이었나 봅니다.

저녁을 먹고 설겆이가 시작되기전 잠깐 컴 앞에 앉은 사이 방금 먹은 밥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한바탕의 소용돌이가 지나간듯 했습니다.

다시 부엌으로 나와 설겆이를 마치려 하니 남편이 설겆이를 도와주려는지 부엌에 있더군요.

그 순간 베란다쪽 거실유리문이 약간 열렸길래 문 열였네 ...
하며 문을 닫으려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막 화를 내더니 그 문을 덜 닫히게 닫아둔 게
자신이라고 힐책이라도 한 듯 내 말을 곡해해서 듣는 거였습니다.

내참 기가 막혀서 ...

10년을 살고도 나를 그렇게도 모를까 ...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났습니다.

화가 났을 때 그와 내가 다른점이라면 나는 그 화를 혼자 조용히
앉아 삭히는 반면 그는 마치 옆에 있는 사람을 다시 안볼 것 처럼
있는데로 목소리를 높여가며 정신이 없게 합니다.

결혼하고 10년을 살면서 내가 그에게 고쳐서 살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단 한가지가 있다면
아마도 자신의 화를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좀 바꾸었으면 하는 거였습니다.

함께 사는 세월만큼 부부란 정이 쌓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정이란 것도 그렇게 한번씩 회오리 바람이 일고 나면
왜 그리 쉽게 식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드는걸까요?

나는 한번도 그를 무시하거나, 내가 잘났다고 우쭐대거나 하진
않았는데도, 그는 왜 그런지 항상 그런 맘이 드나봅니다.

그래요...
다른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함께 사는 일은
늘 상대방의 기분을 염려해서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난 천성적으로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란걸 그도 이젠 알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예요.

그렇지만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곁에 있는 이에게 어떤 위화감이 느껴진다면 더이상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은게 사람의 심리가 아닐까 해요.

물론 어느만큼 시간이 흐르면 서로의 잘못을 뉘우치며 서로에게 사과를 할 수는 있겠지요.

사과라는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로간의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남편 혼자서 마구 내닫는 감정의 기폭에 나를 맞추는 일이
10년을 산 지금도 어렵기만 한 걸 보니
얼마나 더 살아야 그런 불협화음이 사라질까 아득하기만 합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좀더 냉철한 이성을 잃지 않고, 차근 차근하게 무슨 문제이든
해결해가는 그런 지혜로움일 것입니다.

이웃집에서 나는 다투는 여자의 목소리가 과히 듣기 좋지 않음을 느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싸움이란 걸 하고 살았나 ...
쉽게 인터폰을 들어 그 집에 전화를 걸기보다는 나를 돌아보곤 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

남편은 아직도 자신이 화나면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나 봅니다.
감정이 앞서다 보면 누구나 대화가 어려운 듯 합니다.

내가 그에게 사과를 하고, 그의 오해를 풀면 그만이라고 ...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건 애초부터 그런 나쁜 마음을 갖지 않은 나를 인정하는 듯한
그런 사과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지요.

아침부터 이런 글을 쓰는 제 마음이 몸시도 무겁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미안함이 입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사소한 부분에서 조차 생각의 차이가 뜻하지 않은
다툼을 일게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더 많은 걸 바라려고 하지 않는 반면,
그는 아직도 내게 바라는 게 많은 모양입니다.

그만큼 애정의 깊이가 깊어서인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주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되다가도, 이렇게 한번씩 폭풍우가 지나가기도 하는 게 부부간의 조화일수도 있겠지만

일년내내 잔잔한 바다 같기만 하다면 너무 재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뭏튼 서로 조화롭게 사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년초부터 너무 어려운 과제를 받아든 건 아닌지 내심 걱정스럽습니다.

무겁기만 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