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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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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이야기...[15]어머니의 아리랑 고고


BY ns05030414 2001-12-20

명절 날은 남자들에겐 즐거운 날이었는지 모르나 여자들에겐 힘든 날이다.
음식 준비야 손님 대접이야 정신 없이 바쁘기 마련이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다.
명절이 지났다고 해서 친정 나들이를 마음대로 할 수 도 없다.
그래서였을까?
명절 뒤엔 동네 아낙들이 모여 놀았다.
그 동안 쌓인 것들을 풀어내듯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온 동네 아낙이 다 모여 춤 추고 노래 하며 놀아도 그 중에는 춤도 노래도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 둘, 세 사람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할아버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날마다 체통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소리를 듣고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머니랑 작은 어머니들은 다른 사람이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을 구경만 하였다.
다른 아줌마들이 춤판에 억지로 끌어다 놓아도 그저 말뚝 같이 서있다 제 자리로 들어가 버리곤 하였다.

우리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나서 동네 아낙들은 좀더 자유스러워졌다.
예절과 격식을 따지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명절 뒤에 모여 노는 것도 누구네 집 마당이 아니고 동네 가운데로 장소가 바뀌었다.
어디서 누구에게 배운 솜씨인지는 모르지만 제법 풍물을 다룰 줄도 알았다.
흥겨운 풍물소리 가운데 여자들은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었다.
간혹 어머니도 끼어 들어 손을 들어 올리기도 하고 다리를 들썩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색하기만 하였다.
다 늙어서야 처음으로 들썩거려 보는 팔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진 않았으리라…

그렇게 몇 년이 또 흘렀다.
이모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니 마을 아낙들의 춤판이 한창이었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밑이었다.
명절이면 마을 이곳 저곳을 다니며 굿 판을 벌이던 남자들이 마무리 굿 판을 벌이던 곳이었다.
느티나무를 돌면서 징 소리, 장구 소리, 꽹과리 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마지막 신명을 올리던 곳이다.
그만큼 신성시했던 곳이었고, 여자들에겐 놀이공간으로 허용되지 않았던 곳이었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만큼 우리 마을의 풍속도 변하고 있었다.
느티나무 밑에서 노는 것이 여자들에게도 허용된 것이다.
느티나무 밑에서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여자들의 모습이 아름다워보이진 않았으나, 그래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여권 신장의 의미에서 본다면….
그 속에 어울려 어머니도 춤을 추고 있었다.
못하는 술도 한 잔 한 것 같았다.
항상 어떤 틀 속에 갇혀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던 어머니인지라 그 모습도 보기 좋았다.
나랑 같이 있던 사촌 동생이 말했다.
“언니, 이모 춤은 아리랑 고고다.”
어머니의 춤은 아리랑도 아니고 고고도 아니고 이상 야릇하다는 뜻이었다.
춤을 추어 본 적이 없는 지라 장단에 맞춰 몸을 놀릴 줄을 모르고 있었다.
팔은 팔 대로 다리는 다리 대로 따로 놀고 있었다.
아마 어머니의 마음도 당신의 춤사위 같았을 지 모른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따라가기 힘들어 혼란스러워 한 것은 아닐는지…

가끔씩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서 따라가기 힘겹다.
그럴 땐 느티나무 밑에서 춤을 추던 어머니의 ‘아리랑 고고’를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의 내 삶도 어머니의 ‘아리랑 고고’같은 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