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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그리운 12월


BY 얀~ 2001-12-19

10년을 돌아보면, 가슴 절절한 설움도 있고, 행복한 미소도 있고 그렇습니다. 내년 4월이 되면 결혼 10년입니다. 10년이란 의미는 그런 겁니다. 지내온 10년은 기반을 잡기 위한 누에고치라면, 이젠 벗어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날아야 한다고. 몸은 붙들려 있어도 정신은 창조를 위해 자유롭게 날아야 한다고.

모임이니, 행사장에 다닐 여건도 어렵지만 가끔 책을 챙겨주시고, 대화도 나눌 사람이 생긴다는 건 크나큰 행복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시하고 친하다니, 의아해 하시고 좋아도 해주시니 부족한 맘에 얼굴이 붉어집니다. 사실 애 키우며, 일하는 여성일 경우 얼마나 고통스런 전쟁이었는가를 알 겁니다. 녹슨 머리로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직 멀게만 느껴집니다.

복잡한 것보단, 단순한걸. 튀는 느낌보단 익숙해진 느슨함. 그런 것들이 가깝고,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럴 땐 노래를 듣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글보단 음악이 좋더군요. 교육이나 지식이 딸려도 좋아 할 수 있으니.

나무 중에 소나무를 좋아합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늦은 밤, 소복이 눈을 이고 있는 소나무를 보며 노래를 들으면, 포근해 집니다. 사계절 바라 볼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하루 12시간은 일터에 매달려 있어야 하니 녹색 공간이 그립거든요. 남편의 배려로 작업실을 만들었고 앉으면 소나무가 보입니다. 책 한 권 없는 척박한 작업실이지만. 조선소나무의 자태는 멋집니다. 사람은 간혹 말도 탈도 나지만 나무는 언제나 말 없이 보듬어 줍니다. 그래서 소나무가 친구보다 가깝다 생각하곤 합니다. 소나무보다 대나무를 좋아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늦게 책을 받았습니다. 남성경님의 '한 사람을 위한 시'입니다. 천천히 보려고 앞에 놓았습니다. 가져다 주신 분과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정말 따뜻하고 포근한 맘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남편이 전화를 걸어서, 지역모임 행사장에 와서 함께 집으로 가자고 하여, 행사장에 갔는데, 회장님이 맥주를 사주신다하여 빈속에 맥주를 마셨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고, 저녁도 못 먹은 빈속이었지만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들어서니 아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와서 술 한잔 받으라고 했지만, 싫었습니다. 아니라고 두서너 차례 거부의 손짓을 보냈습니다. 나중엔 과일을 보내더군요.
초창기 장사를 시작할 때, 지역 자율 방범대장으로 있던 분은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장사를 떠나서, 이 지역 사람으로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실천하는 게 좋지 않겠어. 남편에게 말해봐.'라고.
과일을 시켜준 분은 '장사 해 먹으려면 이 모임에 들어와'였고.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장사를 하지만 장사를 위해서만 살고 싶진 않다고. 남편은 열심입니다. 수해 입은 논에 가서 거들고, 엎친 벼를 묶어주러 가고, 한 달에 한번은 가전 수리 봉사를 갑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회장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내조 없음 못하지.'
말리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잘 다녀오라고 응원까지 합니다. 남편이 나서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 집니다. 그래서 잡아 놓을 수 없지요.

10년의 세월에 기억에 남는 분은, 늦은 밤 작업해 농수산물 시장에 다녀오며, 오이 한 박스 내려줬습니다. '늦게 세탁기 수리해줘서 고마워'라며. 건네준 정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대청댐 깊은 곳에 사시는 할아버지입니다. 남편이 수리비를 받지 않는다고, 아내가 임신 중이란 말에 복숭아 젤 좋은 놈으로 골라 따주신 분입니다. 입덧이 심해 고생하던 난, 잘생긴 복숭아 이가 아프도록 먹고 애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정을 느끼고, 온기에 살았습니다.

정이 그립고, 온기가 그리운 12월입니다. 남편의 일을 도와줘야겠습니다. 취중에 연하장을 보내고 싶답니다. 작년에 사 놓고 못 쓴 연하장이 생각납니다. 구입해 놓고 정신 없어서 못 쓴 연하장을 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