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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의 굴레"


BY 리아(swan) 2000-10-16

"맏이의 굴레"

내게는 동생이 셋 있다.
큰 동생은 마음이 너그롭고 남자다워서 든든하고
둘째 동생은 똑똑하고 뭐든지 자신감 있는 모습이 좋고
막내는 다소 덜렁대고 오빠들을 믿고 철없이 구는
모습이 때로는 미웁지만 그런대로 귀엽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3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4남매의 맏이였던 나는 중심축을 잃어버리고 방황을 했다.
겨우 대학은 입학은 했지만 내게는 대학의 낭만이나 자유로운 친구들의
사귐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두 동생을 데리고 생활을 해야했기에 나에게는 모든게 힘겨웠고
내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한창 사춘기인 큰 동생과 초등학생인 둘째의 보호자가 되어야하는
부담감에 쌓여있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등록금을 미루지 않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분이라
생활고에는 시달리지 않았지만 학생인 내가 두 동생의 보호자로
학교에도 가야했고 동생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현실이
내게는 족 쇠와 같은 것이었다.
강의가 없는 날은 친구들과 미팅도 하고싶었고 보고싶은 영화도
실컷 보며 자유로와 지고 싶었는데 초등학생인 어린 동생이
유일한 보호자인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난 어디에도
마음 편히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가슴에 엄마의 정으로 채워져야 할 빈 가슴을 더욱 비 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인 것 같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부모님의 성함을 한문으로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 준 적이 있었다.
난 어리석게도 그 아이가 평소에 계모를 친 엄마처럼 따르는 모습이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인해
친 엄마의 성함을 한문으로 적어주었다.

아마 담임선생님이 부모님의 성함을 가지고 쪽지시험을 봤던 모양이다.
동생은 반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동생에게 반장이란 녀석이 어머니 성함도 정확하게 모른다며
야단을 맞고는 열이 오른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가방을 내팽개치고는 나에게 따지고 들었다.

누나는 왜 내게 엄마 이름을 엉터리로 가르쳐 주어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만들었냐며 펄쩍 펄쩍 뛰며 울부짖는 것이었다.
난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의 어리석은 소치보다
아버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어떤 반발심과 어린 동생의 맹목적인
행동이 나를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참지 못한 나는 동생의 종아리를 걷고 매를 쳤다.
어린 동생의 종아리에 매의 자국이 내 가슴에 몇 배의 상체기 를
남기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나도 함께 울면서 동생의 종아리를
친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녀석도 고집이 있는 녀석이라 아프다는 비명대신
"누나 나빠 누나 미워"만을 외치는 것이었다.
그런 후 나는 방바닥에 쓰러져 통곡을 하고 말았다.
오히려 어린 동생은 그런 나를 끌어안고
"누나 내가 잘못했어 나 말 잘 들을 께"
그 아이는 말썽을 부려 내 속을 썩이거나 매를 맞은 적이 한번도 없는 아이였다.
언제나 자기 할 일을 너무나 알아서 잘하는 그런 아이였다.
난 동생을 끌어안고 함께 펑펑 울어버렸다
난 자신의 어리석음에 부끄러워서 울었고 맏이 라는 이유로 학부형의
역할까지 맡긴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울었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정이
그리워 울어버렸다.

어린 동생에게 씻지 못할 과오를 남긴 그 날 이후 나는
다시 호적에 기재된 새엄마의 이름을 동생에게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 아이가 자라게 되면 저절로 알아질 것을 나는 그렇게
속 좁고 철없는 짓을 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나자신이 경직된 생활을 했지 않았나 싶다.

동생들은 동생들 나름대로 잘해나가고 있는데
나 자신이 내가 동생들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큰일날 것 같은 착각에
빠져었던 것 같다.
아직은 돌팔이인 한의사 동생은 종종 전화를 해서 내 건강을 염려하고
요모조모 챙겨주는 정 깊은 아이다.
그런 동생이 대견하고 든든하다.
이 좋은 계절에 그 동생에게 잘 어울리는 짝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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