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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의 말이 필요해


BY 얀~ 2001-12-18

어둑해지는 창을 내다보며 패배자 같은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다. 응원의 말이 필요해, 스스로 감동을 쏟아 놓으며 날 달랠 수밖에 없다. 내가 잘하는 게 뭐지?

어머니 생신을 준비하기 위해 집에 들어선 시간, 밤 9시다. 이것저것 챙겨 놓고 잠든 시간 11시다. 일찍 자야 피곤이 덜하겠다 싶어서다. 잠을 자면서 악몽에 시달렸다. 일어나고 보면 꿈이고, 또 잠들면 꿈 때문에 깨고, 시험 앞둔 학생처럼 시달렸다.

일어나 세수를 하고 부엌에 들어섰다. 참석인원 어머니와 우리식구 넷, 작은집 넷, 큰시누 셋, 작은시누 셋, 총 15명의 조촐한 생일 상을 차렸다. 여행이나 일이 있으면 꼭 생리통과는 겹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요즘 얼굴이 엉망이다. 커피와 술이 문제인 거 같다. 피부과를 다녀도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 남편이 담배를 못 끊는 이유를 알것 같다. 일하다 잠시 앉아 마시는 커피는 더 좋다. 애인 같다. 얼굴은 엉망인데도.

막내 시누가 눈물을 보인다. imf 사태이후 하던 장사를 정리하고, 신발가게에 일을 나가시고, 무엇인가 해보려고 노력하는데 힘들어 보이신다. 요즘 웃을 일보다 힘들고 고통스런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씩씩하고 당찬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사실 내 얼굴을 보고 어머니 때문에 그런가 싶어 우려를 하신 모양이다. 그래서 더 웃어야 했다. 남편의 험담도 하고, 신나게 호탕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말라며.

철이 들면서 울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사실 베개 끌어안고, 이불 쓰고 울고 싶을 때도 있다. 남편은 내가 강한 사람으로만 보이나보다. 그게 불만이긴 하다. 케이크가 빠졌는데, 밖에 갔던 준 청년 조카 둘이서, 제과점에 가서 사왔다. '고마워' 인사를 하고 상을 펴고 초를 꼽았다. 아들 녀석이 초에 대해 묻는다.
'큰 초는 열 살을, 작은 초는 한 살이야. 큰 초 일곱에 작은 초 셋이란다.'
푸키키키, 난 울고 싶다. 나도 속없이 살고 싶다. 조롱박 씨앗 다 긁어내고, 술 박아지나 하고 싶다. 취해 살고 싶다. 고통스럽고 힘든 일, 자식에게 줘버리고 세상 물정 모르니 얼마나 편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 철부지인 어머니가 물가에 내 논 어린애 같아서 서럽고, 힘겹다. 생일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푼수처럼 웃는다. 웃어야 모두들 편하리란 생각에 까르르~~깔깔 웃는다. 일년에 한번 돌아오는 생일이지 않은가. 기쁘게 즐거운 맘으로 하자. 스스로 응원을 한다. 참 대견해라며.
'새벽에 공부하는 어머니 모습 보기 좋아요' 칭찬을 한다. 이른 셋 나이에 책을 보시며 공부하는 어머니 흐뭇하지 않은가.

조카가 빌려다 논 비디오를 본다. 엽기적 그녀이다. 청소를 마치고 오후 7시부터 매취순 한 병과 포두주 한 병을 마셨다. 젊었을 때가 있었지, 하고픈 말 다하고, 술김에 퍼져 울기도 하고, 분풀이 못해 패기도 하고, 내 느낌을 말하고, 철없이 행동하던 그 시절이 말이다. 술에 취해 잔디밭에 누워 하늘의 별을 볼 때, 내 바위 머리를 다리에 올려놓게 해줬던 그녀, 그녀의 이름 송이네, 참 얼굴이 기억에 없네. 사다리 들고 스피커 줄 자르던 그 때, 그립기만 하다. 정지한 시간, 지루한 시간, 무엇인가 필요해. 모두 떠난 이 늦은 밤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