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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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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73) *한해를 마무리 하며...*


BY 쟈스민 2001-12-17

엊그제 같기만 했던 한 해의 시작이 이제는 잊혀진 시간들처럼
우리네 곁을 떠나려 한다.

달랑 한장 남은 달력이 쓸쓸해 보여 새로 나온 달력 묶음을 등뒤로
살그머니 걸어보지만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은 세월의 빠름이
쓸쓸한 이름을 나에게 던져주고 있다.

뭔가 자꾸만 뒤돌아보아 지고...
뭔가 할일이 남아 있는 사람처럼 서성이는 내가 되어
어제는 괜스레 집안을 이리 저리 휘적이며 하루를 보냈다.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베란다 가득 키워온 초록 식물들도
어쩌면 지금의 내 맘처럼 조금쯤은 공허롭고 그럴 것 같아
따스한 온기를 더해주려 실내로 모두 이사를 시키며
나는 겨우내 함께할 친구를 맞는다.

여기 저기 틈새마다 식물들이 덩그라니 자리를 잡고 보니
좀 어수선해 보이기도 하지만 늘 눈을 편안하게 해 주며 바라보는
즐거움을 맘껏 선물해 준다.

콩나물 시루에 물 주듯 조루로 살살 물을 뿌려 주고, 잎사귀 마다
제모습을 찾기 위하여 닦아주고 분주한 손길을 놀린다.

나는 지난 한해동안 그 많은 친구들을 내 곁에 두려 한 만큼
주머니에 담아둘 새 없이 세종대왕을 떠나 보내느라 바쁜 한 해였던 같다.

한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도 나름대로의 포부와 계획으로 다부진 첫 발걸음을 떼었을 것이다.

시작이 반인지 너무도 빨리 한해의 저물녘에 다다른 나는
언제나 세월에 뒤쳐져서 살았던 것 같아서
아마도 내년에는 좀더 비슷한 속도로 흐르고 싶어할 것 같다.

이제 곧 한해를 마무리 하고, 또 한해가 시작되겠지.
하지만 난 초조해지고 싶지는 않다.

나이를 먹는 만큼 무엇인가 달라져야 한다는 일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그저 내게 주어진 삶 앞에 진솔하고, 겸허한 모습으로 언제까지나
나즈막히 살고 싶을 것 같다.

큰 욕심없이 한 해를 또 이렇게 살아낼 수 있음이 축복인 것을
내가 모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에 똑 같이 받아든 백지위에 난 무엇을 썼으며,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시켰을까?
그것은 또한 나만의 자유이며,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가끔씩 누구의 마음 아프게 한 일은 없는지 ...

이즈음은 그런 것들로 마음속에 작은 동요가 일고 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린 그저 다 알수는 없지만
살아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어쩌면 너무 충분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을 테지 ...

마지막 남은 한장의 달력 등뒤로 숨겨진
아직 열리지 않은 시간들이
내겐 왠지 아끼고 싶은 보석처럼 빛이 나 보인다.

정말 하루 하루를 그렇게 아끼고, 갈고 닦다 보면
조금쯤은 한해의 마무리가 덜 아쉽게 느껴질 수 있었을까?

소중하게 간직해 두었다가
정말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기 싫은 시간으로
아깝고 귀한 시간으로
내게 왔으면 ...
아니 내가 그렇게 맞을 수 있었으면 ...
그리고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

작은 소망 하나를
등뒤에 가려진 다가올 시간들 속에 담아내 본다.

그 소망뒤에 또 하나 작은 방이 있다면
아마도 나는 그 방에 이런 말들을 숨기고 싶을런지도 모른다.

조금더 절약하며 살 수는 없었니?
조금만 더 따뜻하게 너를 아는 모든이들을 대할 수는 없었니?
내 자신에게 되묻고 싶은 몇 가지의 물음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어 잠시 머물고 싶은 방 하나를 남겨두고 싶다.

완벽한 삶이 없듯이
언제까지나 그 비밀의 방이 비어있지는 않겠지마는
똑 같은 물음들을 내년에도 남길수 있지 않음으로
스스로 찾은 행복에 조금만 더 가까이 갈 수만 있다면 ...

나는 기꺼이 그 방에 조용히 남겨지기를 즐겨 할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 하며...
가끔씩은 부끄러운 모습으로 그 방에 남아 있기도 할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