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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싶다'를 읽고


BY 공주 2001-02-19

너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아주 아주 가끔씩 나는 나를 낳고 키우는 엄마를 놀라게 한다.
내가 춤바람이 들어서 백댄서가 되겠다고 기웃거릴때도 엄마는 놀랐고, 배우가 되겠다고 극단에 가서 빗자루들고 청소하러 다닐때도 엄마는 놀랐고 , 지금 내가 하고있는 직업을 최종 선택했을때도 엄마는 나에게 놀랐다.
너를 정말 내가 낳았니?
엄마는 알아도 나는 해답을 알수없는 질문을 엄마는 내게 도리어 하고는 했다.

대학원에 다니던 내가 수녀가 되겠다고 수도원 원서에 싸인하라고 내밀었을때, 엄마는 너무 기가 막혀서 웃으셨다.
엄마는 입에 풀이 붙어버렸는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가족들은 옆에서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오빠: 니가 수녀가 되면, 임마, 나는 추기경이야, 이 자식아.
여동생: 생각해보니까, 도저히 시집갈 자신이 없지?
아빠: 음……… 내 사촌중에 수녀 두명과 신부 한명이 있지. 너도 알지? 그 신부님은 아주 유명해. 어디 어디 (잊었다, 어딘지)”장” 이지. 울 친척중에 사회적으로 젤 유명해. (아버지는 무식하시게도 세속적으로 나오셨다.)

어쨌든, 당시 미국에 있었던 나는 한 미국 캐톨릭 수도회에 원서를 집어넣었다.
남들은 수도원의 대답을 한 2,3달쯤 있다가 받는다는데, 난 한달도 안되서 받았다.
불가함.
이유같은건 없었다. 그냥 불가란다.
내 평소행실을 봐서는 사실 별 불만을 터트릴 처지는 못되었다. 참고로 수도원 원서에는 각장 자질구레 조잡한 사생활 이야기를 잔뜩 써넣어야 한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약 6개월의 자숙 기간을 가지고, 다른 수도원에 다시 원서를 보냈다.
6개월의 자숙 기간동안 난 심혈을 기울여 내 인생 최대의 장문 편지를 쓰고있었다. 원서와 함께 보낼 나의 편지.
처음에는 솔직하게 나의 소신과 믿음, 나의 소망을 담담히 적어내려갔다.
근데, 아무래도 문란한 사생활때문에 영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약간의 사기성이 가미된 감동적인 명문장을 작성할 결심을 했다. 담백하게 곧장 말하는것보다는, 아름답게 반짝 반짝거리는 눈물없이 읽을수 없는 서정시같은 편지.
내가 알고있는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단어는 다 나왔다.
밀려드는 감동의 찡함을 위하여, 세심하게 --- 유혹적이고 재미있는 서두……….. 잔잔한 감동………. 눈물과 웃음……… 그리고 터지는 감동의 파도………… 그리고 가슴속에 파악------- 퍼지는 꿈결같은 결론. 저를 받아주세요…………..
그 분량은 작은 소책자 한권은 될 정도인 내 인생 최대이자 유일한 문학작품이였다.
난 암큼하게도 글쓰는 직업을 가진 친구에게 철자, 문법 교정까지 완벽하게 받아서, 아주 예쁘게 꾸며서 그 작품을 원서와 함께 제출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1달이 지나도록 ‘불가’라는 편지가 안오더니, 2,3달쯤 지나자 면접에 오라는 연락이 왔다.
1차 통과인 셈이다. 난 감사와 감동의 기도를 마구 마구 드렸다.

면접때 아주 얌전한 차림새로 갔다.
그리고 얌전한 척을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면접도중 내가 얌전과 내숭의 한계에서 허우적거린다는 사실이 금방 들어났다. 그래서, 막판에는 개성으로 밀고 나갔다.

그래요, 난 나이도 많고 수도자같이 안생겼지요. 하지만, 나같이 의외의 인물이 좋은 수도자가 되는것이랍니다. 수도자같이 생긴 사람들이 아니라니까요. 나같이 수도자같이 안생긴 인간들이 진짜 수도자가 된다니까요.

1차 면접이 지나면 2차 면접까지 남들은 5,6개월이 있어야 연락이 온다는데, 난 두달도 채 안되서 연락을 받았다.
불가.

많이 떠들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가까운 몇몇 나의 수녀 행각을 알고있는 사람들은 나의 불행이 코메디였다.
오빠: 웃기고 있어. 야, 임마, 니가 수녀하면, 이 자식아, 난 교황도 한다, 이 자식아. (이 자식은 맨날 이 자식, 저 자식이야. 자식, 내가 지 자식인가.)
여동생: 괴롭지? 시집갈 자신은 없고………. 어떻하니…….. 열심히 돈이라도 벌어.


아침…………
매일 아침…………
난 운전을 하며 직장에 가면서, 하늘도 보고 거리의 나무도 보고 기도도 한다.
그럴때면, 문뜩………… 난 수녀가 되고싶을때가 아직도 있다.

부억의 잔뜩 쌓인 설겆이, 빈통장, 직장의 밀려 터지는 일더미들.
무슨일을 하든 복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는 까만 수도복을 입고 있으면, 더 많이 쌓인 설겆이와 비다못해 빵꾸가 빵 난 통장과 더 산같이 일이 쌓여도, 사랑과 평화로 할수 있을것만 같다.
소년같이 천진하다 못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울 남편 돼지도, 나, 까만 수도복을 입고 있으면 더 사랑해줄수 있을것 같다.
아침 햇살과 교회의 종소리. 그리고 깊은 기도……….. 나 까만 수도복을 입고 있으면 온 몸으로 느낄수 있을것 같다.

운전하다 신호등에 걸려 차가 서면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 아침.
이 소중하게 주어진 아침.
까만 수도복을 입고 있는척 옆모양도 예쁘게 고개 숙여 뭔가에 귀를 기울여 본다.
(빵빵. 이 여자야, 빨리 안가!!! 정신차려!!!!! <-- 비록 이딴 잡음이나 뒤차에서 들릴지라도.)

최인호씨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싶고 수도자가 되고싶지만, 자기 가정이 수도원이려니 하고 산단다.
최인호씨는 어떨지 모르지만, 난 그게 안된다. 왜냐하면.
다시 말하지만.
난 무슨일을 하든 복장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복장이 안되잔아, 복장이.

불가 두번 이후로 한번도 입 벌려 말을 해보지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난 알지.
하늘도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