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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에서 삶의 이야기(15)


BY 영광댁 2001-02-18


설 명절을 다녀와서

혼잣말 (4)

아이들은 저들 숲 속의 방에 빠져들어갔고, 어머니는 아무리 청결히 해도 늘 당신의 머리카락이 빠져 있는 당신의 자리에 누으셨고, 오라버니는 옥상인가 아니면 들판에 서성이는 바람을 잡으러 나갔나 뱀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남편은 모두어 앉아 늦은 점심과 맥주 서너잔 먹고 통신만 안되는 pc두대를 손보고, 깨복장이 친구들과 하는 동네계에 참석한다고 해걸음이 되어 사라졌네요. 그는 해마다 똑같았어요. 친정에다 나를 데려다 주고 나면 알아서 집에 오라고만 하였네요. 같이 가자는 말도 않지요.
아!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아이들이 학기중이라면 내가 먼저 나설판이지만 앞 뒤로 시간이 넉넉하면 잘 놀다 오라고 사라져 갑니다.. 어디어디 숨겨둔 애인도 만나고 어쩌고 저쩌고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정말 그렇게 숨겨서 은밀한 서동왕자같진 않더라도 괜찮으니 차 한잔이라도 함께 할 남자 친구라도 꺼덕거리며 ?아오면 좋겠다 기대까지 하게 됩니다.

보낸 선물보다 훨씬 많은 선물을 받아온 작은 언니의 시어머니께서 제게 또 선물을 보내주셨네요. " 당신 보듯 보라드라". 며 보내주셨다는 선물을 받고 아이들 눈만 반짝였겠어요.
벅구가 새끼 낳은 것만 쓰고 나서 밀쳐둔 돼지 새끼 낳은 얘기를 머리에 두고 있었는데
금박을 입힌 어미 돼지가 일곱 마리의 새끼들에게 젖은 물리고 있는 모습의 돼지 저금통 선물이였어요.
"우리 시어머니가 너를 얼마나 이뻐하신 줄 아니"?
"뻥새 아빠 자기 일에 빠져 있는 시간 동안 너 암말 않고 살아준게 그렇게도 고맙다신다."
"너는 재물이 모자란 듯 하다고 이걸 사주시는구나.집안에서 시선이 제일 잘 보이는데 놓아두라고 하셨다" 합니다.그 어른이 어떻게 제 사는 폼새를 아셨겠어요. 언니가 간간히 제 얘기를 했겠지요. 다만 먼 발치로 느끼는 것이 그 어른이 저를 이해해주신다는 거였어요. 하마 그분 살아온 어느 한 보퉁이에 지나지 않았을 흔적일 텐데라고만 생각을 잡는 겁니다. 사람이 살면서 입으로 표현하는 것들은 그닥 많지 않은 것들을 잘 알지요. 또한 말이란 얼마나 허무하기도 한 것인지요.
늘 눈이 웃고 입이 웃음을 토해내도 가슴속 저편에서 큰 강을 이룬 것이 크게 혹은 작게 흘러가는 것들에서 당신이 아프게 느꼈던 빛깔을 젊은 저에게서 보았겠지요. 어른이 계시다는 것은 하마 이런 위안은 아니겠어요마는 다들 그렇게 꾹꺽꾹꺽 삼키고 사는 건데 그게 무슨 상받을만 일이기나 한다고, 부끄럽기만 할뿐이고 제 복이 많은 탓이겠지요, 너무 좋다고 손뼉을 쳤네요.

먼길 오신 형부는 자리에 눕고 맙니다. 소리지르며 뒷장 받아라 맞장구쳐줄 사람도 없고 고만고만 아이들뿐이니 누굴 잡고 군소리 하는 분도 아니고, 언니나 나나 아이들이나 빙글빙글 웃어가며 손장난이나 치다가 고스톱을 하자고 합니다. 넷이다 까막눈인데, 언제 그것을
잡고 놀기나 했다고 패를 돌리면서 모두들 걀걀걀 웃기만 했네요. 글쎄.
키만 멀대처럼 크고 순진하기 그지 없는 잘 생긴 중학교 2학년 훈이를 속여 먹는 재미로
두세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방의 시끄러움을 피해 저 방에 홀로 누워 계신 어머니는
눈만 감고 계셨겠지요. 그 아이들 어디만큼 갔을까...길이 막히지 말아야 할텐데... 하시면서요.
손가락 열 개 펴 보아 꼬집어 보아라, 안 아픈 손이 어디 있다니? 십니다.
그러게 누가 뭐랬어요. 이렇게 착하게 잘 노는데....

하마 그 정신의 공황속에 빠져 있었을 때 전화벨이 울린 것 같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 없는 명절에 명절같은 건 없으면 좋겠다고 쓸쓸해 하신 벗님이 그 하루의 적적함을 그 어두워져 오는 시간에 제게 건넷던 것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항상 그렇게 양갈래에 서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어요.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푸른 젊음과 쓸쓸한 노화, 제 속으로 흐느끼며 소리없이 흐르는 강물. 저 단단하나 끝없이 유연한 어머니들의 세월.
이미 다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뜸금없이 ?아든 표현도 어려운 내 목을 감겨드는 따뜻한 기운 같은 것이 전화선을 타고 왔더란다.그렇게 써 봅니다.

지나간 세월이지만 하마 그맘때는 지금은 목사님이 된 J가 자전거를 타고 문밖에 서 있었을때고, 어느 세월의 시간이 흐르더라도 친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나 세상 사람들이 어리숙하기가 그지 없다는 남자사람 B님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저를 부를 때이기도 하였을 어둠이 내리는 밤.
방으로 들어와 어머니랑 같이 앉아서 농삿일이며 지금 하는 일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열시가 넘도록 하였다가 그가 간다며 나서는 길을 집 앞 까지만 바라다 준다고 나섰다가, 대문앞 나무 밑동이 있는 자리에 서성이며 지금까지도 못 다 한 말들이 있음을 기억해냈어요. 맨발로 나와 눈위를 잘근잘근 밟으며 이야기 하다가 그 주위의 눈들이 다들 반들반들해져 버리고 맨발이 빨갛게 되었을때에야 나 고만 갈란다 하면 잘 있어라 인사를 하고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끝까지, 그의 자전거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멀어져 가면 방으로 들어오던 그 밤이 까마득이
살아났다네요 . 벗님 전화선 타고 들려오던 목소리 길에서 언 듯 그것을 보았단다 하면 아셨을래나...

그 조용한 침묵을 깨고 밖엘 나갔다가 거실로 들어오는 길에 고만 줄이 풀린 송아지만한
벅구가 나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오고 말았네요.
우와 벅구 들어왔어.어디 어디 와 아... 아이들은 도망갔다 달려들었다 소리를 치며 다니고
벅구는 거실을 두 바퀴 돌고 부엌까지 들어왔다가 이불이 깔린 안방으로까지 꼬리를 흔들며 들어와 버렸어요 아무 의심없이.
온 집안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가 저를 더 반기는 줄 안 벅구는 한층 빙그레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비린내가 나는 음식물을 들고 벅구 코에 들이민 다음에야 나를 따라 밖에 나온 벅구는 꼬리를 흔들며 먹을 것에 행복해 하였네요.
아이구 저 벅구라니 글쎄... 발이 얼마나 큰 지 묻혀드린 흙을 턴다면서 다들 함박꽃처럼 웃고만 말았어요.
그날 밤에.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