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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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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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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에서 삶의 이야기(14)


BY 영광댁 2001-02-15

설 명절을 다녀와서

혼잣말 (3)

명절이나 특별한 생신날들에 어른이 아프시면 상도 잘 차리지 않고 절도 하지 않았다더니
어머니는 오랜만에 ?아든 저희의 절도 마다셨어요. 그냥 앉아라셨네요.
김서방도 잘왔네 십니다,
코끝이 찡했어요,
작년 이맘때 저는 몹시 아파서 오지 못했고 남편하고 어린아들만 시골을 보냈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모두 어머니들께 송구스러워서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송구스럽기는 손위나 손아래 누구나 다 같았지만 특히 어머니들께 말할 나위가 없었노라
짧게 얘기합니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어머니들게 젊으나 젊은이들이 어디 삐뚤어진 구석 없는 바른 사람들이 사람노릇 제대로 못하고 산다는 것은 보통의 고통은 넘는 일이였으니 두 말 한들 잔소리 였지요.
키작은 시어머니는 빈손으로 오는 제게 너는 온 것만도 고맙다고 그게 선물이라고 하였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진정한 말마디에도 어쩌면 그렇게 역정이 나기만 하던지요.
그러기도 했을거예요. 피식 웃고 말았지만 오기와 역정을 다스려준 그 품넓은 어머니의
자락이 아니였던들 그 어디에 얼굴 부비고 가슴 부비고 견뎌왔겠어요.
어머니의 그 말씀 안에는 제 것보다 훨씬 큰 삶의 고통스런 나날이 있었으리라 눈 크게 뜨고 마음 넓은 뜨락 보이는 만큼 펼쳐서 다 담아 보려 한 것들이었겠지요. 뭐.
하지만 백년손님이라는 말이나 사위는 장모 사랑이란 말이 좀 무색하게 김서방은 제 어머니께 마음을 다치기도 했을 겝니다. 서운한 것들도 있겠지요. 말은 안하지만....
워낙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 저 속에 뭐가 들었나 궁금하기 이를데 없지만, 많은 형제들 중에서도 어머닌 가난한 제 집을 제일 마음 편해 하신 걸 보면 김 서방이 그닥 그렇게 어렵지
않고 무던하다 생각하시기도 하셨을 것이고 언젠가는 하는 일이 잘 되겠지 하는 생각에 다소 얄미운 구박(?)도 하셨겠지요. 그래서 지나온 세월동안 제 빛깔이 진하게 자리 잡았을텐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더 많은 배려를 받고 살기때문이란 걸 어머니가 아시는가 모르지만 여자들의 좀 어눌한 소견머리로 치자면 제 할 노릇 못해서 라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빈 마당을 지나 방으로 들어오니 은이와 숭이 오라버니, 어머니가 나오셨네요.
새배를 하지 못했으니 그냥 웅성거리며 악수하고 손이나 맛잡고 앉았다가 선물로 가져온
인삼정과를 하나씩 나누어 먹고 어머니께 새배돈을 드렸네요.
시어머니는 제가 드린 새뱃돈을 어머니가 늘 기도하시는 성모상 앞에 두시더군요.
시어머니는 항상 저희식구 넷이 잠든 머리맡에서 새벽 한 시나 두시쯤에 일어나 성수를 뿌리면서 기도해 주십니다. 그 자리에서 잠이 들때마다 잠귀 밝은 제가 잠결에 기도 소리를
듣지만 어머니의 기도가 끓길까봐 못 일어 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울 어머니 손과 가슴에 있다고 흉아닌 흉을 보는 남편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코를 뱅뱅 골뿐이지요.

누워 계셨던 자리가 선연한데 술상을 봐온다며 어머니가 일어서십니다.
잠시 앉아 있자고 하곤 제가 일어섭니다. 늘 하던 일이니까요. 술상이든 밥상이든 내 손을 걸쳐 나오면 마냥 풍부하고 넉넉하다고 집안 식구들 누구나 다 좋아하는데 거기다가 술상이니 얼마나 더 운치가 있나요. 어머니 말마따나" 혼자 잠자는 거 시상도 구성없고 맘이 아프다는 오라버니"도 한 자리니 앞 치마를 둘러 입고 그렇게도 넓고 일하기 좋은 부엌으로 나가봅니다. 손바닥만한 우리 집에서야 반찬 하니 비비고 이 그릇 들어 저리 올리고 저 그릇 들어 이리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빈손질 없이 오만그릇 다 늘어서 뻗대 놓아도 남아 도는 부엌에서 오늘은 설날이니 어머니가 병석이라 하시더라도 자식들 많아 안온대도 끝없이 기다릴판이고 소리없어도 올 사람들이니 우리들 자랄 때 비하면 얼마나 넉넉한 살림이 되었는데 뭘 모자라게 해놓기야 하였겠어요.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니 오는 시간도 짧고 보고 싶은 마음이 마냥 넓어서 점심을 못챙겼노라 . 점심식사 준비를 시작했네요. 사위도 나 살았을때나 말이지 여기 아니면 어디 가서 대접받는데니. 어머니는 아픈 다리를 끌고 다니시며 찬거리를 내오고 끌어내고 집어내고 하십니다.
김 서방이나 오라버니나 한 방에 앉아서도 이렇다 저렇다 말 마디 거두지 않아도 편해진 사이들이라, 꿔다놓은 보리쌀들 같아도 그려려니. 오지랍 넓게 마음 널어두고 시장기
없는 설날 오후를 이렇대니 저렇대니 해가며 상을 준비했습니다.
그러게 세월이 저리 빠르다니 하는 것도 울고 짜고 등에 업고 우유병 물리고 저 울보 누구꺼냐. 누구 울음이냐. 임자 ?아가라 시끌벅적 하던 날들이 언제였나 싶게 아이들은 저들 방으로 한꺼번에 사라져 찍 소리 하나 없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빈 마음이라니요. 개수대 앞 창문을 여니 너른 밭이 나오고 거기 서걱대는 대나무밭이 여전한데 모두 사라져 버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해도 너무 했네. 하는 내 혼잣말을 들으시는 어머님은 기상예보가 눈이 온다고 길 막힌다고 갈려고 발싸심을 하더라니
기왕에 간거 빨리나 들어가라고 해라 시지만 ... 사람들. 차암. 어차피 내일도 빨간 글씬데.
언제 만날 일이 그리 많기나 한다고 그렇게들 서둘렀을까.
이렇게 저렇게 나를 달래는 어머니께 그랬네요. 아직도 제가 동생들을 너무 사랑하나 보다고. 그래서 아쉬움이 더 클거라고요.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였는지, 제가 밥상을 겸한 술상을 거나하게 봐 두었더니 충청도 연산에서 차례와 성묘를 다 마친 둘째 언니네 식구들 넷이서 들이닥쳤네요.
열두명이 금방이데요. 갈사람은 가야 하고 올사람은 와야 하는 것이 사람사는 이치라고만
말할뿐, 그것을 두고 인사치레니 의무적이니 마음이 있다느니 없다느니의 궁시렁대며 떠도는 부엌 말들은 술하고 안주하고 그만 둘러마시고 말았네요.
초록은 동색이라니까 가난한 어머니 아래서 참 의좋게 살았던 형제들인데 가던 저희들도
서운함 없었겠느냐 , 어머니 같은 생각을 흉내내는 것이지요.

조앙님
제가 부엌에 서면 제 키나 마음이 부엌의 크기만큼 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스무명 먹은 그릇들이 얼마나 되기나 하나요. 쌓인다고 쌓였어도 몇 백명이 먹어치운 그릇들만 하겠어요. 내 식구, 내 가족들이 손닿고 보듬고 먹은 그릇들인데,그 음식들 먹고 저리기운들이 펄펄나는데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성주 조앙님. 잘 굽어 살펴주세요. 사람이란 것 만큼 어리석은 미물이 또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