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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호스 아줌마의 신문읽기 45 - '산골소녀' 영자 서울로… 혼자된 아빠는 하늘로…


BY 닭호스 2001-02-15

“아버님께 꼭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임종조차 못하다니….”


모 이동통신업체의 TV광고에 출연해 ‘산골소녀’로 알려진 이영자(李榮子·19)양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산골 집에서 혼자 살던 아버지 이원연(李原演·51)씨가 숨졌다는 소식에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씨는 12일 오전 9시15분경 강원 삼척시 신기면 대평리 자신의 집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문명과 담을 쌓은 채 심산유곡에서 화전을 일구고 약초를 캐며 살아온 이씨는 지난해 10월 외동딸 영자양이 공부하러 서울에 가는 바람에 홀로 지내왔다.


인근 마을에 사는 이씨의 형(60)은 “사흘 만에 동생 집에 갔더니 방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며 “딸이 집을 떠난 뒤 동생이 많이 외로워했다”고 말했다.


이들 부녀는 지난해 7월 우연히 KBS TV의 인간시장 ‘그 산 속에 영자가 산다’(5부작)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특히 영자양은 이후 이동통신업체의 광고모델이 되는 등 유명세를 탔으며 같은 해 10월 한 후원자의 초청으로 서울로 가 그동안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해왔다.


13일 오후 빈소인 삼척의료원 영안실에 도착한 영자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이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차라리 서울로 가지 않고 모시고 함께 사는 건데…”라며 오열했다.


한편 유족측은 “바깥쪽으로 열게 돼 있는 방문이 부서질 정도로 안쪽으로 당겨져 있고 방의 벽면 여러 곳에 피가 묻어 있었으며 시체가 이불로 덮여 있어 타살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삼척〓경인수기자>sung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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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친정에 가 머무를 때의 일이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일일연속극을 보고나서 엄마는 서둘러 티부이 채널을 바꿨다.

"산골소녀 영자를 봐야한다.."
는 게 엄마의 다급한 채널 바꾸기에 대한 아빠의 설명이었다.

수년전 이미 매스콤의 금빛 세례를 입은 우리들의 산골 소녀 영자를 '인간극장'이라는 프로에서 다시 만나면서 엄마와 아빠는 자신들이 일구고 있는 전원생활에 대한 일말의 자부심을 안은 것 같았다.

영자는 아빠와 함께 불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한자를 비롯한 여러가지 공부로 박학다식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었고, 그녀의 소프라노 톤의 특이한 음색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그녀의 순진무구함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아빠와 엄마는 영자가 마치 당신들의 딸이라도 된냥,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흐뭇해하였고, 영자가 후일 좋은데로 시집을 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하였다.

그리고, 영자가 아버지의 반대로 서울로의 초청에 응하지 못하고 눈물을 보일 때에는 어린 영자의 가슴에 났을 상처의 깊이를 생각하며 함께 가슴 아파하였다.

하지만.. 영자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그녀의 작은 집에 집채만한 접시 안테나가 세워지고, 그녀가 컴퓨터를 접하는 순간들을 지켜보면서 그녀의 순수함이 훼손될까.. 그리하여 사악해질대로 사악해진 인간 세계를 지탱하리라는 믿음을 주던 그녀의 그 순수의 힘이 자칫 약화되지나 않을까 하는 노친네들다운 기우를 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세상에서 가슴아픈 일이 너무도 많았다던 영자의 아버지는 딸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그리고..
그 인간극장에서 영자의 존재가 사라지고..
나는 CF에서 여전히 순수해 보이는 그녀와 여전히 쑥스러워하는 그녀의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렇게 놀라운 기사를 접하게 된 것이다.

얼마전 인기리에 종영된 한 방송사의 시트콤에 '미달이'라는 극중 캐릭터를 아주 아주 싫어했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자신을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불의와 위험도 감수하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인물을 티부이를 통해서나 현실에서 접하게 될 때면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악했다.

나의 아이가 아이일 때 가졌던 그 순수함을 이 세상의 온갖 더러움에도 오염되지 않고 지켜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매사에 계산적으로 살며 안달하지 않고 자신의 앞에 펼쳐진 길을 앞만보고 걸어갈 수 있는 대범함을 갖추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우리의 산골소녀 영자도 그렇게 그렇게 순수하고 대범하게 자신의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기를 같이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