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89

낚시터에서


BY 풀씨 2001-02-12

한적한 시골의 넓은 저수지 에 수초가 얇은 얼음 사이로 일렁이고 있다

산 비탈에선 장끼 한마리가 적막한 산골 마을의 고요를 휘젓듯

푸드득 날아 오르고 마른 솔가지에서 바싹 마른 솔 잎이 바람에 날리기도 한다

시고모님 댁 이 있는 서부경남 에서도 한적한 시골마을로 남편과

바람도 쐴겸 들렸다가 항상 트렁크 속 에 넣어다니는 낚시도구를 생각하고

저수지를 찾았다

담수량은 적은 것도 많은 것도 아니었고 바람도 비교적 잔잔해서

민물낚시 하기엔 좋은 날이라고 남편은 기대를 하는듯 했다

낚시방에 들러 미끼를 사고 라면 두 봉지,소주 한병,크래커,생수,커피,

를 사서 저수지 둑 에 올라오니 벌써 ?p?p 강태공들이 드문 드문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남편이 자리를 잡고 낚시대를 꺼내고 미끼를 달고 하는 동안

저수지 수문쪽으로 슬슬 걸음을 옮겼다

수문을 활짝 열어두진 않았지만 수문 아래쪽으로 제법 물이 흐르고 있었고

혹시나 하는 기대로 슬며시 내려가 봤지만 다슬기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였던가 애들과 같이 큰 돌멩이를 뒤져가며 다슬기를 줍곤 했던 자리인데

물이 적었던 탓인지 다슬기가 토옹 보이질 않았다

혼자서 가장자리에 언 얼음을 가지고 장난을 해보다가 둑 위로 올라왔다

남편은 벌써 찌를 드리우고 담배를 맛있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 조황이 좀 어떻수?"

키들대며 그냥 한 번 던져본 말에

"우물에서 숭늉 찾겠다 이제 담구었건만 쩝"

남편도 시큰둥 대답을 했다

마른 풀잎이 드러누운 곳에 앉아 커피를 끓일려고 버너에 불을 붙이고

생수를 코펠에 얹어두고 그렇게 물 가운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종류인지 몰라도 물 가운데서 곡예를 하는 적은 물고기가 간간히

눈에 띄었다

시골이면서 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음인지 별 천지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농한기라서 그곳 사람들도 보기가 쉽지 않았고 외지에서 들어온

낚시꾼 만 ?p사람 보일뿐 사방은 바람소리,나뭇잎소리,새소리, 그렇게

자연의 소리로만 가득했고 간간히 산허리를 돌아가는 버스가 경적을

울릴뿐 정말 조용했다

벌써 물이 끓어 얇은 뚜껑이 들썩인다

일회용 커피라서 그저 컵에 붓고 물만 따르면 먹을수 있기에

간단히 저어서 남편에게 건네주고 내 것을 따로 들고 산 비탈 쪽으로

갔다

비탈쪽 양지녘엔 벌써 나뭇가지에 새 움 자국이 돋는 듯 했고

서리내려 딱딱했던 흙들도 푸석 푸석 부드러워지고 있는듯 했다

봄 기운이 대지로 부터 오고 있음이리라

막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고 할때 남편의 환호성이 터졌다

"걸렸다 제법 씨알이 굵은것 같은데 "

산비탈쪽을 향하던 발길을 돌려 남편이 자리한 곳으로 가니

정말 씨알도 굵은 붕어 한마리가 파다닥 거리며 낚시대에 달려오는게 아닌가

"내가 자리를 명당으로 잡은 모양이네"

남편은 이게 웬일이냐는 듯 기분이 많이 좋은 모양이다

이 상태로 잡으면 한 다래끼 잡는건 문제없다고 큰 소리를 탕탕 치면서

능숙한 솜씨로 붕어를 떼내어 망태기 속으로 밀어넣었다

남편의 표정이 살아있고 건강해 보였다면 그 순간 내가 너무 많은걸 보았을까

도심에 살면서 늘 매연과 찌든공기와 인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래서 삶이 구태의연해지고 지치고 그러나 벗어던질 수 없는 멍에들로

힘들어 하면서 한번쯤 삶의 환기구가 필요하다는 걸 누구나가 깨닫지만

쉽게 어디론가 훌쩍 떠나 흔히 말하는 재충전의 기회를 마련하기가 어디

쉬운일이던가

이번 짧은 일정의 나들이도 사실은 집안 일 로 겸사겸사 갔다가 얻은 휴가였음에랴

휴가라고 이름 붙이기도 뭣하지만 불과 네댓시간 동안 붕어를 잡겠다는

목표보다 는 폐부 깊숙히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셨고 욕심 없이 자연그대로

자연을 닮아가듯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얻을려고도 너무 많은것을 가질려고도 애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가 뉘엿 뉘엿 저물무렵
망태기를 꺼내보니 대 여섯 마리의 붕어가 들어있었다

매운탕 한 냄비는 되겠다고 남편이 좋아라 하는 모습이 철부지 소년 같았다

가슴속,머리속,비워내고 돌아오는 길이 한결 가뿐해진 느낌이다

매일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속에 어쩌면 우리에겐 이런 보너스 쯤은

필요한건 아닌지

오늘밤은 정말 뒤숭숭한 꿈 없이 맑고 깊게 단잠을 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