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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BY asan99 2001-11-15

다음 달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결혼 1주년이 됩니다.
내 나이 27세,직업은 영어강사,신랑은 대기업 과장,외적인 것만 보고 사람들은 내가 무척 행복한 줄 알아요.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해서 결혼을 하겠죠. 저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전 신랑과 아주 힘들게 연애했고 결혼 또한 그랬어요.
자라온 가정환경이나 가족애가 서로 다른 두 집안에서 서로 남녀가 만나 결혼하는 것이 이리도 힘든지 몰랐어요.
막내라 귀여움도 많이 받고 구김 없이 자란 내가 항상 부모님께는 애지중지한 자식이었고 또한 뭐든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답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친 관심을 보이셨다고도 할 수 있죠.
항상 늦게 시집을 갈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심에 대학원도 입학하고 나름대로 내 미래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나에게 나타난 지금의 내 반려자가 문제였지요.
전 대학교 4학년때부터 집에서 하도 성화를 해서 선을 보았어요.
당연히 결혼하기 싫다는데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어요. 왜 그리도 빨리 결혼을 시키시려 했는지 그때 당시는 부모님의 생각을 이해 못 하겠더라고요. 드라마를 보시면 더욱 더 흥분하시곤 했어요. 그래서 선을 줄곧 여러번 봤지요.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저의 신랑이랍니다.
물론 마지막 사람이었죠. 선이다 보니 학벌,집안,가정형편등에 대해선 훤히 다 알고 하는 것이기에 확실하다고 보면 오산입니다.
간혹, 가장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명문대출신,교육자,공무원,사업가등이 좋은 신랑후보라도 되는 것처럼 선자리는 늘 그랬죠. 거기다 집안까지 뒷배경이 되기도 했고요.
재벌은 재벌끼리 혼사를 치룬다 하지요. 우린 재벌도 아닌데, 왜 그런 풍토를 따라 가는지....
우리나라 결혼이란 제도에 유달리 기분 나빠했던 난 결혼을 좀 두려워 하기도 했어요.
남편을 만나기 전에 선을 통해 본 남자들은 한결같이 유식한 척, 있는 척 거기다가 따지기까지. 어휴, 속물들....
물론 그 중에 조금은 성실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어요. 지금의 내 반려자가 그랬죠. 남편은 좀 달랐어요. 처음 만났을땐 기대이하였고 성격이 무척 까다롭고 예민해 보였는데 점점 그런 선입견을 깨기 시작했죠.
때론 가여워 보일때도 있었고 무척 약해 보였답니다. 내유외강한 남편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었지요. 어머니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아버님이 재혼했기에 상처가 무척 컸었지요.항상 남편을 보면 안쓰러웠어요. 남편을 사랑하게 된 것도 적지않은 모성애가 작용했지요.
사실 저의 친정 어머니께서는 혼처가 그다지 좋지 않기에 그냥 한 번 만나라 보라고 하신 것이 서로 사랑하게 되고 결혼까지 한다기에 무척 놀라셨어요. 사실 선자리 중에서는 가장 안 좋았거든요.
시댁의 아버님은 나이도 드시고 거기다 새어머니 위로 두명의 동서가 있다는 것이 탐탐지 않으셨어요.
사실, 혼인 당시에도 놀란이 많았어요. 친정 어머니께서 입소문으로 시댁의 사정,가정환경을 조사한 결과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저희 집에선 혼인을 반대하셨죠."그냥, 한 번 보기나 해 보랬더니. 좋은 자리가 얼마나 많은데..."하시며 걱정하시던 친정 어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가진 재산이 많았으나 아버님이 두번의 의원출마로 많은 돈을 낭비하셨고 어머니의 병고로 돌아가시고 거기다 새어머니와 혼인신고까지 하셔서 이만저만 복잡하지 않다며 걱정하셨지요.
사실 결혼전 예단,식장,이바지등 여간 까다롭게 굴던지.정말이지 다 무루고 싶었어요. 아버님이 여간 깐깐하신데다 새어머니의 어질지 못한 언행,심술이 많은 형님내외들 ,상견례를 치루고 전 몹시 불안했어요.가족애도 없고 차가워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왜 남편이 우울해 보였는지를 알 수 있었어요.
그래도 전 최선을 다 했어요. 결혼 전 부터 남편없이도 선물보따리 들고 곧잘 찾아뵈었지요.
딸 자식 잘 키워서 좋은 혼사시키려고 그동안 정성스럽게 애쓰신 친정부모님께 무척 죄송스럽더라고요.
딸이 무슨 죄인이라고 시댁에 갖다 바치는 것이 어찌나 많은지. 요즘 혼인 풍습은 예단도 서로 똑같이 뭐든지 공평히 한다던데.우리 시댁은 무척 금전적으로 인색했습니다.
친정에서는 아무래도 우리 딸이 너무 아깝다는 표정과 걱정,근심섞인 모습으로 나를 지켜보셨어요.
대학원도 시댁의 반대로 학업도 중지해야만 했어요. 저의 친정어머니께서 대뜸 화를 내시며"학비도 안 되주면서 남의 딸 왜 공부까지 간섭하시는 거야,참내 시댁에서 며느리 공부시키는 집도 있는데. 원,기가 막혀서,내가 너 학비 줄 터이니 다녀! 너 공부 계속해서 유학도 가고 대학 강사되고 싶다고 했잖아, 속상해 죽겠네. 다른집 같으면 우리딸 같은 며느리 들어오면 좋아서 동네 잔치라도 할 터인데..."
속상해 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아요. 그때 무척 많이 울었어요. 남편이 달래주고 위안을 주지 않았다면 지금 남편과 내가 나란히 있을 수 없었겠죠.
친구들도 흔쾌히 저의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더라고요. 너같은 조건이면 훨씬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다며 다시 생각해 보란 친구도 있었죠.
하지만 남편과 난 어느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남편은 날 항상 자기를 구원해 준 복덩이라고 하지요.
이런 남편과 어찌 헤어질 수 있겠어요. 지금은 저의 친정 어머니께서도 저희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시곤 다소 흐믓해하십니다.
내 인연을 만나기가 이리도 어려운데 이 인연을 포기한다면 그 어떤것도 내게는 행복이 될 수 없겠죠.
시댁문제로 조금은 고달플때도 있지??남편이 내게 행복을 주기에 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