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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겨울아침의 회상 (10)


BY 영광댁 2001-02-03

변두리 겨울회상(10)

기억속의 벅구.

뻥새야.
엄마는 가끔 이 시를 떠올린다.

...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진정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라는 조 지훈님의 시.

그렇게 예뻐하고 식구처럼 살았지만 엄마는 끝내 벅구를 지키지 못했단다.

집 위 절에서 살던 개가 떠돌아 다닌 것이 벌써 몇 년째니?
그 절에서 오랫동안 공양주를 하시던 보살님이 시골로 떠나고 그 손에 밥을 얻어먹던 개들이 무슨 눈치가 있었을까? 절에서 ?겨난 개란다 하면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말을
기억해내고 픽 조소를 보내기도 하였더란다.
사방이 다 터진 산 꼭대기에 있는 절에서 개를 ?아냈단다면 개란 짐승이 저 밥먹던 자리가 제집인냥 하고 사는 건데, 사람하고 너무 오래 살게 되면 여우가 된다는 말을 대처승인
그 절의 사람들은 교리처럼 믿는 것이였을까.
여우같다고 하였다지만 사랑에게 해꼬지 하지 않은데 그래도 그럴 수 있나 싶다 지금도.
개들은 떠돌이가 되어 온갖 쓰레기통을 다 뒤지고 쓰레기 봉투들을 찢어놓고 제 허기를
채우더구나.작년엔 개나리꽃이 우거진 산 밑 가에다 새끼도 낳아 키우더라니.

이빨 빠진 개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삶은 무를 던져주면 배고른 개가 덥썩 먹이를 문데 ...
그러고 나면 개 이빨이 몽땅 틀니처럼 빠진다더라. 우리 한번 해볼래?
그럴까. 그래 하자. 누가 무를 삶냐 , 뜨거운 무를 누가 던지냐.
진짜 벅구 이빨 빠지면 어떡하니? ....

농사철이 되어 목이 묶인 벅구는 정말 날이면 날마다 울기만 했어.
자고로 사람이나 짐승이나 우는 것은 정말 불쾌한 소리거든.

지난 여름에 닭장에 있던 닭말이야. 그래 장닭 두 마리에 알낳던 암탁 두 마리.
마음이 허허로웠던 외삼촌이 토종닭을 구해다 키우고 있었잖니, 그게 장닭이 있는 곳에서 같이 자라고 성장하더니 알을 낳았더란다. 병아리가 나오는 알을 말이지.
엄마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몸이 성장한 후에는 당연히 이성으로 몸이 가고 하는 행동들도 어른으로 되어 가는 것을 집안에서 키우는 동물들을 보면서 깨달으며 살았단다.
개들이 생리를 하고 생리즈음엔 피를 보이며 붓고 그 냄새를 맡은 수케들이
무리를 지어 대문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었다면 알려나.
목줄기가 풀린 발정이 난 벅구의 냄새는 어디까지 퍼졌길래 생전 보도 듣도 못한 개들이
꼬리를 달랑 올리고서 벅구 주위에 끝도 없이 맴돌았을까.

여섯 살이 되던 해 벅구는 그 잘생긴 수케부터 시작해서 조막만한 이름만 개인 수케들의 구애를 한 몸에 받았지만 벅구는 불임의 시기를 살고 있었단다. 약삭 빠르기는 불임에서 오는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서였나. 담장을 타고 다니기 시작했어. 대문을 걸어 잠그고 집 밖으로 나가는 하수구 구멍까지 돌멩이로 막아두면 날개 달린 날짐승처럼 훌쩍 담장을 타고 올라가
집안을 빙 도는 담장을 여유 부리며 빙빙 돌았다고 했어. 것뿐인가.
스레이트 지붕으로도 이따금 밤에 다닌다고 동네 사람들이 유언비어를 터뜨렸을 거야,
지금 생각하면....
담장을 타고 다니다가 안되면 대문 문이 열리는 쪽으로 땅바닥을 다 파놓았어.
그 맹렬하던 눈빛과 살아있는 야성의 발톱으로 땅바닥을 큰 웅뎅이처럼 파 놓고
거기에 눈을 대고 너른 대지에 시퍼런 눈을 대고 한숨을 쉬었던가.

도구만 사용할 줄 아는 머리가 있었던들 자살을 했을거야
아! 자유란 그렇게 목숨을 담보로 한 갈망인 것을 벅구를 통해 배운 것 같다.

참 오랜만에 집안에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자라 새벽을 알리는 수닭이 되어 자랐더니
그 수탉도 밤낮으로 울었다는구나.
지금도 여전히 닭 한 마리 목 비틀어 죽이지 못하는 할머니는 아랫집 덕산양반에게 네 마리나 되는 닭을 다 줘버리고 말으셨단다. 잡아 먹으라고,
이제 외할머니네집 돼지우리는 텅 비었더라.
그 동네에서 낮에 우는 수탉, 하루 종일 우는 수탉은 이젠 없단다.

죽으면 묻어주기도 했던 벅구는 제 야성에 눈 부라리며 견딜 수 없어 하더니.
사는 동안 집안에 똥 한 줄기 보이지 않고 사람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땅에 제 분비물을
흙으로 덮고 감쪽같이 바람같이 다녔던 벅구는 어쩔 수 없이 아침일찍 온 개장사에게 팔려 갔단다. 눈치를 알고 몇 날 며칠 집 밖으로만 돌던 벅구가 그만 체념했을까 .
울면서 갔어 벅구는 , 엄마는 골방에 웅크리고 앉아 벅구 울음소리에 귀를 틀어 막으며
울기만 했을 거야. 스물 세 살에. 스물 네 살에.
우리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렇게 비겁한 짓을 한 것 같애.
차마 눈뜨고 죽일 수도 없었단다. 사람은 가끔 그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만날때가 있어. 그래. 가끔...

지금 외할머니댁에 있는 아키다 잡종인 흰 털에 몸집이 탄탄한 벅구는 아홉 살인가 . 열살인가, 처음부터 목을 메인체 그 땅에서 삶을 시작했으니 벅구는 남의 땅에서 온 피가 섞인 탓인가.목이 메어 있어도 그렇게 힘겨워 하지 않아. 당연하게 생각하겠어마는 개처럼 사는 거야. 개처럼 .지금의 벅구도 불임이야. 노화가 주는 편안함을 가지고 살아. 그 벅구는
집안 식구들의 냄새를 전부 다 알지, 낱낱이 아는 체 꼬리를 흔들어주기도 하고.
할머니는 이 개는 죽을 때까지 같이 살겠다셨어. 이빨이 빠져서 밥도 못먹고 침만
질질 흘리는 개를 죽 끓여 먹이며 같이 살다가 죽어서 묻어 주었다는 저 건너 마을 사람처럼 그렇게 하시고 계셔. 무엇이 개를 정말 개답게 만들었을까 .

가끔 산다는 것이 참 쓸쓸해.
무엇이 우리는 문명인이라고 자처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길들였을까.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각을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