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산화탄소 포집 공장 메머드 가동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53

남편이 뻥쟁이가 된 이유.


BY yuyi65 2001-11-09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아들녀석은 인정많고 애교만점이다.
소파에 누워있을라치면 베개가져와 살며시 머리밑에 들이밀고
이불덮어주고 온갖 심부름 엉덩이도 가볍게 잘도 해준다.

근데 이 아들녀석이 쫌은 엉뚱하고 욕심없어 매사가 실수연발이다.
어느날 수학숙제를 하는중.
세자리수 더하기 세자리수 문제를
푸는데 옆에서 흘깃 쳐다보니 쓱쓱 싹싹 답을 쓰는지라 깜짝놀라

우와~우리아들 빠르다. 잘한다. 칭찬을 하고 점수를 주려하니 엉뚱한
답이다. 사연을 물은즉 더하기 다 할줄 아니까 대~충 살잔다.

그러니 한살위 꼼꼼하고 야무진 누나와는 항상 비교를 당하곤 한다.
그런 아들이 5월 어느날 학교에서 체험학습 현장을 가는데
그곳이 다름아닌 청와대..

엄마도 10년전에 다녀온 서울이고 누나는 구경도 못해본 서울을.
그것도 TV에서만 본 대통령 할아버지가 사시는 그곳을 가니 우리아들
신이 난 것이다.

새벽같이 김밥을 싸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서울에 갔다온
바로 그날.
누나 앞에서 서울자랑에 침을 튀기던 우리 아들.

엄마 나 3학년 대표로 대통령 할아버지랑 악수했다.

정말? 정말? 애고 이쁘고 잘난 내 아들. 가문에 영광이다.
어디 그 손 뽀뽀좀 하자. 아빠 오실때 까지 손 씻지 말어.

우리 남편 그 분의 열렬한 팬이거덩요.
어느정도냐면 그 분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저 언젠가 그분 성함만 얘기 했다가 엄청 혼났거든요.
꼭 성함뒤에 선생님이라고 꼭 부쳐서 부르라고요.
그 정도이니 남편 아들얘기를 듣고는 뿅 가버린 거지요.

서울나들이에 피곤했던지 일찍 잠자리에 든 아들 천사같은 얼굴로 잠이 들고 남편은 약속이 있어 밖에 나간사이 9시 뉴스를 보는데
글쎄 그분이. 아들과 악수를 하고 훌륭한 일꾼이 되라고 당부를 하셨다던 그분이. 그날 그 시간쯤에 지방에 내려오셔서 행사에 참가를
하셨다는 뉴~스.
헐 .아~니. 아~니. 이럴수가.
아무리 전용헬기가 있고 교통수단이 발달됐다지만.
그 시간쯤이면 분명 우리아들과 악수를 하고 계셔야만 할 그 분이...

다음날 학교에 다녀온 아들을 앉혀놓고 조근조근 물어보니
누나한테도 자랑하고 싶고 엄마한테도 칭찬받고 싶어서였다나.
청와대에선 어떤 멋진 누나들만 보고 그 분은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고..

목이 아프게 아들아 넌 지금도 엄마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들이라고. 정직한 아들이 최고라고. 다시는 거짓말 하지 말자고 새끼 손가락 꼭꼭 걸어 약속했지요.
여기서 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다면 우리 부부 지금 이 시간 이렇게 황당하지는 않을텐데.

어제 전주에서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우리 대표팀과 세네갈의 축구 경기가 있었지요.
우리 남편 회사에서 단체로 경기관람을 간다고 하더군여.
근데 본부장님께서 개인사정으로 참석을 못한다고 대통령과 악수한 잘난 아들 데리고 가서 보라고 표를 주셨다는군요.

벌써 5개월이 넘게 흘러간 일이라 까마득히 잊고 아들과 저만의 비밀로 하기로 한일인지라 남편은 그 일을 사실로 알고 있었는데
입싼 우리 남편 혼자만 알고 있지. 그렇게도 자랑꺼리가 없었을까 글쎄 사무실에서 자랑을 했다지 뭡니까. 그래서 일명 잘 나가는 아들을 둔 아빠로 통했다는데.
어제사 사건의 전말을 알게된 남편.
황당하지만 설마 누가 묻겠는가 하고 아들과 손을 잡고 경기장에 갔는데 글쎄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대리님이 아들과 얘기끝에 그만
그 얘기가 나왔다네요.

성국아. 너 청와대 갔다 왔다며?
네.
거기서 대통령 할아버지랑 악수 했다며?
아뇨.
대통령 할아버지 만났다며?
전혀요.

질문이 나오자 0.1초도 망설임 없이 술~술 대답이 나오니
옆에 앉아있던 남편 어찌 수습할 수 도 없이 황망히 쳐다만
보고
질문 했던 대리님도 분위기 썰렁.
이럼 어떻게 되나요.
완전 청와대 다녀온 아들 앞세워 뻥 친 것 밖에 안되니.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미주알 고주알 변명할 수도 없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운 우리 남편.
푹푹 한숨만 쉬는데. 전 왜이리 웃음만 나오는지..

자신을 변호하자니 아들이 상처받을 것 같고 에라 모르겠다.
내가 뒤집어 쓰자 하고 아무말 않했는데 내일 출근해서 그 분 얼굴 볼일이 걱정이라네요.

아빠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짐작도 못하는 우리아들 .

나중에 아빠 마음을 이해나 할려는지 모르겠네요.

이대리님. 아 고것이 어?쒼?된 사연이냐면요.
응~ 그게. 거시기~ 하무튼 그게 아니랑께요~
휴 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