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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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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그리고 그리운 내아버지...


BY 몽마르뜨 2001-02-02

여섯살이 되던해 초여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친척들과 문상객들로 마당은 북새통이었지만, 나와 사촌들은 물을 만난 고기들처럼 산으로 밭으로 다니며 손가락만한 가지도 따서 한입에 물고 그리고 또 뱉고...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철이 없어서겠지만... 마치. 할아버지가 동네 마실이라도 가신양. 슬픔이 뭔지도 모른체...
그렇게 상여가 나가고 넓었던 앞마당이 갑자기 휑해지자,
그제서야 난, 할아버지댁의 방과 부엌을 뒤지며 아버지와 엄마를 찾아다녔다. 문이란 문은 다 열던중. 너무도 반가운 물건을 발견했다.
뽀얗게 그리고 땅콩껍질보다 조금 크게 보였던 그것을 난 박하사탕이라고 단정지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사탕공장을 하셨구나 하면서
어린 마음에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는데... 마당 입구에서 아버지가 걸어오시며 'ㅇㅇ아! 엄마 어디에 가셨니?' 하고 물으시길래,
손톱만큼의 망설임도 없이 난 "엄마? 사탕공장에 있어요."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놀라신 아버지 내손을 잡고 사탕공장이라는 곳으로 데려가라 하셨다. 난, 그곳으로 가서 문을 발로 박차고 "여기, 여기 사탕만드는데. 박하사탕. 응?" 소리를 지르자. 큰아버지, 고모를 비롯한 모든분들이 박장대소를 하셨다. 이게 아닌가? 할틈도 없이 고모가 사탕이라며 그물건을 한움큼 주셨는데, 물컹한 것이 아닌가. 더구나, 그옆에서 벌레가 기어나오고.. 칭피함과 무서움으로 달려나가 다시는 그 앞을 걸어다니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를 찾으로 다니시고 안고 쓰다듬고 그리도 내딸이니까 상상력도 풍부하다면서 그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으셨다.
그사탕의 정체는 누에고치 집이었는데. 그뒤로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
내게 끔찍한 사랑을 주셨던 내 아버지는 그 이듬해 심장마비로 할아버지곁으로 가셨다. 일곱살에 헤어진 아버지지만 난 아직까지도 아버지의 사랑을 잊지도 못하고 받을 수 없는 줄 알면서도 갈구하고 그리워한다.
시댁이나 남편때문에 속상할때도 난 친정엄마가 아닌 아버지가 보고싶어서 울고 아버지 꿈을 꾼다. 늙어서 아무힘이 없어도, 그냥 바라만 봐줄수 있는 아버지가 미치도록 그립다.
오로지 내꿈에만 나타나시는 아버지. 동생은 보고싶어도 오시지도 않는다고 푸념이지만, 얼마전 아버지는 조그만 사진첩속의 사진으로 나를 찾아오셨다. 결혼한다고 시아버지께 처음 인사드린날도 꿈에 오셔서 멀리서 지켜보고 계시다 가시곤 했다. 이사했을때도...
즐겨입으시던 곤색 양복에 조끼까지. 40대초반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버지...
아버지...
날이 추운데 아버지계신 천국은 춥지나 않으신지..
감기는 안드셨는지... 저요? 제걱정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