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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서울로 가는 길.


BY 들꽃편지 2001-11-06

서울에 갈 일이 생겨 길을 나섰습니다.
비가 언제부턴가 추적추적 내리고
신발장에서 카키색 내 우산을 들고
현관을 나섰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소리 없이 우산머리에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나뭇잎도 비에 흠뻑 씻겨져 축축함이 느껴졌습니다.

비가 오면 차바퀴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빗물과 부딪혀 그 소리가 증폭되나 봅니다.

차창에 기대어 창밖을 보는 내 버릇은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나무에 붙어 있던 잎들은 땅으로 붙어 버린 것이 훨씬 많았습니다.
색종이 처럼 붙어 있는 나뭇잎
빈가지 사이로 잿빛 하늘이 보입니다.

은행나무 밑엔 노란 색종이가
느티나무 밑엔 갈색 색종이가
단풍나무 밑엔 붉은색 색종이가
플라타나스나무 밑엔 짙은갈색 도화지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난 하늘을 더 많이 볼 것입니다.
빈나무는 볼 것이 없어서겠지만
비어 있는 나뭇잎만큼 하늘이 보여서일겁니다.

기찻길을 너머 버스는 걸어갑니다.
좌로 굽은 기찻길...
그 기찻길엔 은행나무 한 그루가 기찻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봄엔 냉이꽃이나 꽃다지꽃이 기찻길을 지키고 있었는데
풀꽃이 지고 여름이가고 가을이 지고 있는 기찻길엔
다 떨어진 은행나무가 좌로굽은 기찻길을
혼자서 씩씩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서울로 가는 길엔 언제나 이 기찻길을 건너야하고
칙칙한 한강을 건너야 하고
너른 들판을 지나야하고
듬성거리는 논을 지나쳐야하고
꽃집이 즐비한 비닐하우스를 거쳐야합니다.

이렇게 서울로 가야하는 길을 9년째 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살다가 일산으로 이사온지가 9년째인 것 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흔한 말...
우리 식구들은 많이 변해 있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일학년이였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되어 고등학교 시험을 봐야하고,
아들은 태어난지 한 달만에 포대기에 애벌레처럼 돌돌 말아가지고
새 집 안방에 뉘어 놓았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신발주머니를 달달이 잃어버리고 다닙니다.

비는 많이도 그렇다고 적게도 내리지 않고
알맞게 내립니다.

아이들도 그리 똑똑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르지도 않고
알맞게 커가고 있습니다.

나도 많이 늙어버리지도 그렇다고 나이가 안먹어 보이지도 않고
알맞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무지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그리 불행하지도 않고
알맞게 만족하면서 부족하면서 그렁저렁 살고 있습니다.

서울은 많이 복잡합니다.
서울은 많이 공기 냄새가 탁합니다.
내가 서울에 살 땐 몰랐는데
일산에 살다보니 서울에 들어서기만 하면
정신이 없고 머리가 아파옵니다.

그래도 서울을 가야합니다.
친척이 살고 딸아이 고등학교 시험을 서울에서 보기 때문에
오늘도 서울로 항한 채비를 하고
길을나섰고
비가 내렸고
나뭇잎이 땅바닥에 더 많이 떨어져 있는 걸 보았습니다.

서울로 가는 길...
가을이 바닥에 뒹굴고 있는 길이였습니다.
그래도 내 학창시절이 나뭇잎처럼 떨어진 추억의 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