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산화탄소 포집 공장 메머드 가동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24

나의 길(58) *오래된 친구*


BY 쟈스민 2001-11-05

촉촉한 늦가을비가 나즈막히 창가를 두드립니다.
곱게 물든 단풍잎에도 늦가을의 눈물어린 배웅을 하듯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바람이 차가워질 무렵이면 마음이 먼저 겨울로 가고 있는 듯 해요.

그 황량해진 마음을 어루만져줄 무언가를 늘 찾아 헤메이는 모습을 한 나를 볼때가 있지요.
그런날에는 어김없이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나는 나의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그 친구와 나는 벌써 몇년의 인연을 쌓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요즈음 너무 잦은 나와의 만남으로 인하여
몸살이 났는지 영 기운이 없어 보입니다.

나에게 늘 거짓없이 맑기만 한 모습으로 영혼까지 씻어줄 수 있는 맑은 음색으로 내게 다가오던 그 친구가 가물 가물 흐려지는 기력으로 떨어지는 가을잎새처럼 바스락 거립니다.

몇번의 이별 예감에도 그 친구와 나는 흔하지 않은 정 때문에
서로의 인연을 부여잡고 계속되는 만남을 이어왔지요.

그 친구가 하는 일은 나의 한 손아귀에 들어오는 네모진 포장속의 동그란 구멍이 나 있고 반짝 반짝한 CD의 소리를 재생시켜주는 일이랍니다.

살기 위하여 내가 하루 세끼의 밥을 먹어야 하였다면
외롭지 않기 위하여 나는 그 친구를 만나야 했지요.

그 친구가 기운을 잃고 어지럽다 하면 나는 그 친구가 기울을 차릴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친구는 내게 더 많은 기다림을 주고 마네요.

그래서 이번에는 조용히 내가 기다리려 하지요.
나와 멀지 않은 곳에서도 내가 가끔씩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그 친구와 나의 정이 남아있을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 하기로 합니다.

요즘엔 나의 짝이 많이 바쁘다 하여 늦은밤에나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역할이 내겐 참 소중하기만 했나봐요.

이제 나는 어쩔수 없이 새로운 친구와의 만남을 시작할수 밖에 없었지만
오래된 내 친구는 여전히 나의 가까운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요.

이별이란 ...
이렇게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가봐요.

물건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고 ...
사람하고도 기계적인 물건처럼 되어버릴수도 있는 세상을 사는
우리들은 정 때문에 사는가 봅니다.

새 친구는 내게 맑은 소리를 전하여 주고 ...
나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긴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오래된 친구가 그리운 건 너무도 오랫동안 익숙했던 탓일 겁니다.

내 오래된 친구가 나를 가까이에서 지켜주는 편안함과,
새 친구가 가져다 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나는 넉넉한 늦가을의 정취에 빠져보려 합니다.

이리 저리 둘러보아도 나에겐 친구가 있어서
이런 가을날에도 외롭지 않을수가 있나 봅니다.

늦가을 저녁 이는 바람처럼 마음에도 바람이 이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찾아와 줄 친구를 나는
두팔 벌려 안고 싶습니다.

어떨때는 클래식한 만남으로...
어떨때는 비트가 있는 만남으로...
우리들의 만남을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음에 함께 하는
즐거움이 자랄 수 있겠지요.

그러니 난 나의 친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껴주고 싶은 마음과, 고운 손길로 늘 친구를 메만져 주어
나의 곁에서 오래된 친구로 남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그 친구의 맑은 음색에 실어 봅니다.

새 친구를 맞아들임에 대한 설레임으로 하루가 짧게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비가 그치고 나면 내일의 바람은 더 차가워질거라 합니다.
그렇지만 난 그 친구와의 만남으로 인한 가슴 따뜻해짐이 있으니
내일도 춥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