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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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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를 끓이며


BY robertta 2000-05-20

어제 밤에 냉동실에서 꽁꽁 언 김치 덩어리를 꺼내 두었습니
다.
이제 겨우 30이 조금 넘었는데, 산다는 일의 무게가 자꾸만 버거워집니다. 사람 노릇,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 엄마 노릇, 딸 노릇, 시누이 노릇, 올캐 노릇, 어른 노릇 하고 산다는 것이 자꾸 힘겨운 숙제로 나를 눌러 옵니다.
나는 점점 경직되고 눈의 여왕의 거울 조각이 박힌 것처럼 마음은 차가와집니다.

오늘 저녁에 다 녹은 묵은 김치에 물을 붓고 찌개를 끓입니다.
멸치도 넣고 참기름도 조금 부었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입맛 당기는 얼큰한 냄새가 피어납니다.
사람 사는 일이 김치찌개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싱싱한 배추와 무가 매운 맛도 보고 짠 맛도 보고 비린 맛도 보고 이리저리 섞이고 버무려져 밥상에 없어서는 안될 반찬거리가 되듯이, 나도 그렇게 삶의 쓴 맛, 단 맛, 짠 맛 다 보고 어우러져 세상 사이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국자로 국물을 조금 떠서 맛을 봅니다. 맛이 심심합니다. 조미료를 꺼내어 조금 섞자 맛이 확 살아납니다.
내 삶의 조미료는 누구일까요? 내가 세상 사는 맛과 재미를 잃고 있을 때, 나만이 가지고 있는 맛과 향기를 다시 불러 일으키고 돋구워줄 누군가를 나는 가지고 있는 걸까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딸이 "와, 김치찌개다!"하고 환호합니다. 녀석은 늘 김치찌개를 좋아합니다. 무슨 대단한 요리인 줄 알고 있습니다.
김치는 묵을 대로 묵고도 환영을 받습니다. 나도 묵을 대로 묵을 다음에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