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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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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시래기국


BY 골때엄마 2001-01-30

결혼한지 거의 9년이 되어가지만 난 솔직히 배추 김치를 담을 줄 모른다.

큰언니가 담아준 김치나, 형님이 담아준 김치를 먹으면 맛이 있는데 내가
그 김치들을 흉내 내어 담으면 영 맛이 없고, 멋쩍기만 하다.
그래서 내가 담은 김치는 일부러 시게 만들어서 찌개나 끓여 먹는 정도다.

올해도 큰언니가 배추김치랑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몇통씩 담아
주었다. 굴을 넣어 담은 김치는 빨리 먹으라고 해서, 가져 오자 마자
한포기 꺼내어 먹다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포도나무 아래의 마당 한 귀퉁이에다가 김치를 보관하는 작은 움막을
짚으로 지어 그곳에 김치 항아리를 묻고 , 아침이면 벌건물이 뚝뚝
흐르는 김치를 가져와서는 고춧가루양념이 묻은 손을 씻으시던 엄마.....

하얀 햅쌀밥을 지어서 맛이 알맞게 든 김치를 쭉쭉 손으로 찢어
밥숟가락위에다 척척 걸쳐 먹으면 진짜 맛이 좋았다.

거기에다가 된장을 풀어 끓인 시래기 국이라도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게 없는 밥상이었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큰언니는 늘 출근 시간에 쫓겨 시래기국에다
고추장을 한숟가락씩 넣어 비벼 먹고 나갔기 때문에, 큰언니가 먹고 난 대접은 항상 벌갰다.
그럴때 마다 엄마는 큰언니를 보고,

"저러다 또 속 따갑다 그러지....... " 하며 덜 맵게 먹을 것을 염려 하셨다.

그리고 또 큰언니는 내가 밥먹다가 한눈을 파는 사이 일부러 내 밥을 한 숟가락씩
퍼가곤 했는데 그걸 알고 내가 성이라도 내면 온 가족이 재밌다고 웃었었다.
끼니를 굶을 만큼 가난했던 것도, 그렇다고 부자도 아니었던 우리집....
부모님이 손수 지으신 배추나 무로 담은 김치와 엄마 특유의 솜씨로 담은 고추 짠지
모두다 맛이 있었다.
가끔씩 벌건 돼지고기국이라도 배추를 넣어 끓이면 우리 식구들의 두리반은
정말 신이 났었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해서 였을까.....
요즘 아이들 같이 밥을 잘 안먹는 아이도 없었고, 고기나 햄 없으면 밥을 못먹는
아이들도 없었다.

학교에서 도시락 뚜껑을 열면 거의 다가 "신기무침 " , "콩장" , "김치"가 주된 반찬이었고,
어쩌다 한번씩은 계란이나 오뎅을 볶아 오는 아이들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런애들은 선생님의 자식들이나, 공무원집 아이들이었다.
책가방에 도시락을 잘못 넣어서 김치 국물이 쏟아져 벌겋게 책을 다 적셔도 부끄러운
줄도 몰랐었고, 누구하나 냄새난다고 핀잔을 주는 아이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고, 요즘 아이들 같이 이기적이지도 않았 던 까닭이었으리라.......

오늘은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먹던 두리반 생각이 나서, 슈퍼에 가 배추 시래기를
사서는 된장을 풀고, 갖은 양념 다 넣고, 맛이 있으라고 쇠고기까지 넣어 끓였는 데도
제맛이 나지 않았다.
도리어 쇠고기를 시래기 국에 뭘 하러 넣었냐고 남편은 핀잔까지
주며 시어머니에게 가서 국 끓이는 법을 좀 배우라고 했다.

내가 어떤 방법을 써서 끓이든 옛날의 그 맛이 날까.....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먹던 시원한 동치미와, 시래기국과, 엄마의 그 김치 맛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