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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2)-오늘은 뭐 해 먹을까?


BY bingo2 2001-11-03

오늘은 뭘 먹을까?
올해로 주부 경력 만 8년하고 6개월...그런데 아직도 난 이 원시적인 고민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산다.오늘은 금요일.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내가 내일 아침 달콤한 아침잠을 즐기기 위해선 내일 아침 준비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난 금요일 저녁이 더 괴롭다.(미국은 토요일도 회사 안감.)

울 남편은 회사 안가는 날은 눈뜨자마자 밥달란다.우리 둘째아들도..어떻게 눈 뜨자마자 밥이 그렇게 잘 들어갈까 ...아무리 봐도 난 불가사의데 ...우리 남편은 반드시 찌개나 국하고 아침 먹어야 한다.눈 뜨자마자.안 그러면 라면이라도 끓이란다.그래도 어떻게 아침부터 라면 먹일 수 있으랴...그건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난 프로니까.프로 주부(?)..(그래도 가끔 먹이기는 함.아주 가끔.급조할 국이 없을 때)

그래도 지금은 많이 형편이 나아진거지.우린 1년 전까지만 해도 버팔로라고 나야가라 폭포로 유명한 촌동네에 살았다.거기에는 한국 교민이 그렇게 많지 않아 한국 슈퍼라곤 옛날 60년대 동네 골목마다 있었던 구멍가게 2개가 전부였다.일 주일에 한번 슈퍼 아저씨가 인근의 큰 도시로 가서 콩나물이랑 생선이랑 이런거 가져 오시면 그 날은 시골 5일장 서듯 여자들이 장보러 가곤 했다.반드시 전화로 오늘 물건이 들어 왔는지 확인한 후에. (가끔 아저씨 사정상 건너 뛰는 주도 있었으니까)

어쩌다 인근의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토론토로( 인근이래도 보통 고속도로로 2시간 그것도 캐나다 국경 넘어) 장보러 가면 처음 장터 구경 나온 새색시 같이 살 것이 너무 많아 뭐부터 카트에 담아야 할지 몰라 우황좌황하곤 했다.그러면 우리 남편 제발 흥분하지 마라...하며 쫓아 다니고 ...남편 위해 풋고추도 다섯 봉지,고등어 다섯마리 ,조기도 사고,아이들을 위해선 초코파이도 한 막스,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도 몇개..그리고 짜장면이라도 한그릇 먹고 오는 날엔 정말 행복했다.이 글 쓰고 있으니까 강원도 두메 산골 아낙이 그려진다.그래도 아무튼 그렇게라도 한국 음식으로 먹고 살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잘 .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한국 사람들 무지무지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 처음 이곳에 이사와서 한국 슈퍼 가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너무 크고 없는 것 없이 다 있어서...한국 보다 장보기 더 좋을거다.온갖 한국 야채,생선에다 중국,일본 음식까지 그리고 미국이니까 양식 재료는 기본이고...근데도 뭘 해먹을까 하는 고민에선 해방되지 못 했다. 해방은 커녕 더 괴로운데...왜냐하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한번 업 그레이드 된 것은 무엇이든 다시 내려 오는 법이 없으니까.특히 고놈의 혀는...

예전에는 어쩌다 구한 삼겹살만 봐도 아는 사람 다 불러 술 한 잔 해야 한다고 행복해 하던 남편, 무엇이든 뜻뜨한 국물에 김치만 있어도 감사히 먹겠습니다를 연발하던 남편이 변한거다. 요즘은 으레 퇴근 시간이면 오늘은 뭐 맛있는 거 할건데 하고 전화한다. 술 좋아하는 울 남편 그것도 안주거리로만...오늘은 금요일, 저녁겸 술상 봐줘야 한 주가 엔진 오일 새로 간 차처럼 부드러울 테고.. 덩달아 내일 아침 해장국까지...뭘 해 놓으면 뻑뻑한 남편 일상에 부드러운 기름이 될까? 아! 머리 아파...이렇땐 평생 직장 사표 내고 싶다. 왜 주부는 명퇴도 안될까? 우리도 그동안 수고한 퇴직금에다 몇달치 월급 위로금조로 얻어 명퇴하라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