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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51) *남편에게 기대고 싶을 때...*


BY 쟈스민 2001-10-29

집안에서도 종종 물건을 찾고 있는 남편을 볼 수가 있다.

핸드폰을 어디다 두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지 전화를 걸어서
벨소리 따라가기도 빈번하고 ...
미처 챙기지 못하고 나간날에는 다시 들어오기 일쑤이다.

언젠가 한번은 남편이 대구에 출장을 간일이 있었다.
택시에 핸드폰을 놓고 내렸다고 한다. 업무상 폰이 없으면
당장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어서 다시 하나를 새로 만들었다 한다.

며칠후 남편은 자신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핸폰을 주은 이와
통화를 하고 전화를 돌려 받으니 졸지에 폰이 두개가 된 것이다.

전에부터 내 핸폰이 좀 된것이라 바꿔주었으면 하는 나의 바램을
그냥 지나치더니 잃어버렸다 찾은 그 것으로 교체를 해주마 했다.

남아도는 것이니 그냥 내 차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 며칠만에 여기 저기 긁히고 디자인도 별로인 것 같아서
그냥 그럭 저럭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나는 슬그머니 얼마남지 않은 결혼기념일을 들추기도
하면서 기왕에 바꾸는 거 내 마음에 드는 슬림한 디자인으로
선물받고 싶다는 의사를 비춘다.

물론 내가 직접 가서 내 마음에 드는 걸로 내 능력껏 하나 장만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선물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 넌즈시 기대어 본다.

남편이 나를 위하여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을 가까이에서 늘
느끼면서 살고싶음이 나를 그리하게 한 것인 듯 하다.
결코 새 물건이 탐나서 ... 나의 주머니 사정 때문이 아닌데도
그냥 한번 기대보고 싶을 때가 있는 걸 보면
나도 그에게만큼은 연약한 여자이고 싶은 가보다.

요즈음 남편은 가족들에게 얼굴 보여줄 시간조차 없을 만큼
동분서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휴일날에도 쉬지 못하는 그가 안타까워서 가족나들이 한번 못간다
투덜대다가도 불평 불만이 어느틈엔가 수그러들고 만다.

바쁜 만큼 배가되는 수입은 있을지 모르나 생활속에서 얻어질수
있는잔잔한 재미는 그전 보다 덜 한 것 같다.

무일푼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일구어 온 그의 노력을 높이
사고 싶어서 ...
사업하는 사람들 아내가 때로는 자금줄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데
자신의 힘으로 지금껏 유지하여 갈 수 있는 그의 능력앞에 무한한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그의 어깨에 요즈음은 조금씩 힘이 실리는 것도 참 보기가 좋다.

좀체 들어내놓고 칭찬을 잘 하지 않는 아내의 깊은 속을 그가 다
알리는 없지만 그가 자기 사업에 최선을 다하여 애씀을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가끔씩 바쁜 와중에 전화 걸어서 집에서 밥 먹고 싶다고 한다.
그럴때는 꼭 어린아이 같다.

반찬 없는 밥일지언정 아내의 손으로 지어주는 밥이 먹고 싶을
만큼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은 그와 밥상을 마주하는 일은
거의 입맛 없는 아침이 전부인 것 같다.

남편이 바깥일에 온신경을 기울이고 있을 때
나는 또 아이들에게 그가 하지 못하는 몫까지 다 해주어야 하는
이유로 아이들 곁에 놓여진 내 존재의 소중함을 문득 문득 느끼며
그리 산다.

그렇게 말없이 언제나 그자리에서 아내이며, 엄마노릇을 하는 나도
가끔씩은 남편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는 평범한 아내인 것을
그가 알았으면 좋겠다.

여간해서 죽는 소리도 않고, 아프단 소리도 않는 아내가 철인이
아님을 그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주 자주 돌아보야야 하는
때로는 나약한 존재로 자리잡고 있었으면 ...

늘어나는 통장 잔고만큼 꼭 행복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도 알았으면 ...

오늘 아침엔 나도 남편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는
어쩔수 없는 여자이고 마는 나를 본다.

거리의 플라타너스잎에도 노란 가을이 와 있다.

푸르른 가을 하늘만큼이나 그의 꿈이 차곡 차곡 영글어 가서
열매 맺을 수 있기를 나는 이 아침에 소망으로 남기면서
내게 주어진 또 하루를 그렇게 열었다.

너무도 예쁜 풍경들이 곳곳에 자리 하고 있다.

눈이 즐거운 계절 ...
마음까지 덩달아 즐거워져서 살아질 내 앞의 시간들에
설레이는 가슴을 부풀린다.

기대고 싶을 땐 그냥 기대어 보는 것도
행복해질 수 있는 한 방법일 테니
마음 가는 대로 그리 살아보는 일도
참 괜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