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14세 미만 아동의 SNS 계정 보유 금지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27

너덜이와 겉절이.


BY cosmos03 2001-10-28

너덜이와 겉절이.


딸아이가 3 살무렵...
옹알이가 무척빨라 말도 제법 빨리할줄 알았다.
그런데 녀석은 3 살이 지나도록, 별반 똑 부러지게 잘 하는 말이 없다.
엄마! 아빠! 맘마, 어부바~ 정도...
그림책을 한권씩 펴 놓고는 아이게게 말을 가르쳤다.
얼룩말...사자...호랑이~ 하면서 말이다.
하나씩 짚어가며 가르칠땐, 애가 제법 하는가~ 싶다가도.
돌아서면 도로아미타불~

어느날이다.
" 엄마, 엄마... 너덜이, 너덜이~ "
한다.
무얼갖고 저러나? 싶어, 아이가 가르키는 책을 보니.
너구리 그림이 그려져있다.
언젠가 너구리~ 하고 말해줬던걸 아인, 기억이나나보다.
" 아가! 너덜이가 아니라, 너. 구. 리. 해봐~ "
" 너. 구. 이. "
" 아니, 아니 말고... 너, 해봐 "
" 너 "
" 구 해봐 "
" 구 "
" 옳지. 잘했어. 이젠 리. 해봐 "
" 이 "
우이쒸~
그날 하루종일을 아이와 엄마는 너구리와 너구이... 그리고 너덜이로
보내야했다.

그렇게 너구리 한 단어로 지내다가.
온양에 있는 엄마, 아버지의 산소에 성묘를 가게됐다.
아마도, 한식때쯤일꺼다.
황량한 논을 앞으로 바라보며 아이의 노는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가 폴짝 거리며 뛰어온다.
" 엄마, 엄마. 겉절이... "
" 엥? 웬 겉절이? "
아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우리내외.
아이를 앞장세우고 뒤 따라가니.
때이르게 나온 개구리 녀석이 제대로 뛰지도 못한채
논 한가운데서 오도마니 앉아있다.
" 어머나~ 개구리네 "
하는 내 말에... 아인 도리질을 하며 말한다.
" 아냐, 엄마. 겉절이야 겉절이... "
어떻게 비슷도 하지않는 단어와 연결을 시킬수가 있나~
참 신기하기 까지 하다.

다시, 아이와 그 엄마... 단어 공부에 들어간다.
' 아가! 엄마따라 해봐. "
" 응 "
아이는 턱 밑으로 바짝 닥아와서는 날 바라본다.
정확히는 제 엄마의 입 모양새이겠지만...
" 개. 구. 리. 해봐 "
" 겉. 절. 이. "
이론~~~~~~~~
" 아니, 아니, 아니고... 개. 해봐 "
" 개. "
" 구. 해봐 "
" 구이~ "
웬, 구이?
" 아니..구. "
하고는 입모양까지 크게 해서는 한자한자, 아이에게 가르친다.
다시또, 아이는
" 구이~ "
한다.
" 좋다. 그럼 넘어가고. 요번엔 리. 해봐 "
" 이~~~~~ "
미치겠네. 왜 발음이 저리도 안 돼지?
" 아가, 아가... 개. 구. 리. 이렇게 해봐. "
" 겉. 절. 이. "

쓸다리 없는 고집은 지 에미를 닮아서리~
" 너, 여기 똑바로 앉아봐 "
" 개. 구. 리. "
" 겉. 절. 이. "
흐이구~~~~~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뒤집어지게 웃더니...
" 애를 잡을일이 있냐?. 고만 해라 "
한다. 남은 지금 약올라 죽겠고만... 이 남자는 웃어?
왜 다른 아이들은 여러개의 문장도 모두 꿰 차는데...
우리아인 너구리, 개구리도 못할까?
생각하니 화가나고... 내 아이가 조금은 바보같아 보인다.

백일도 되기전부터 혼자서 엄청히도 시끄러웠었다.
보는사람마다 말 한번 빨리 하겠다고 했는데...
이미, 세살이 지났는데도 어쩌자고 개구리도 너구리도 모르는가?
아무리 열번을 스무번을 너구리와 개구리를
아이의 머리속에 꼭꼭 주입을 시켜도...
우리아인 죽어도 고! 라고...
너더리와 겉절이 인 것이다.
그 너덜이와 겉절이가 언제부터 너구리와 개구리로 돌아왔는지는 모르나.
지금도 가끔은 개구리를 보고는
" 와~~~ 저기, 겉절이 간다 "
하면 아인, 마구 화를내며 지네 엄마를 꼬집어 뜯는다.
지금이야 그 정도는 충분히 할수있는 초등 6년이지만...
아이의 어린시절이 떠올라 잠시, 과거로가는 열차에 몸을 실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