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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에서 (7)보낸 선물, 받은 선물


BY 영광댁 2001-01-22

변두리에서
보낸 선물, 받은 선물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준비를 서둘면서 몇번씩이나 신발신는 곳으로 눈길이 갔습니다.
가방안의 것들이나 아이들 먹을 것을 챙기다가 잊어버릴 줄 몰라서 마음이 불안하기까지
했습니다.
저 작은 물건이 그리 대단하였느냐 묻는다면 거침없이 그럼 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오늘 내가 들고가는 선물은 퍽이나 마음이 다정했습니다.
아이들이 방학한 겨울 아침 여덟시에 남의 집으로 전화를 한다는 것도 다소 실례가 되는
시간이언만 오늘 내가 만나야 하는 그녀는 집을 나서면 접속을 할 수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침을 하다가 달려왔는지, 아니면 생판 전화도 안하는 내가 전화를 해서 그러는지
수화기를 통해오는 그녀는 숨이 차 있었습니다.
오늘 만나 , 꼭 만나야 할 것 같애. 무슨 일이냐 묻지말고 어디서 만날까.
장안동 전철에서 내려서 그 자리에 서 있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녀는 거기에서 내려 생업의 길로 나가고 나는 내 생업의 길에서 20분 가서 만나는 자리이므로 만난 후에는 다시 돌아서서 전철을 갈아타고 올 수 있는 곳으로 만남을 정했습니다.
내가 타고 가는 버스는 늘 한강을 건너갑니다.
20년만에 왔다는 한파는 한강 전체를 꽁꽁 얼게 만들었습니다.
이 한강을 넘나들면서 가장자리로 살얼음이 낀 한강을 보기도 하였고 몇 년전엔 이번처럼은 아니지만 얼음이 얼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봄날에는 저 멀리 안개가 낀 강물위로 햇살이 부시게 반짝였고
얼음이 얼지 않은 아침마다의 강물은 햇살을 부셔 내 가난한 눈과 가슴으로 스며들어
나를 울렁이게 만들었습니다,
가슴에 차곡차곡 설움이 일었다가도 언제나 소리없이 출렁거리며 흐르는 강물 앞에서
얼마나 많은 푸념을 쏟아 냈는지 말을 할 수 있는 강물이라면 다시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이들을 이불속에 말아넣고 추우니까 바깥에 나가지 말라고 수없이 일러두고 언 강물을 건널때는 언 강물이 내게 무슨 해꼬지를 했다고 두고 봐 돌아갈 땐 절대 그냥 안가 그랬어요.
커다란 바구니에 돌을 잔뜩 담아와서 저 강을 들러매고 있는 얼음을 다 깨놓고 말거야.
저 얼음들 다 깨놓고 집으로 가야지. 그러면 집안을 두르고 있는 얼음도 다 깨져 있을거니까 더 이상 추위는 없겠지. 그렇게 억지를 부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석양에 부셔지는 물길속의 물빛들을 만났을땐 수많은 물결위에 나를 태우고 싶었어요. 그 잔물결 하나하나에 나를 실으면 내가 삶에 부담을 느끼는 어려움과 짜증과 서러움에서도 놓여 날 것 같았어요. 그러나 버스는 바다에서 막 잡은 싱싱한 고기의 힘쌘 몸짓처럼 빠르게 달려 순식간에 강물을 건너가 버렸고 그 물결위에 나를 싣지 못한 채 설 명절을 맞았습니다.
오늘 건너는 이 한강은 내가 어느 첩첩한 삶의 굴곡을 따라 걸을때보다 더 단단하고 강하게 얼음이 얼었지만 선물을 들고 가는 내 마음은 고만 훈풍이 불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만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궁핍하나 궁핍해 보이지 않고 궁핍해 보이는데
궁핍해 하지 않은 세상의 모든 역설을 가진 저에게 그녀가 어느 여름에 한 덩어리의 돈을 내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이유없이 받을 수 없었고 고마움을 다 말로 할 수 없었음에도
그녀는 주고 싶어했습니다.내가 내 허물을 볼 수 없으니 주고 싶도록 허덕이기도 했을테지요, 내가 하루에 만나는 얼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녀만이 나를 알아보기도 했을 겁니다.신경을 곤두세우고 거절을 하였다가 이 젊은 나의 날들이 항상 오늘 같게만 하겠냐 마음을 돌려세우고 눈물을 머금고 참 고맙게 받았습니다.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받은 돈은
논바닥 쩍 쩍 갈라진 가뭄탄 논에 사흘밤낮으로 자작하게 내린 비가 되어 생활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내가 사람으로서 가슴을 스며들 수 있는 것을 간직하였다는 것이 그토록 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나름의 해석이었지만 사람의 숲에서 사람만이 희망이였습니다.

남편은 우리가 고마운 마음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설날 돌릴 선물로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은 인삼정과 네개와 꿀 세 통를 사다주었습니다.
전철역안에서 만난 그녀에게 가슴에 품고간 우리 농산물이라 적힌 인삼정과 한통을 내밀었습니다.자기는 집도 한칸 있고 모아놓은 돈도 조금 있는데 반하여 방한칸 없고 무일푼인 내가 자기보다 훨씬 행복해 보인다며 부끄러워 하던 그녀는 내가 내민 선물에 그만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 맙니다.내가 받아도 되는 거냐고 참 엉뚱하다며 마냥 웃고만 있습니다. 내가 발걸음 가볍게 들고온 선물이니 언니 너도 가볍고 기쁘게 받아라 잘난체를 하고 맙니다. 네 살이나 많으니 언니도 한참 언니인데 내 키가 더 크다고 내가 언니인체 하였습니다. 설 잘 쇠고 건강해라 하고 돌아서 왔습니다.
문득 내 가슴에 무지개가 떳었다고 말합니다.무지개는 하늘에서만 뜨는게 아니였습니다.

전철을 돌고 돌아 방학동에서 내려 언니네집에 갔습니다.
전화 한통 없이 불쑥 ?아들었더니 언니는 김치를 담고 있었고 옆집에 사는 사람이 온줄 알았던지 문을 열어준 사람은 사둔 어른이셨는데 뜻밖의 얼굴을 만난 그분은 얼마나 반가이 맞아주시던지 막 피어난 접시꽃처럼 말갛습니다.
언니는 시어머니랑 모녀처럼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번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우리 시어머니께 잘하면 그 기운이 아픈 친정어머니께로 돌아가지 않겠니, 엄마 돌봐 드리지 못해도 이 기운 늦게라도 돌아가지 않겠니? 엄마가 조금이라도 빨리 괘차 하시지 않겠니?라고요. 그러겠지요 ,수화기를 잡고 대답만 했는데 흐르는 눈물을 다 닦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몸이 아픈 우리들의 어머니께 갈 수 없는 마음을 그렇게 다스리며 살고 있었어요, 내 삶의 커다란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살고 있던 언니가 말이지요.
사둔 어른도 계시고... 부끄럽다며 가슴에 품고온 인삼정과를 식탁위에 놓았습니다.
사돈어른은 별걸 다 가져왔다고 말씀하시곤 설에 먹을 김치를 하다가 김장이 되었다시며 이내 잘됐다 에미야 이모가져가시게 이 통에 김치 담아라시며 커다란 통에 막 버무리기 시작하는 김치를 차곡차곡 넣기 시작하셨습니다. 언제라도 한번 다녀가시겠지 하시면서 담궈놓고 기다렸다며 집장 한통도 내 주셨습니다.다른 시대를 살으셨고 이내 같이 늙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여자들로서 삶을 그 어른을 보고 배우는 것이 늘 주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그리 넉넉한 살림이라던가 편안한 삶을 살아오신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요, 그 분이 나를 바라보는 눈길은 엄마를 닮았습니다.
가져가기 무겁다고 극구 사양을 해도 당신이래도 들어다 주겠다는 말씀에 큰 보따리 두 개를 챙겼습니다. 그 분의 눈길이 엄마를 닮았다면 언니도 엄마를 닮은 거고 나만 행복한 건가요. 엄마들에 묻혀 사니까요.

그날 내가 드린 선물들은 비단 인삼정과 두 박스뿐이였는데 내가 받은 선물은 훨씬 많았습니다. 해가 저물어 가고 다시 한강 다리를 건너 옵니다. 요행히 마음씨 착한 택시 기사분까지 만나 골목으로 가면 차 돌리기 힘들거라고 집에서 한참 먼 곳에서 내리겠다고 하니
이 무거운 김치를 들고 어떻게 이 길을 걸어올 생각을 했느냐며 집앞 부근까지 차를 몰아
내려 주고 가셨습니다.
항상 눈물을 머금고 건너가고 건너왔던 한강다리를 오늘은 가슴을 설레이며 지나가고 지나왔습니다. 내 선물이 비록 값이 싸고 엉성하였더라도 내 가슴에 무지개가 피어올랐으니
이만 하면 되었겠지요.
어머니께서 제 딸이 보낸 편지 잘 받았노라 전화가 왔길래 언니네 집에 다녀오고 김치랑 이것저것 한 보따리 받아왔다고 자랑했습니다. 네가 무슨 돈이 있기나 하였다고...
하시길래 이제는 많아요 어머니 제가 무슨 기운으로 살았게요. 했습니다.
그래 잘했다. 암 그렇고 말고 , 사람이란 그건 정으로 사는 거란다 하십니다.
그래요, 그런 정으로 사는 거겠지요. 내년에는 더 많은 분들에게 선물을 돌리고 싶습니다.
내가 목말라 물 한 그릇이라도 얻어 사람에게라도요. 1/22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