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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우울증을 앓는 20대 여성의 조력 자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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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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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눈 어두운 남편


BY 분홍강 2001-10-25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울 신랑과 울딸 그리고 나는 새로 생긴 목요탕에 가기로 하고
오후 쯤 집을 나섰다.
요즘은 목욕탕이 경쟁이 심해서 왠만큼 시설해서는
사람들 끌기가 쉽지 않은지 너두 나두 시설을 초대형으로
고치고 온갖 찜질방에, 불가마에, 휴게실에 그야말로
호텔 사우나처럼 잘 꾸며 놓은데가 많아 우린 일요일이면
새로 생긴 목욕탕 탐방(?)하는 재미로 보내곤 했다.
으례껏 목욕하고 나면 외식을 하곤 했는데
그날은 목욕이 일찍 끝났는지 식사하기 어중간한 시간에
나오게 ?榮?

목욕하고 밖에 나오니 바람도 살랑살랑 시원하고
상쾌한게 기분이 그만이었다.
"우리 밥먹기 까지 시간이 애매한데 통일동산이나
한바퀴 돌고 올까?"하고 남편이 물었다.
"그럼 그럴까~?"
난 남편의 운전 실력과 길눈 어두운걸 알면서도
'이번엔 잘 찾아가겠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맞장구를 쳤다.
집에서도 멀지 않고 해 질 때도 아직 멀었으니
드라이브 하는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하곤 동의를 했다.

"자기 ~근데 ...통일동산 가본적 있어?"
"응 ~ 전에 형들 하고 어머니하고 갔었잖아..그때 자긴 피곤하다구
집에 있었구.."
"아~하! 그랬었지? 생각 난다.그 때 ...."
"자기, 그럼 길은 잘 알겠구나?"
"가봤으니까 가다보면 알겠지..."
이말에 안심한 나는 음악에 맞춰 발장구도 치며,
흥얼 흥얼 노래도 따라 부르며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만 감상하고 있었다.

평상시에 울 남편의 운전 실력과 길눈 어두운 것에 대해
먼저 덧붙이고 넘어가야 이해하기가 편한관계로
잠시 도움말씀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친정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데,
울 친정집은 신도시의 단독 주택이어서(남들은 단독이라 하면
엄청 으리으리 하고 넓은 정원에 나무가 가득하고 테라스에
예쁜 테이블이 있는 이런 집을 상상하는데 그건 아님)
집들이 다닥 다닥 붙어있는데다,
집 모양이나 색깔이 비스비슷하여
처음 찾아 오는 사람들이 조금 헤메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집을 못 찾는 사람은 보지는 못했다.

같이 외출하고 돌아 올때면
우리집 골목 들어 올때 마다 꼭 내가
"여기서 우회전이잖아"이런 맨트를 날려 줘야만 했던
날이 한 일년은 족히 되지 싶다.

그런데 왠일로 남편이 길을 다 안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쨋든 일단 내가 지도를 봐야 하는
부담은 없으니까 편하긴 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만 가도 항상 지도책을
상비하고 다님)

그런데 이상한 것이 아무리 자유로를 달려도
통일동산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 이렇게 오래 걸리나...?"
"자갸 제대로 가는 거 맞아?"
운전석으로 고개를 돌리니 울 신랑 표정이 심상치 않다.
뭔가 잘못?瑩?싶은데...저 멀리서 반짝 반짝 불빛이 보인다.
통일동산 주변에 있는 음식점이며 까페의 불빛들이
화려하게도 빛나고 있었다.

이미 우회전해야 할데를 놓치고 계속 직진만 했으니....
"자갸 ~ 길 잘못 들어 온거 같은데...."
"..........."울 신랑 묵묵 부답
"어떻게... 길도 모르는데...계속 가면 북한아냐..??"
"걱정 하지마...알아서 갈테니까..."
"그냥 돌아가자 ..이게 뭐야 ..길 안다고 해 놓고서...우~쒸"
나는 이번에도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자 입이 나와버렸다.
" 어떻게 남자가 되가지구 운전 할때마다 헤메냐 헤메길..."
성질 급한 나는 참지 못하고 팍 쏴버리고 말았다
"알았어 미안해 ...가만 있어봐 ..자꾸 그러면 더 헷갈려..."
"이그 ...핑계는 ...."

이미 해는 저버리고,가로등도 제대로 없는 길로
울 신랑은 차를 몰았다.
가도 가도 집은 나오지 않고 꼬불 꼬불한 논길만 계속 되었다.
이미 사방은 깜깜하고 보이는건 멀리 떨어진 집 몇채 뿐.
기름은 바닥을 가리키는데 주유소는 보이지도 않구...
여기서 기름 떨어지면 우린 우짜냐.....
"기름 좀 넣구 오지 ..이게 뭐야 기름 떨어지면 어떻해?"
"아직 충분해 ...걱정하지마 집까지 가고도 남으니까"
길도 못찾으면서 여유를 부리는 걸 보니
더 얄밉고 짜증이 밀려 왔다.
이렇게 몇마디 주고 받다가 급기야
나는 차에서 내려 버리고말았다.

첨 내릴 때는 금방 따라와 잡을 줄 알았는데 울 남편 잡지를
않는것이었다.
'뭐야..한번 해 보자는 거야?'오기가 생긴 나는
속으로 궁시렁 거리며
연신 앞만 보며 걸었다.
한참 가다 돌아 보니 차도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없고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지갑도 가져오지 않은데다 핸드폰 배터리도 얼마 안 남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모르는 동네에 오니 무섭기도 하고 어려서 엄마 따라나섰다가
잃어버렸을 때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계속 걷고 있으려니 전화가 울린다.
"미안해 자갸! 지금 어디야? 연희 울고 난리 났다."
"몰라 ! 끊어. 나 혼자 갈거니까 자기도 그냥가."
맘에도 없는 소리만 자꾸 나왔다.
날은 어둡고 옷은 얇게 입고 나와 오들 오들 한없이 떨리기만 했다.
차문 콱 닫고 나왔는데 다시 돌아갈 수도 없구
너무 난감해 하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클랙션 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 불빛이 나를 감쌌다.
"자갸 ~미안해 빨리 타라 ..집에 가야지."
차에서 뛰어나온 울딸
"엄마~~! 빨리 타 ~~엄마 안 타면 나도 안 탈거야~~엉~엉."
울 딸내미 우는걸 보니 나도 눈물이 흘렀다.

할 수 없이 못 이기는척 남편과 딸내미 손에 이끌려
차에 탔다.
차에 타고 보니 길잃은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앉긴것 마냥 푸근하고 안심이 되었다.
결국 밥도 못 먹고 집에 돌아 왔지만
그래도 그날 얻은 것은 있다.
차에서 다툴 경우엔 절대 차에서 내리면 안 된다는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모르는 곳에서는 ...
울딸 앞에서 다툰것도 너무 미안하고...
그 다음 부터 어디 좀 장거리 간다 싶으면 울딸 한다는말이
"엄마 또 차에서 내릴꺼야?"하며 묻곤 한다.
아이고~! 망신이 따로 없죠?
이젠 절대 안 내린답니다.
내리라고 떠다 밀어도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