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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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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와 잠자리


BY poem1001 2001-10-24

초등학교 시절
아니 그때는 국민학교였던 시절에
가을날의 등교길이 떠오릅니다
서울 외곽이었지만 그때는 버스도 드물고
또 버스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도 없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족히 한시간은 걸리는
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학교를 오고 갔습니다

아침에 책가방을 메고 길을 나서면
이슬맞은 코스모스위에
아직 날개가 마르지 않아 날지 못하는
잠자리들이 잠이 덜 깨인 채로
내 손에 들려졌습니다
나는 코스모스에서 떼어낸 잠자리들을
내 앞 가슴에
팔 위에
또 동생 머리 위에도
친구 가방 위에도 붙여 주었습니다
잠자리는 우리가 뛰어도
아무리 떠들어 대도
날개가 이슬에 젖어 날지 못하고
숨죽여 우리와 함께 등교길을 동행해야만 했습니다

학교 가는 길
중간쯤에 이르고
햇살이 제법 따스해 지면
길가에 헤프도록 많이 피어 있던 코스모스들은
머리 흔들어 이슬을 털어 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몸에
가방에
머리에 숨죽여 붙어 있던
잠자리들의 비상이 시작 되었습니다
우린 잠자리들의 날개가 더 빨리 말라 날아 오르도록
힘차게 뛰어 갔습니다
그러면 우리 몸에선 잠자리들이 날아 올랐습니다
마치,오랫동안 숙원하던 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는 날마다의 가을 아침길
잠자리의 비상에 환호성을 질러 댔습니다

그렇게 해가 퍼지면
우린 코스모스 꽃을 따서
손바닥 쪽으로 꽃을 향하게 놓고는
앞서 가는 친구 등짝에
찰싹 소리 나도록 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 친구 옷등에는
빨갛고 주황인 코스모스 무늬가 베겨 났지요
앞서고 뒤서고 뛰며
서로의 옷들을
코스모스 무늬로 가득하게 할때쯤이면
저만치에 학교가 나타났고
아마도 우리가 달려 온 길가에는
온통 우리가 찍어 내고 버린
코스모스 꽃들이 가득했을 겁니다

올 가을엔
코스모스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잠자리는 또 어디에서 지친 날개를 쉴까요..
가을은 추억과 회상의 계절인가봅니다
새삼스레 잊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는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