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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47) *가을을 만나던 날...*


BY 쟈스민 2001-10-24

어제는 모처럼 가을을 만났습니다.

직장에서 체육대회를 겸한 등산이 있는 날이었지요.

봄,가을로 있는 행사인지라 의례적일수도 있겠지만
유독 가을 산행은 너무도 아름답기 그지없어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나를 설레이게 했습니다.

산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한번 오르면 다시 내려오고 싶지 않을 만큼 그러면서도
나는 늘 바라보는 산으로 그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바라보는 산은
갖가지 색채들의 향연으로 빛났습니다.

오르는 산은
숨가쁜 후의 상쾌한 공기를 가르게 해 주고
그 속에 한번 빠지면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줍니다.

내려오는 길초에는
그 산만큼이나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신 듯한
할머니들이 계셨습니다.

향긋한 내음이 날것만 같은 표고버섯과 ...
뽀얀 속살을 드러낸 토란 ... 그리고 더덕과
별로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는 은행과, 알밤 , 도토리 ....

산에서 얻어진 것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순수한 자연산이라 하는 도토리묵가루를 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자식들 먹이시려 팔이 아프게 묵을 저으시던 그 넙적하게 생긴
주걱의 놀림이 힘겨워 보이시던 그날들이 떠올랐습니다.

도톰하게 생긴 표고를 만지면서
내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라 하면 그 아이들도
그 향기를 느낄 수 있을까 ...

나는 어느새 어쩔수 없는 아줌마가 되어 주섬 주섬 보따리를
챙겨들고 있었습니다.

생도라지 한 무더기에 이천원이라 하시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마음속으로는 껍질 벗길 걱정을 하면서도
그 도라지 한무더기를 샀습니다.

아이들의 기침 해소에 좋다하여 냄새가 다소 났지만 작은 은행자루
하나도 사기로 합니다.

맛깔스러운 더덕구이 산채정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니 졸음이 올것만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왜 그리 노래들은 불러대는지
취기가 오르자 어느덧 흥겨운 노래들이 산자락에 흩뿌려집니다.

오후 일정은 족구를 하기로 되어 있어 뜨거운 함성으로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한때를 보냈습니다.

시원하게 공을 뻥뻥 잘도 차는 직원들의 다리는 언제 등산을 했나
싶게 참 씩씩하기도 하였지요.

모두들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했습니다.

이미 자신의 나이만큼 늙어버린(?) 자신의 몸을 느끼는 이도
아마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루가 참 짧게 느껴졌습니다.

잠깐동안 ...
산속에서 아무생각 없이 푹 파뭍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걸음 물러서서 지금 나의 생활을 바라다 보니
이렇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 조금은 다른 모양새의 답을
얻어내고 있는 나를 볼수가 있었습니다.

가을을 만나던 하루는 그렇게...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살면서 내 안에서 벗어던지고 싶은 것들을
모두 풀섶에 버리려 했습니다.

씻어낼수 있는 것이 아직 남았다면
떠나기전에 모두 씻어내고 싶은 간절한 바램이 일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웃고 즐기는 시간에도
나는 해저무는 줄 모르고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가을산과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도 또 아쉬움이 남아
가을산과 나는 우리들만이 아는 약속을 합니다.
또 만나자고...

가을산을 만나던 하루는
내게 참으로 청명함과, 푸르른 공기를 마음껏 호흡할수 있게
해주어 참 감사하다 말하게 합니다.

넉넉한 어머니의 품에서 하루를 살다가 온 내가 되어
저무는 저녁까지도 훈훈한 바람을 옷깃에 매달고서
그리 돌아온 고마운 하루입니다.

내일은 아마 오늘보다 조금 다른 내게서
진한 가을향기가 묻어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나를 아는 모든이들과 그 향기를 나눠가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