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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에서 겨울 아침의 회상(6)


BY 영광댁 2001-01-20

변두리에서 겨울아침의 회상(6)

정갯간. 둘

뻥새야.
어제 하다만 정갯간 이야기 또 해야겠지.

우리 아랫집에 살던 먼 친척 군일할머니는 딱 두 내외분만이 사셨단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사시던 정재가 그려진다.
바라지를 넘어서면 부뚜막 옆에 무쇠솥처럼 뚜껑이 반들반들 윤이 난
물항아리가 있었단다.
할머니네 집에 샘이 없어서 우리집에서 그 뻑뻑한 펌푸물을 동우에 떠다가 머리에 이고
가서 쌀처럼 가득 채우곤 하셨던 물항아리가 있었지.
그 할머니가 새벽녘 우리집으로 물을 길러 오실때마다 북청물장사 시를 떠올렸겠지.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머리맡에 찬 물을 솨아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북청 물장사 중략.
아궁이 옆에 있는 물항아리는 그렇게 추운 날도 얼지 않았겠지.
아침에 일어나 그 허술한 정재로 나가면 어젯밤에 남겨둔 설거지통의 물도 얼었을 때니
바깥에 둔 그 무엇인들 얼지 않았으리.

물항아리 가까이 가기전에 바라지 문턱과 내 첫발이 만나는 곳.
그 반들반들 윤이 난 정재바닥이 있었단다. 오랜세월이 남겨둔 작품처럼.울퉁불퉁
솟아오른 걸 보고 부러 그 모양을 만든 줄 알았거든. 그 집에 놀러가면 그 울퉁불퉁
정재바닥을 손으로 만져보고 다녔을 게야. 손안에 들어오던 이제 막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여자아이들의 꽃가슴만한 그 동그랗던 부엌 바닥들.
아궁이 쪽으로는 동그랗게 홈이 파여 있어서 혼자 불때며 밥을 하다가도
나무청으로 불이 붙지 않도록 되어 있었단다.
나무청에는 항아리에 가득 물이 찬 것처럼 나무가 그득그득 쌓여 있었어.
나무청 옆 벽 부근 그 얌전하던 살강도 보인다.
시렁대용이나 찬장 대용으로 쓰던 살강은 그릇들이 엎어지는 부분은 대나무로 엮어져 있었단다. 살강안에는 반찬 그릇들도 있었고 먹다남은 밥들도 놓여 있었고...밤 늦은 시간에
어린 우리들이 모여 있는 집으로 놀러 오셔서는 밤새 쥐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시기도
하셨겠지. 그러다가 남은 밥들은 솥안으로 넣었고 반찬들은 두꺼운 사기그릇으로 엎어서
덮어놓기도 하셨을 걸.

불을 때다가 부뚜막에 올려둔 빛바랜 주황색나이롱 바가지에 차곡차곡 가라앉아 그만
바가지와 한몸이 되어버린 불티가 있기도 하였으려니.불티 모양의 무늬도 있었단다.
지금은 사라진 얼굴이고 ,얼룩이지만. 옛날엔 상감도 불티는 드셨다니까.

살강위에는 밥고리도 있었단다.
학돌에 문질러 쌀처럼 하얗게 씻은 보리를 한번 삶았거나 아니면
한번 삶은 보리가 조금 퍼질때쯤 솥가운데 한 줌되는 쌀을 얹어 보리에 찰기가 있게 한
하루치의 밥을 담아둔 밥바구니를 밥고리라고도 했거든. 여름엔 살강위나 바라지 위쪽에
고리를 달아 걸어놓기도 했는걸, 쉬지 말라고 .파리떼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겨울에는 솥단지 안에 넣어두었을 테지. 같이 한 밥상위에 밥 먹지 못한 늦게 오는 사람을
위해서는 밥 한 그릇 잘 담아 아랫목에 묻어두기도 했을걸. 어린 발이 많아 한 밤새 밥그릇이 열두번도 더 엎더질 때를 위하여 나중에는 농짝안의 이불속에 밥그릇을 넣어두시기도
했을 게야. 그때의 모든 내 어머니들. 아버지들. 정많고 순해빠진 언니들은...

어느 날 엄마는 실수를 했단다. 키가 작아서 밥고리가 손에 닿지 않았을 게야.
의자를 가져다 놓았으면 됐을텐데. 손 끝에 닿느다고 홀짝 뛰어 밥고리를 잡았던가.
그만 밥고리가 땅에 떨어지고 밥 덩어리가 정재바닥으로 떼구루르 굴렀으니깐.
밥덩어리를 주워들고 울었을까. 울다가 주린 배를 위하여 밥덩어리를 주워서 큰 그릇
어느곳에 담아 흙더미나 나뭇단이 붙은 것들을 숟가락으로 긁어내고 밥을 차려 먹었을까,
아 ! 그 망연하던 한 낮의 설움이라니...

그렇게 많이 넘나들던 쥐들을 위한 축제 날들도 있었을 게야.
동네 반장님이 나라에서 무상배급하는 쥐약을 나누어 주었고 오직 쥐를 잡기 위해
사온 뻔데기를 하나라도 더 받아먹으려고 엄마 옆에서 주춤거리던 우리들이 있었단다.
벅구도 꼬리를 살랑거리며 하나 안주나 안타까운 눈길을 보내기도 했을걸. 엄마 눈치보며
벅구랑 나누어 먹던 뻔데기. 지금도 길 가다 만나지만 그때 그 맛은 어디로 갔나몰라.
맛도 세월따라 가는 것일까. 내안의 시냇물이 세월따라 흘러 가버린 것처럼.
오후 다섯시쯤 일제히 사이렌이 울리고 놓은 쥐잡자는 쥐약에 동네 개들 서너마리 잡는 거은 당연지사였을까.참 쥐들도 많았어.쥐떼, 메뚜기떼.파리떼....
그리고 다음날 반장 아저씨는 집집마다 쥐를 몇마리 잡았나 헤아리고 다녔으니까.
그 쓸데 없는 전시 행정들,왜 이렇게 심술이 날까? 오늘...

연기가 올라가 덧칠할대로 덧칠해버린 부엌 천장도 보인다.
어둠보다 더 짙었던 부엌 천장에 덧칠해진 두터운 세월의 자리.
나중에는 그 천장의 검은 연기자리들도 정재바닥처럼 반들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단다.
두꺼비 집에서 나온 전선줄이 흙담을 뚫고 나와 정재깐에서 잠시 멈춰 백열등 하나 만들어
놓고, 방으로 들어가 중천장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다시 방 한가운데 매달려 있던 백열등이 갑자기 이새벽에 눈부시게 달려나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짙은 어둠도 오랫동안 주시하였더니 빛이 보이더구나.
어느 젊은 날의 방황에 서 있었던 때 엄마는 보았단다. 어둠속일수록 찬란한 빛이 있었단다
하면 배시시 웃을려나 눈 작은 우리 뻥새.

즐거워야 할 기억들이 어쩌자고 문득 이리도 서러워 지는가.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것들 탓인가.
사라져야만 하는 것들인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