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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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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집안 이야기 (3)


BY 김영미 2000-07-25



<시끄러운 집안 이야기>


앞에서 이어서......



그래서 변해야했다.

가장 처음 한 것은 더 이상 아이의 일을 챙기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 그렇게 많이 잔소리하며 챙기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었다. 남편이 간섭하려 들면

내가 막고, 또 어떤 날은 내가 물어보려면 남편이 붙잡았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 노력하는 동안에 아이도 조금 편해 보였다.

두 번째 노력은 아이를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었다.

"글씨를 잘 써야한다."

에서

"남이 알아보게만 써라."로 바꾸었다.

그렇게 엉망인 글씨로 모든 공책이 종합장이 되었지만

학교에서 성적을 받아오는 것을 보면 신기했다.

내 짐작으로 꼴찌자리도 과분한 형편없는 글씨였기 때문이다.

어떤 잔소리든지 근본은 아이 사랑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아이에게 그것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가 전혀 간섭하지 않아도

아이는 여전히, 아니 더욱 더 학교 생활을

잘해 나가고 있었다.




그 다음은 아이와 대화하기였다.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부모와의 대화란 거의 없이 자란 것이

우리 세대여서 막상 아이와 대화를 한답시고

앉아서 떠들다 보면 어느새 설교나 훈계가 되어 있었다.

온갖 대화법 책을 찾고 특히 자녀와 대화법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남편의 도움이 컸다.

대개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남편도 거의 말이 없는 편이다.

그렇지만 남자의 공통 관심사 스포츠가 있었기 때문에

이점에서는 나보다 빨랐다.

남편이 미처 보지 못한 스포츠 게임 스코어를 묻는다거나

운동선수에 관심을 보이면 아이는 신이 나서

아는 것을 대답하고,

아빠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며 신문을 열심히 보기도 하였다.




6학년쯤이던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머리에 무쓰를 바르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친구들이 칼라 무쓰를 바르고 학교에 온다더니

아마도 호기심에 빌려서 바른 것 같았다.

아직 어린애인데 가수 흉내나 내는 것 같아서 내심 못마땅했다.

그렇지만 그런 속내를 드러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시침을 뚝 떼고 일부러

"너 머리에 새똥 떨어졌나보다. 왜 희끗희끗하지?"

하고 말했다. 나도 말하고 보니 너무 우스워서

아이와 함께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었다.

큰애는 친구가 가져온 칼라 무쓰를 발라 보았는데

머리카락이 뻣뻣해서 감으려 했단다. 그러면서도

"엄마 이상해?"

하고 묻는 것이다.

그날의 대화에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그것 좀 발랐다고 큰일 날일도 아닌데, 이전의 나였다면

보나마나 야단을 치고 소리를 지르고 하면서

기분이 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린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짧은 머리 규율이 아이에게 큰 벽처럼

느껴지는가 보다. 처음에는 신입생이니 머리를 짧게 잘랐다.

우리 애는 아마 머리에 별 관심이 없는가 보다고 생각했지만

방학이 되니 그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든 머리를 조금만 더 길게 보이고 싶어서

안달을 부렸다.

뒤통수 아래가 덥수룩하니 지저분했다.

아무리 길어봤자 내가 보기에는 거기에서 거기인데

제 딴에는 굉장히 만족한 얼굴이다.

개학이 다가와도 자를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은근히 학교에서 혼날까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머리 잘라야 되지 않니? 오늘 갈래?"

하니까

"이 정도는 학교에서 안 걸려요."

한다.

"엄마는 네가 학교에서 걸릴까봐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이 항상 멋지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단다.

길이 보다 깔끔하지 않으니 다듬고만 오든지……"

라고 하니 기꺼이 이발소를 다녀왔는데

바짝 자른 모습이다.

"이것이 더 깨끗한 것 같아서요."

하며 씩 웃는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아직까지 머리 때문에 실랑이를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진정으로 아이 편이 되어 준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