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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내숭 남편 길들이기


BY ns05030414 2001-10-21

여편은 서둘러 저녁 설겆이를 끝냈다.
주위를 둘러 저녁 일이 다 끝난 것을 확인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남편 옆 쇼파위에 엉덩이를 내려 놓았다.
여편의 엉덩이가 미처 쇼파에 닿기도 전 남편의 엉덩이는 옆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여편이 한 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니다.
남편은 여편과 나란히 앉아 텔레비젼을 보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함께 살고 있는 시할머니를 배려하는 마음에서란다.
시할머니는 삼 십 대에 혼자가 되신 분이다.
여편도 남편의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왠지 섭섭하다.
남편의 내숭이 가소롭기도 하다.
지가 그런다고 아들 낳고 딸 낳고 한 이불 속에서 사는 걸 누가 모르나 말이다.

남편은 내숭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임을 모르는 모양이다.
연애할 때도 그랬다.
지하고 나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데이트를 하러 나온 남자가 노냥 몇 발작 앞에서 걸었다.
팔도 끼고, 손도 잡고, 남들 처럼 데이트 해보고 싶은 여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번번이 그랬다.
여편이 손이라도 잡으면 살짝 비틀어 그 손을 빼 내곤 했다.
여편이 데이트를 하지않겠다고 할 때 까지 그랬다.
바보다.
여편이 데이트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설설 길 것을 그 무슨 내숭이냐 말이다.
아뭏든 그 때나 지금이나 남편의 왕내숭은 여전하다.
한 대 콱 쥐어 박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여편은 속 상하다.
여편은 오늘은 그냥 물러설 마음이 아니다.
정면 공격이 안 되면 측면 공격이라도 시도해 볼 심산이다.
정면 공격만 공격은 아니니까......
때로는 측면 공격이 훨씬 힘도 덜 들고, 효과적일 수도 있음을 여편은 이미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안다.

여편은 할머니 쪽을 바라본다.
좋으신 분이다.
몇 년을 함께 살지만 잔 소리 한 번 없으신 분이다.
말투가 퉁명스러운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 정도야 여편의 여우 짓으로 얼마든지 메꾸어 갈 수 있다.
남편이 그런다고 할머니하고 사는 것을 피할 수도 없다.
파출부가 날마다 온다고 하지만 두 아이를 위해선 할머니가 계시는 게 좋다.
아직은 여편이 직장을 다녀야하니까.
여편은 다시 남편의 옆 자리로 자리를 옮긴다.
남편은 벌레라도 닿은 듯 떨어져 않는다.
이 번에는 이게 바로 여편이 기대하던 반응이다.
여편은 시할머니를 부른다.
여편이 잘 쓰는 수법을 사용해서 부른다.
약간의 콧 소리를 섞어서, 끝 부분을 길게 늘여 언거퍼 두번을 부른다.
"할머니할머니이~"
할머니는 말없이 여편 쪽을 바라본다.
그 다음 여편은 어리광 섞어 말의 속도를 가능하면 빠르게 한다.
"아범 좀 보세요.
할머니 보시는 데 나란히 앉으면 안 된다고 저렇게 도망 다닌데요.
할머니도 우리가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는 게 더 좋으시지요오?"
할머니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무뚝뚝한 할머니라도 여편의 여우 짓에는 별 수가 없다.
"그럼, 그렇고 말고!"
역시 여편은 여우다.
평소 할머니에게 두둑히 드린 용돈의 효과를 즐기면서 여편은 속으로 혀를 낼름한다.
이 번에는 남편에게 눈을 홀기면서 말한다.
"거 봐요, 할머니도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는 게 더 좋으시다잖아요.
도대체 뭘 모른다니까."
와, 시원하다.
여편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시원하다.
또 내숭을 떨기만 해 봐라......

지난 겨울 시부모가 우리랑 겨울을 함께 지내기 위해 올라와 있었습니다.
자기 부모있을 때 울 남편 날 부르는 호칭이 "각시야~"였습니다.
설겆이 끝내기가 무섭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기 옆 자리를 가리키며 어서 앉으라고 했지요.
내가 설겆이 하는 동안 과일까지 깎아서 대령해 놓구요.
시어머니에게 무뚝뚝한 시아버지를 훈계까지 하더라구요.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사느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