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의 알람을 맞추어 놓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잠잠...
주인따라 함께 잠을 자고 말았다.
깜박 눈을 떠 보니 여섯시가 다 되었다.
이러다간 도시락 못싸주겠는 걸...
고슬 고슬하게 밥을 하고, 파릇한 오이와, 산뜻한 당근, 노란 계란 ...
가지런히 재료를 준비하고 하얀 밥과 까만 김이 어우러진
얌전한 김밥이 탄생한다.
쪽 고르게 썰어서 보기 좋게 담으면 먹기가 더 좋을 테지...
이렇게 저렇게 손놀림이 절로 흥겹다.
아이를 생각하면서...
식구들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 있는 시간이 즐겁다.
요즘에는 아침 일찌기 김밥을 만들어 파는 곳도 많다고 한다.
젊은 엄마들은 사다가 도시락에 넣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뭐하러 새벽부터 부산을 떠느냐는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아이가 다 커가도록 ...
나는 아마 그런 부산이 즐겁기만 할 것 같다.
나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조금씩 표정이 달라가는 김밥의 모양도
재미나고... 아이가 오물거리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떠올리면
약간의 수고로움이 뭐 그리 대수로울 까 ...
나는 늘 그런 생각으로 사는 엄마라서 ...
아이는 어느새 사서 먹는 김밥맛은 별로라고 한다.
아이가 아무거나 다 잘 먹고 까탈스러움 없이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엄마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향기나 따스한 체온 같은 걸
아이에게 진심으로 전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나는 늘 김밥 한줄을 마련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려 한다.
아이에게 맛과, 멋을 알게 해 주고 싶다.
눈으로 색을 보게 해 주고, 고운 것이 무엇인지를 그 아이가
알아 가며 그리 커 주길 바라는 것이다.
옆에서 셈내는 작은 아이에게는 예쁜 토끼도시락에다가 양쪽 귀까지
통통하게 담아낸 도시락을 내민다.
그러면서 난 또 그 통통한 엉덩이가 조금씩 도톰해짐을 느껴 본다.
참 사랑스럽다. 귀여운 것들...
잠잘때 어둠속에서 내려다 보면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서로 구별이
안 갈 정도로 많이 닮았다.
낮에 보면 큰 아이는 엄마를... 작은 아이는 아빠를...
이렇게 나누어 닮아 있다.
닮아 있음을 느끼면서 ...
내가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사랑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요즘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단체 급식을 하니
예전의 우리네 엄마들처럼 도시락을 싸주는 일도 별로 없다.
그래서 ...
소풍 갈 때마다 난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맛있는 밥을 먹여 주고 싶은 거다.
오남매가 모두 학교에 다니던 시절 ...
소풍날이면 어찌 어찌 사준 도시락의 뚜껑을 열기가
어린마음에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기억들이 아주 오랫동안 잊혀지질 않고 살아졌다.
때론 참 많이도 아파했었지 ...
요즘같이 먹을 것이 지천인 아이들에게
김밥은 별다른 음식축에도
들어 가질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더욱더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지는 그 입맛이
걱정스럽다.
무엇을 먹든지 엄마의 사랑이 들어 있는 음식으로
키가 자라고... 마음이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딸아이의 도시락을 싸면서
내 엄마를 생각한다.
나를 위하여 좀더 많은 것을 해 주려 하시면서도
늘 따라주지 않는 현실 때문에 아쉬운 미소를 지으시던
내 엄마를 ....
그렇게 받은 사랑을 이제는 내가 나누어 줄 차례가 된 것이다.
아이는 아마 지금쯤 가을이와 만나고 있겠지 ...
고운 가을 햇살을 꼭 닮은 아이는 지난 여름 키가 훌쩍 자랐다.
오늘은 그 아이의 몸에 잘 맞는 가을 옷이라도 한벌 사야겠다.
아이의 입은 즐겁고...
나는 이렇게 마음이 푸근해 지니
앞으로도 아이의 소풍날이면
어김 없이 이런 행복이 내게로 올 것임에
가슴이 마냥 설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