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입맛도 제각각에.. 생각도 가치관도 다양하고
특이하다.
어릴적 나는 그렇게 먹고 싶던 과자부스러기 하나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자라왔다
그시절 맘대로 군것질을 할 수 없었던건 우리 집이 가난한 탓도
있었겠지만.....내가 살던 우리 동네, 우리나라, 아니 그 시절이 모두가
통째로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국민학생 시절(초등학교란 이름이 더 낫군요)....
좀처럼 간식거리가 없어던 시절...
우리집이랑 학교는 담장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있었다.
그래서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보통은 나의 놀이터였고
아예 집마당처럼 여져기고 있었다.
당시 학교에는 일을 봐주시는 한주사님이 계셨는데 그집 아들이
나랑 같은 학년이었다.
서로 반은 달랐지만 같이 학교운동장을 마당으로 여긴다는
공통점 때문에 쉬이 친해질수 있었다.
요섭이네가 사는 관사 건물 뒤에는 커다란 돌배나무가 있었다.
거기에 배가 열리면 요섭과 난 돌로 던져서 몇번의 시도 끝에
돌배를 떨어뜨려 씁쓰레한 것을 아주 맛나게 씹어먹곤 했었다.
그맛은 요즘의 초콜렛이나 아이스크림만은 못하겠지만 당시는 그나마
놓칠수 없는 간식거리였고 즐거움이였다.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가면...옛시절의 군것질에 대한 아쉬움이 컷던
탓인지 아이더러 제 먹고 싶은 것을 맘껏 골라 넣으라고
하면 대개 껌 아니면 아이스크림....기껏해야 두 종목 뿐이다.
약간 빈약한 듯하여 다른 뭐라도 사라 종용해도 들은척도 않는다.
제 볼일을 다 마친 아이는 대개 내가 뭐를 정신없이 사 들이는
동안 마트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그렇게 내 사정거리 안에 아이를 두고 부지런히 소모품들을
사들이고 있는데, 한참 어려보이는 꼬마녀석이랑
실랑이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시하는 척하며 슬금슬금 쳐다보는데...
아뿔사!!
그런데 내 아이는 가만히 서서 맞고 있고, 오히려 작은 꼬마 녀석이
당차게 대들며 덤비는 것이었다.
짧은 싸움은 주위의 분위기를 파악한 내 아이의 포기로
간단히 끝나버렸지만....
나중에 아이더러 그때 왜 따끔하게 혼내주지 않았냐고
슬그머니 물었더니...
맞아도 뭐 그다지 아프지도 않더라며 마치 전투에서
살아남은 기사인양 의기양양해 했다.
난 잠시 할말을 잊어버렸다.
맞아도 아프지도 않다며 본인은 전혀 속상하거나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크게 손해볼것도 없다는데
정작 보고 있던 나만 속상하니 별일이다.
그렇다고 아이더러 이유없이 덤비는 녀석은 따끔하게
쥐어 박아 버릇을 고쳐놓으라고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문제 만들지 말고 살짝 피해버려야 한다고
가르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제뜻을 정확히 표현치도 않고 슬그머니 죄인처럼 물러서
버리고 마는 내 아이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이것도 이 아이의 사는 지혜일진데...)
이런날은 괜히 바보처럼 내 아이를 닥달해지고 만다.
어차피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그리고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그렇게 포기하고 물러서고 양보하고만
살아지는 세상이 아닐런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
생각해보니
난 그렇게 집에서는 내 아이들을 잡고...
학교에선 내 반 아이들을 닥달하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이것 역시 원치않는 나의 또 한 면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내가 조금 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