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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은 머리가 무지 나쁜가 봐요.


BY ns05030414 2001-10-18

시부모가 우리집에 올라와 있겠다고, 시골집이 너무 추워서 겨울 동안은 우리집에 와 있겠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못을 박았다.
"당신, 부모가 옆에 있다고 똥 폼 잡을래?"하고 물었다.
시할머니와 함께 살 때 당한 일들이 생각나서...
남편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절대 그런 일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몇 가지 세세한 항목을 남편과 함께 다시 확인하고 다짐 받고 시부모가 우리 집에 오는 것에 나도 동의했다.
남편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기회를 나는 놓치지 않는다.

시아버지는 상냥한 말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약에 쓰려고 찾아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시아버지와 전화통화를 끝 내고 나서 우리 동서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 지 한참씩 고민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너무도 무 뚝뚝한 시아버지 때문에 하루 종일 울기도 했다고.
시어머니는 하도 많이 들어서인 지 별 반응이 없다.
아니, 속으로 많이 아파 하는 지도 모른다.
가끔씩 원인 모를 신경성으로 며칠 씩 식사를 전혀 못 하기도 하니까.


그 시아버지 닮은 남편 때문에 나도 열 많이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나는 시어머니 처럼 그냥 당하고 만은 못 산다.
논 팔아 가르친 울 아버지 논이 아까워서도 억울하게 당하기만 할 수는 없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했는데 나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불여우다.
남편은 이제 솜 사탕이나 아이스크림 만큼 부드럽고 달콤한 언어를 주로 사용한다.
아내의 눈치 보는 것도 프로급이다.
학습 효과가 좋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만......
이 남자, 초등 학교 사 학년 때 머리 좋은 게 맘에 들어 내가 찍었으니까.


텔레비젼을 보다가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에게 면박을 준다.
나는 시어머니를 부추긴다.
도망가라고.
저렇게 시어머니를 무시하는 데 어찌 그냥 살 수 있냐고.
평생 시어머니를 똥 친 막대기 취급하는 시아버지 이렇게 말 한다.
"제 까짓 것이 가면 어디로 가. 친정에서 누가 반긴다냐? "
시어머니 바보다.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도망가고 싶은 맘이야 굴뚝 같지만 갈 곳이 없어서 못 간다."
"왜 없어요? 아들 집이 몇인데...."
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안씨가 이씨네 집으로 왜 가냐? 가면 누가 반기냐? 도망가면 안씨네 집으로 가야지."
옆에서 같이 텔레비젼을 보는 남편은 시아버지의 말을 듣는 지 안 듣는 지 반응이 없다.
나는 작전 상 후퇴하기로 한다.
"어머니, 아버지 과일 깎을까요?"하고
하지만 속으로 남편에게 날을 세운다.
이런 경우 당연히 지원 사격을 해야 되는 데 임무 소홀이다.

남편에게 다시 보충 훈련을 시켰다.
그런 경우에는 잊지 말고 지원 사격을 하라고.
계속 임무에 소홀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적당히 협박도 해 두었다.

식탁에서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또 야단친다.
이번에는 확실한 지원 사격이 있을 것을 아는 나는 시아버지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아버지는 무지무지 머리가 나쁜가 봐요. 어쩌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고런 간단한 이치도 모르세요? 삼척 동자라도 아는 것인데요."
이 번에는 남편이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다.
"맞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정 마음에 안 들면 우리 집에 와서 아주 사세요.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면 아버지는 우리 집에 못 들어 오게 문도 안 열어 줄께요."
남편은 덧 붙인다.
"나도 아버지 때문에 손해를 엄청 보았다니까요. 말을 상냥하게 할 줄 몰라서 가족들을 얼마나 힘 들게 했다구요. 아버지에게서 보고 들은 게 그 것 밖에 없어서요. 우리 아버지는 머리가 정말 나쁜가 봐요. 여지껏 그 것조차 모르고 살다니..."
역시 내가 남편 하나는 잘 골랐다.
학습 효과 백 이십 퍼센트다.

봄이 되어 시골로 내려 가신 시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밥 잘 먹느냐고 며느리 안부도 묻고, 끼니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으라고 당부도 잊지 않는다.
이것은 신문에 날 일이다.
무뚝뚝한 시아버지 여지껏 그래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당장 남편에게 전화해서 이 뉴스를 알렸다.
동서에게도 알렸다.
시누에게도 알렸다.
모두들 신기해한다.
우리 시아버지 머리 엄청 좋다.
이렇게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줄이야.
남편보다 학습효과가 훨씬 빠르다.
아버지 만한 아들이 없는 것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