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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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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짜리 만큼의 내 아픔


BY 지연 2000-06-17

머리가 너무 아프다.
목이 너무 너무 아파서 숨조차 쉬기에도 힘에 겹다.
밤새 덜덜 거리던 취위에도, 내 주변엔 아무도 없다.
그렇치... 춥다고 하니까 겨울 솜 이불을 꺼내다 덥어 주던
남편이 있긴 있었지....
18개월 된 딸 아이는 배가 고픈지 칭얼 거리고
3학년 된 아들 아이는 제 아빠가 챙겨 주었는지 벌써 학교에
간 모양이다.
정말 서럽다. 아주 아주 서러워서 꺼이 꺼이 울었다.
한참 울고 나서야 다 부질 없음을 느낀다.
한 이불 속에서 알콩 달콩 살면서 예쁜 공주도 낳고,
스스로를 천재라며 제 어미를 무시해 데는 아들도 낳았는데,
이렇게 몸 아플 때는 남도 저렇게 무정한 남이 없을 거다.
남편이란 존재는....
제 풀에 아침도 먹지 못한 내 가여운 아이가 잠이 들었다.
울다 울다 지쳐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된 , 가슴 시리게 아픈
모습으로 잠이 들었다.
겨우 이불조각 한 숨 덮어 주고, 이리 비틀 , 저리 비틀 거리며
10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향해 걸었다.
왜 바람은 부는 걸까?
휘청 대는 내 몸은 더 갈 곳을 몰라 허우적 거린다.
머리속이 바위 덩어리도 짓눌린 것처럼 멍하니 아프다는
소리 조차 지를 힘도 없는데,, 왜 바람은 부는 거지?
"몸살 감기네요... 왜 열이 없지... 목이 저렇게 부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야.
열이 펄펄 나서 온천이라도 한 기분인데...
여하튼 주사 한대 맞고 집에 가란다.
어!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만원짜리 한 장이 없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간호사는 내일 가져 오란다.
진료비 3,200원에 자존심이 무너지게 생겼지만, 아프다.. 그것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떻게 아파트 입구까지 왔을까?
무슨 생각으로 왔을까?
잃어 버린 만원 지폐 한 장을 생각하고 왔을까.. 아님, 내 가여운 아가를 생각하면 왔을까?
휘익 불어 오는 바람... 멀리 단지 청소를 하시는 아저씨가 보인다.
입구에서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엄마랑 아이도 보이고,,,
그리고 건너편 화단에 접어 진 채로 나뒹굴고 있는 만원두
보인다.
건너 가 아무 일도 아닌 것 처럼 그 만원 짜리 지폐를 주워 들고선 내가 걸어 가야 할 길을 바라 보았다.
피씩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떤 의미의 웃음인지....
아마도 허울 같은 육신의 아픔 보다도 생활의 궁핍함을 조금이나마 보상할 수 있을 거라는 넉 빠진 웃음일 게다.
스산한 바람이 흐리멍텅한 머릿속을 할 퀴고 지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