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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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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베다 열병에 걸리다~~~


BY 파도 2000-10-03

일주일이 이렇게 금방 갈까?

일찍 일찍 빨리빨리 야학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자꾸만 자꾸만 일이 많아서...ㅋㅋㅋ

전업주부라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곳이 너무 많아서...

혹시나 기다리는님들이 계신다면 미안함을 전하오이다..

그리고 몸도 약간의 이상과 함께 이빨도 아팠고...쩝쩝

이유있는 변명을 늘어 놓는 나를 용서 해주길 빌면서..

참 그리고 야학의 애들이야기는 더 이상 하면

안될것 같아서 애들 이야기 보다는 나를 촛점으로

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애들이 이 이야기를 보면 보는 방향에 따라서 예의가 아닌것 같아서...이만 줄이고...

나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 보겠습니다

베다에는 학생 선생님이 많았다

대학생이라고 지난 번에 언급한바가 있었다..

그러니 전부 다 내 또래의 학생과 각 학교에서

마음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 야학이다

정겹고 마음이 따뜻한 애들의 집단이라고 말하면

아무도 그것이 아니라고 할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시절에는 공부의 목마름이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던 시절이라서 요사이 젊은 님들은 이해를 할랑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따뜻하고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이

모이는 이 에세이방에 젊은 그대들은 아마도 이해하고 공감이 가리라 믿어 보면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다

일학년때에는 애들과 검정고시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애들이 기초반과 진학반이었기 때문에

난 비교적 기초반을 맡아서 마음은 편한 편이지만

바쁜 나머지 그냥그냥 지나갔다

2학년에 되면서 야학의 중심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성질에 한번 한다고 하면 정말 열과

성의를 다하는 편이라서 ㅋㅋㅋㅋㅋ자랑이 심했나?

하여간에 그런 성질때문에 급기야 평교사에서

서무주임자리를 차지하여 평교사일때 보다 더 할일이 많았다

애들편이나 교사편할것 없이 할일이 많은것 중에 한가지가

책 구입으로 시간을 많이 보냈다

구평화시장에는 헌책방이 즐비해 있었다

그곳은 만물상이었다 책의 만물상

지금은 옛날 말이 되었지 만서도....

그런 곳을 다녀야 하고 또 여러가지 잡무가 많았다 ..

그잡무사이에 학교랑 같은 제도 였기에 내가 서무주임이면

학생 주임과 교무주임이 있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베다 열병이란? 야학에 오면 한 6개월은 그냥 지나가는데

6개월이 지나면 그 곳에 안오면 눈에 가시가

나는병이 일명 베다 열병이다 ...

젊고 활기차고 그리고 패기가 있었던

그 시절에 또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리고 선생이전에 남과 여 였기때문에

서로에게 관심이 많아져서 야학을 사랑하는

만큼 자주자주 야학을 들리고 일에 열중할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이였다

미팅장소가 야학으로 바꿔졌다고 하면 이해가 쉽겠죠

그러니 젊고 그리고 각학교 애들의 집합소 였기 때문에

연애하기 그보다 좋은 곳도 없었다

미팅은 갈때에 혹시나 하다가 역시나하고 돌아오던

시절에 이 보다 좋은 미팅 장소가 있었을까?

이것은 지금 생각 한것이지

그때에는 그런 생각을 추호(?)도 안했다

이제사 말이지만 애들을 사랑하는 만큼

야학에 대한 정열을 다른 방향에서 맞추어 보았다.

야학에 많이 올수록 그 정감이 비례한다고 하면 맞겠죠

이상황이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것이지요

이제사 말이지만 그때에는 애들에게 앵글이 맞추져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이 일은 후순적이라고 꼭 말하고싶다

전적으로 연애장소라고 한다면 나는 너무 슬프다

그냥 인생의 덤이라고만 말하고 싶다

이제 이 덤에 대해서 말하고 자 한다

서무주임인 나랑 교무주임인그애와 벌어진 이야기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밤 늦게 까지도 그리고 일의 성격상도..

그러니 젊은 남여가 많은 시간을 보내면

자연히 생기는 감정 이였다고 할까?

그애는 약간 곱슬머리에 검은 안경에 유머가 풍부한 애였다

s대 정치외교학과 학생 이었다

하얀얼굴에 비교적 우수에 젖어 있는 눈이

나의 마음을 자극했다고나 할까?

하여간에 둘이는 연애 감정이 싹튼것이다

누가 먼저 나중이라고 따지지도 못할 사이에...

안그래도 즐거운 야학이었는데

님도 계시는 야학이니 얼마나 신바람이 났을까?

지금도 그때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인다

이 많은 세월이 흘러 갔음에도...

그렇게 둘의 사이가 점점 가까워졌다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달려간 야학에서

그애와 표시나지 않게 서로의 의미있는

눈빛을 주고 받는 기분이란?

당연히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비밀이었다 ...

그렇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지 6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우연히 둘다 김씨인줄은 알았지만 그저 김씨려니 했다

김씨도 본과 파가 굉장히 많았기때문에

우리는 주로 버스 테이트를 많이(?) 그애는 집안이 가난했다

그러니 주머니가 두둑할수가 없었다

시간이 있을때 종점에서 종점으로 가는 버스 테이트를

주로 했는데 이것도 야학때문에

가뭄에 콩나듯이 한것이고 꿈같은 데이트였다....

방학이 가까워지자 신부님이 선생님들 노고 치사차원에서

동해쪽에 화진포 해수욕장으로 간다는 것이다

엄한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하던지 설득(신부님이 전화를 우리 아버지에게 하는 헤프닝을 연출하여서)

나도 그 곳에 가는데 성공을 했다

꿈에 부풀어 그애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바다에서 파도를 보면서 그애와 이야기도 하고 비록 남의 눈을

의식하지만 그래도 그 낭만이란?..짜릿함이란?ㅋㅋㅋㅋ

지금도 그 감동과 희열이 생각난다 이맘을 여러분은 알실랑감?

이것은 안해 본 사람은 모름니다...ㅎㅎㅎㅎㅎ

첫번째 밤을 그렇게 지나갔다

둘째날 밤에 우연한 이야기 끝에 성씨와 본에 대해서 말을 했다

아니 것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래..

아니 그애가 나랑 동성동본에 파까지 같은 것이 아녀라...

이것!무슨 운명의 장난을.....

따져보니 가까운 촌수가 아닌감?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무슨 죄많은 짓을 했다고...

낭만의 밤이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검고 칠흙같이 되어버렸다

그날밤을 하얗게 지세우고 다음날

우리는 3박4일 일정으로 갔다...

마지막밤이 정말로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난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황이 되었지만...

그애는 정리가 안된 얼굴이 었다....

그렇게 못잊을 화진포에서 깨어진 사랑은 안고 서울로 돌아와

집으로 낙향을 하고 다음 개학때까지 난 아무 연락을 피했다

그애의 편지를 받았지만 .....

엄한 우리아버지에게 씨알도 안먹힐 일이고

난 벌써 정리를 한 사황이였는데

그애의 마지막 편지를 보니 그애는 정치 외교 학과 생도 였는데

이렇게 씌여 있었다 내가 정치판으로 뛰어들어가

그 씨잘데기 없는 동성동본금혼법을 바꾸겠다고 다짐한 글이 있었다...

그렇지만 계란으로 바위을 깨는 결과 밖에 될수가 없었다

이제사 속직히 말함 난 자신이 없었다

그 많은 시련을 감당할...

난 비겁자 였다 그래서 지금도 여름만 되면 아픈기억과

바다가 좋은 이유도 어릴때도 좋아 했지만 ...

그런 사연도 포함이 되있다......

넘 길었남? 그럼 또 다음에 이야기를 계속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