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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에서 겨울 회상(5)


BY 영광댁 2001-01-18

변두리에서 겨울 회상 넷

부엌. 그 그리운 이름 정개 (정잿 간)

뻥새야.
부뚜막이 있지 않았겠냐.
솥이 두 개나 세 개가 걸리고 그 사이 사이들의 공간을 시멘트로 잘 다듬고 만들어 놓은
부뚜막이라고 한, 그 정다운 낱말을 아느냐.
그릇들도 놓고 도마를 놓고 무도 썰 수 있는 지금의 씽크대 여유분이라면 알까.
국을 퍼서 놓았다가 상에 올라가는 중간치 정도도 되고 , 밥을 퍼서 놓았다가 다른 자리로
옮기는 자리도 되었던, 불티가 올라가 앉았다가 불을 다 때고 나서 닦고나면 작은 쪽마루처럼 공간이 생기는 솥 옆의 자리. 어머니가 잠시 앉기도 했고 나도 앉기도 했던 불기운이 남아 있던 부뚜막. 지금은 사라진 내 어머니의 부뚜막,
밤이면 어린 강아지 벅구가 눈치를 살피다가 살짝 올라가서 밤새워 제 코 제 몸댕이에
박고서 따뜻한 잠을 잤던 벅구는, 동이 트기 전 이맘때쯤(새벽 다섯시)
어린 자식들의 새벽잠을 위하여, 혹은 아침일찍 행장을 서둘러야 하는 가난한 당신의
출행을 위해서도 군불을 지펴야 하는 때였으니.
빼끄덕 소리를 내는 부엌문 바라지를 열면 고만 툭 하니 부엌바닥으로 내려 서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에게도 허긴 너도 짐승인데 춥지 않았겠냐며 같이 꼬리 흔들지
못하는 마음을 내 비치지 못하셨을 어머니가 보인다.


불길 깊은 댈나무를 때지 못하고 가벼운 것들을 불살랐을 때는 방독들도 제대로 달궈지지
않아, 어제 오늘처럼 추운 날이면 모두 새우처럼 구부리고,젖가슴 졸아 붙어진 엄마 곁으로 달려 들었을 테니, 그래 새벽녘에 군불을 지펴야 했을 거야, 우리 엄마는...
부엌 어느 구석에서 재소쿠리를 집어내고 머리 위에 있는 자그마한 시렁에서 당그레를 내려서 아궁이에서 지난 밤에 피운 잘 탄 재를 퍼 내셨겠지,
자잘한 땔나무들은 재도 가라앉고 불땀도 좋았을 텐데, 하마 어머니는 짚을 때셨던가.
후루룩 입김으로도 날아가는 짚불 재 였으니 지난 밤 불길도 방 구들을 속깊게 데우지
못하고 바람에 날아가는 재처럼 지나가지 않았을까.
짚불속에서 무엇이 익기나 했다고 아궁이에 가져다 넣었던 고구마들이 당그레에
걸려 나오기도 했을 걸, 어머니는 그것들을 나란히 나란이 건져 놓았을 게야.
너 가져가면 혼나 ,벅구 한테 훈계도 하시면서.
꼬리를 부엌바닥에 대고 잘랑잘랑 흔들었던 벅구는 불을 때시는 어머니 곁에 식구처럼 붙어앉아 아는체 모르는체 따순 불길에 눈 게슴츠레 떳다 감았다 하다 잠시 바람 쏘이러 나간 듯 슬쩍 나갔을 게야, 뒷곁으로 , 고구마 하나 물고...

당신이 밥벌이 나갔을 때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새끼들이 어렸으므로 꼬리만 안달린 강아지들 같았으려니, 잘탄 재를 부지깽이로 토닥거려 재를 앉히고 또 다시 불길을 사르고 했을 내 어머니의 가슴은 그 때 진홍가슴이였을까?
아무것도 말 할 수 없고 토해낼 수 없었던 , 드러내는 것이 차마 서러웠을 그 가녀린 가슴이 어쩌면 그렇게도 달고 따뜻했는지 누가 알겠니.
짚불을 때다가 서서히 잔 솔가지로 불을 지피는 새벽녘 어머니 곁에 자리했던 벅구도
털갈이를 하였고, 내림내림 입었던 언니들 옷들도 작아질 무렵 엄마도 그 자리에 앉아
불을 땠겠지.

그랬단다. 집안에 힘쌘 남자가 없었던 우리집은 땔나무도 실하지 못하였단다.
지게지고 나무 하러 다닐 사람도 없었더란다. 읍내에서 살다가 그 산골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곳으로 엄마 따라 왔더니 새벽마다 소여물을 쑤어 주던 미해가 갈퀴를 들고서
산에 나무를 하러 가자고 하였단다.갈퀴는 엄마보다 키가 두배는 컷는데....
눈쌓인 응달 것은 말고 양지 바른 곳의 솔잎을 긁어보아 한 곳에 보아두었다가 잘 채쳐서
나뭇짐을 만들더라니,,, 한 동치 두 동치 하였더라니.
그 눈속에서 시퍼렇게 살아 있던 산초들을 다 설명해 주던 미해는 나무도 참 잘하더라.

저녁 늦게 집으로 오실 고단한 어머니를 위해서 해걸음부터 불을 땠을까.
그 착해 빠진 바보같은 언니가 그날 밤새 어머니께 혼이 났던 그 밤이 영상처럼 펼쳐진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소리없이 흐르는 이 눈물은 무엇인가.
그 방은 뜨거워서 지나갈 수가 없었으니까. 여섯 형제에 홀로 한 어머니 일곱이 나란히 나란히 젓가락처럼 누워 자야 했던 그 방의 질서가 흐트러졌으니까.
물도 아끼면 유황님이 복을 주고 나무도 아끼면 산신령이 복을 준다는데. 어쩌자고 데어
죽자고 이리 불을 많이 땠느냐는 어머니 말씀에 그만 그 순한 눈에서 굴러떨어지던 눈물이라니. 뉘라서 그 눈물의 의미를 몰랐으리오 마는 그렇게 자신과 그때를 어거지로 이기고 살아가시던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잠든 우리들의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고, 자는체 하며 그 가난한 어머니의 한숨소리와 눈물을 받아먹고 자랐더란다 하면.

부뚜막옆에 장식장처럼 서 있던 나무 찬장속엔 참 별난 것이 별난 것도 아니게 늘어져
있었는데 학교갔다 돌아오면 어쩌자고 그렇게 찬창 문을 여닫았나 몰라.

뻥새야 , 그 눈물과 한숨과 웃음 많았던 부엌에서
순한 이천댁 닮아 잘 자랐다고 동네 사람들이 말하는 엄마의 형제들을 보았니?
큰 이모, 작은 이모 , 큰 외삼촌, 작은 외삼촌 , 막내 외삼촌, 그리고 엄마.
우와 많기도 하다 , 그렇지?

어느 날 그렇게 물었을 거야,
방바닥 뜨겁던 날 어째서 언니를 그렇게 혼냈느냐고.
다 알면서, 부러 물었을 게야 ,잠시 쓸쓸하기도 했을 게야.
암말도 안하셨단다. 멀리 눈돌려 거기 눈 안에 가득한 눈물만 보았단다.
눈물 안에 든 하늘만 보았단다.
그 하늘 아래에 깃들어 날개 파닥거리는 하늘에서 쫓겨난 마지막 천사를 보았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