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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41)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불빛...*


BY 쟈스민 2001-10-16

해가 저물고 있음이 하루 하루 빨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어둠이 슬그머니 찾아드는 시간에 하루일을 마치고
아이들의 기다림을 생각하고는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벨을 누르며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문틈으로 빼꼼히 나올것만 같아
그런 서성임 조차 내게는 길게만 느껴진다.

어찌된 일일까... 아무리 벨을 눌러도 아무런 소리가 나질 않는다.
아까 사무실에서 출발할때만 해도 감기 기운이 있어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난다고 하는 아이와 병원에 가자는 약속을 하였는데...

미처 엄마를 기다리지 못하고 병원에 간 것일까?
아니면 아프다가 혹 무슨일이라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에도...

전화를 걸고, 벨을 누르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두드렸다.

자동차에 약간 이상이 있어 수리하러 보내면서 아파트 키를 빼어
놓지 못한 탓에 열쇠가 없었다.

이사람, 저사람 내 집에 드나들만한 사람들에게 열쇠 하나씩 주다
보니 정작 집주인인 나는 한 개의 열쇠만을 달랑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우리집을 올려다 보았다.
그 잠깐사이에 어둠은 이미 깜깜하게 온 세상을 내리덥고 있었다.

그런데... 불조차 켜져 있지 않은 깜깜한 집안에 아이들이 있기는
한걸까?
마음속이 너무도 불안하여 계속 전화벨을 울려보지만 받질 않는다.

집근처의 소아과 병원엘 갔다.
그곳에도 아이들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엄마를 기다리다가 불을 켜기도 전에 ...
어둠이 채 내리기전에 잠이 들었으리라 ...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의 처방전을 받기 위하여 기다리며 또 전화를 한다.

잠결에 전화를 받는 큰 딸아이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안도의 숨을 쉰다.

약봉지를 손에 들고, 터덜 터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사러 간다.

이제 막 익기 시작한 밀감 한봉지를 사고...
아이들의 출출한 배에 잠시 요기를 할 요량으로 파운드 케익을,
감기 걸린 아이에게 좋을듯 하여 신선한 냉장 오렌지 쥬스 두병을
산다.

보따리 보따리 들고 나는 천상 아줌아가 된다.
그래도 그게 사는 즐거움이려니 싶어진다.

까만 봉지를 부스럭 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니 여기 저기 널브러진
아이들의 용품과, 아프다고 자리펴고 누운 아이와, 허둥 지둥
치우는 작은 아이가 그렇게 넓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어둠에 드리워져 있는 서글픔을 느꼈다.
아이들이 있어서 살아있음이 그저 고마우면서도...

열이 펄펄나는 아이의 이마는 불덩이였다.
메리야스, 팬티만 달랑 입고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덜덜 떨린다고
아이가 누워있는 걸 보는 순간에...

나는 또 나의 일이란게 그렇게 중요한 걸까를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밀려드는 회의를 어찌할줄 몰라 했다.

아픈 아이에게 오렌지 쥬스 한잔을 권하며 타는 목을 적시게 하고
해열제를 먹이고, 여기 저기 널브러진 물건들의 제자리를 모두
찾아준 후 쌀을 씻어 밥을 한다.

아이는 그저 엄마 얼굴만 보아도... 한번 안아만 보아도 씻은듯이
다 나은 것처럼 목소리가 맑아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흡사 그 병이 엄마 그리워 나은 병이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마음에 잔영을 남긴다.

아이들의 웃음이 없은 집안은 참 황량하기만 하다.

아이들의 웃음은 집안의 등대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그 등대의 불빛에 너무도 익숙해진 자신을 잊고 살았던건지
나는 오늘 그 불빛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잔소리 많은 엄마로 하여 가끔씩 그 불빛이 깜빡거릴 때도 있었고...
오늘 처럼 이렇게 아이가 아픈 날에는 그 불빛이 가물거릴 때도
있었다.

소중한 걸 얻기 위하여 이렇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지만
결국 소중한 건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인 것을...
잘 알면서도 너무 자주 잊고 지내기에 온갖 불평 불만들을
나도 모르게 늘어 놓기도 하는 거다.

새벽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내가 언제 잠들었는가가
생각나질 않아서 아이들 방으로 갔다.
이불도 덮지 않고 곤히 자는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지난밤 빨래도 널지 않고 잠든 자신을 기억해 낸다.

새벽 3시였다. 세탁기속에 탈수된 상태로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빨래를 꺼내 털고 베란다에 서서 빨래를 넌다.

밖으로 보이는 어둠은 참 깊었다. 창가에는 소리없이 늦가을로
가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머물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 새벽에 빨래를 널며 자신의 존재 ... 자다 말고 그런것들을
운운하는 자신이 한없이 서글퍼서 또 눈물이 난다.

그러면서도 내 자신의 소중함을 다시금 확인해 본다.

건조대에 가지런히 널린 빨래를 만져두면서 ...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본 것이다.

하루해가 저물고 불켜진 집에서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돌아갈 곳이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인데도 ...
마음한켠에 이렇게 휑하니 바람이 스치고 지나는 건 무슨이유일까?

가을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진정으로 소중한 건 아주 내 가까이에 있음을 잊지 말자고
몇번이나 자신에게 다짐해 두는 새벽을 맞는다.

아이들이 불을 켜는 저녁에
나는 그 불빛을 따뜻하게 지켜내기 위하여
나의 집에 가야하는 것이다.

마음속엔 사랑 한보따리를 안고서
그렇게 그렇게 어미의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소중한 불빛이 켜지는 시간에...
하루를 후회없이 살아냈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하여 1분 1초를 나의 것으로 온전히 살아내야 하는지
모른다.

가을 바람에 이는 쓸쓸함에 담담해 질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어야지 ...

쓸쓸함에 마냥 젖어 있을 만큼 어쩌면 나는
그리 많은 시간을 부여받은 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따뜻한 가슴을 쓸어 안고 이 계절을
나그네가 아닌 진정한 내 마음속의 주인으로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것인지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불빛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