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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전화


BY dansaem 2001-10-15

건망증 때문에 어이없는 일을 당하거나 곤란해진 적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나도 갈수록 그 증세가 심각해져서
가스렌지에 빨래 삶는다고 올려놓고 잊어버리기 일쑤요,
물 끓인다고 올려놓고 다 졸아버려서 다시 끓이는 일도 가끔.
그리고 유치원 다니는 우리 아들
데리러 가야하는데 잊어버리기도 하고
준비물은 가져가는 날이 더 적다.
차 주전자에 물 올려 놓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무심코 보니
주전자가 대장간에서 달구어진 쇠마냥 발갛게 되어있기도 했다.
젖먹이 우유병 삶는다고 올려놓고 잊어버리는 등
갈수록 그 빈도가 잦아지는데
이러다 아마 언젠가 큰일 당하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신랑, 역시 만만찮다.
전화가 온다. 벨소리는 들리는데 무선전화기가 안 보인다.
나중에 내선 눌러서 소리를 추적하니
그게 왜 양말서랍에 들어가 있는지....

그런데 우리 부부의 건망증을 능가하는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
올해 이 곳으로 이사오기 전 살던 마을,
그 옆집 아줌마가 바로 주인공이다.

옆집 아저씨랑 우리 신랑이랑 동갑인데
그 집은 마누라가 한살 연상이라 나랑은 나이 차가 좀 있다.
그래도 정신연령은 비슷해서 친구 비스무리하게 가까이 지냈다.

물건을 사고 돈만 주고는 두고 오는 일은 보통이요
전화기가 냉동실이나 씽크대 안에서 발견 되기도 하고
지갑이 꽁꽁 얼어 있기도 하는 일이 심심하면 한번씩 일어나니
그런 일로 우리가 웃으면
옆집아자씨 왈,
"그러니 같이 사는 나는 오죽할시껴?"

그러던 어느 날의 무료한 오후,
옆집 아줌마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늘 하던 대로 무선 전화기 들고.

이러쿵 저러쿵, 궁시렁 궁시렁,....
수다를 떨다가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서 같이 해 먹자 합의를 했다.
있는 반찬에 한두가지 더 만들고
대충 저녁상이 차려지자
옆집 아줌마,전화한댄다.
"우리 애들 밥 먹으러 오라고 불러야지."
하고는 우리 전화기로 전화를 건다.

번호를 꾹꾹꾹 누르고 기다리는데
옆에서 벨이 울린다.
"어, 전화 오네."
걸던 전화를 얼른 끊고는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 어, 끊어졌네."
다시 전화를 건다.
번호를 누르고 기다리는데
또 다시 벨이 울린다.
"어, 오늘 왜 이래?"
끊고는 다시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 어, 또 끊어지네. 어느 놈이 자꾸 장난 전화 하는거야?"


옆에서 보던 나,

뒤집어졌다.


한동안 스스로도 상황판단이 안 되던 우리 옆집 아줌마,
나중에야 같이 배꼽을 잡고 웃어제낀다.

이 얘기 소문내지 말랬는데
그녀가 알면 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