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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40) *산다는것은 어쩌면...*


BY 쟈스민 2001-10-15

그날은 작은아이가 가을소풍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새벽같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나는
창문을 열고 쌀쌀한 가을공기를
집안으로 불러들이며
애써 잠을 떨구어내려 하고 있었지요.

아이에게 김밥을 싸 주려 하고 있었습니다.

압력솥의 추가 몸부림을 치기 시작할 무렵 전화벨이
새벽의 정적을 가르며 자지러지게 울렸습니다.

왠지 느낌이 좋질 않았어요.

이렇게 이른 시각에... 무슨일이 있는 걸까?
약간은 떨리는 손으로 아마 전화를 받은 듯 합니다.

전화를 건이는 아이들의 큰고모였습니다.

울음섞인 목소리에 뭔가 심상찮음을 느끼는
나에게 전해진 소식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차마 믿기질 않았습니다.

엊그제 백일잔치를 한 조카 ...
하나밖에 없는 울 동서의 아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마구 떨리고 놀라운 가슴으로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고
잠들어 있는 아이들만 남겨두고 병원 응급실로 갔어요.

그 아가는 지난 토요일에 우리집에 왔을 때만 해도
큰 엄마의 빨간 홈웨어에 그려진 곰돌이 그림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웃기도 하고 옹알거리며 잘도 놀았었는데...

어제 백일사진을 찍고 왔다고...
절규하는 동서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가가 금방이라도 울음으로 엄마를 찾을 것만 같아
더욱 가슴이 메어졌습니다.

큰 엄마인 나의 마음이 이럴진대 열달을 뱃속에 넣어두고
낳아서는 낮이나 밤이나 애지중지하던 엄마 마음은 오죽할까 ...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가혹한 일이 우리 앞에서 일어나는 건지
유난히도 파랗고 구름마저 희기만한 하늘을 바라다 보며
참으로 많은 원망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
엄마... 한번 불러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먼길을 떠나다니...

어디가 아프다가 그랬다면 덜 억울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있을수도 없는 일로 하여 아까운 생명을
잃을수도 있음이 삶을 한없이 허망하게 했습니다.

그 아가의 마지막 가는 길에 ...
엄마, 아빠는 차마 함께 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한줌도 안되는 재가 되어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 천사같은 아가의
짧은 소풍이 어쩌면 그리도 우리의 마음을 울리던지 ...

몇날 며칠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옆에서 아무리 슬프다고 하여도 그 부모마음을 어찌 다 알까만은
그럴때일수록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일로라도 힘이 될수있기를
바라는 일뿐 아무런 할 수 있는 일도 남아있질 않음에 ...
더더욱 마음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꺼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 아가의 마지막을 지켜보시는 시아버님의 안경너머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소리없는 눈물이 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였습니다.

아들 손주 보셨다고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나는 아들손주는 안겨드리지 못하였지만 그렇게 좋아하시는
아버님을 뵈면서 효도라는 것에 대하여 참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어른들은 말씀하십니다.
어찌되었든 잊어버리라고...
그 아이는 명이 그것밖에는 되지 않아서 그런거라고...

하지만 평생에 한이 되어 가슴에 피멍으로 남았을 그 아픈 가슴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치유될 수 있을까요?

자식을 낳아서 이만큼 키워본 어미의 심정으로 보니
동서가 한없이 측은하고 안되어 보여서 어떤 말도
쉽게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천사같이 뽀얗고 예쁜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서
며칠을 한숨과 눈물로 보내야 했습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서 편안하게 잠들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살면서 정말 그런일은 없어야 하는건데...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을 곁에서 지켜 보니 동서와 서방님에게
잊으라는 말조차 너무 가혹하게 들려서 차마 하지 못합니다.

이제 겨우 다섯살 난 큰 조카녀석은 지금도 동생을 찾고
있지 싶습니다.
그래서 또 눈물바다가 되고말 동서네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동안 나는 너무도 많은 것을 욕심내고 ... 채우려 하고 ...
그리 살진 않았는지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 봅니다.

가을하늘이 너무 파랗고 깨끗해서 더욱 슬픈 며칠이었습니다.

며칠만에 일상속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언제가 개인날이
될런지요?

부디 세월이 약이 되어서 좋은 기억들만 간직하고 잊을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릴 뿐입니다.

아기천사가 짧으나마 이 세상에서의 받은 사랑으로
먼 여행길에서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