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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사이


BY seon004 2001-01-17

아직은 새벽의 여명도 시작되지 않았다.
모두들 간밤의 여정을 채 끝내지 않은듯 조용하기만 하다.
이시간 출근준비를 서두르는 남편옆에서
숨소리도 내지 않은채로 자고있는 듯한 모습을 하며
물끄러미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다.
아직 자고 있는 아내을 위하여
불도 켜지 않은채 옷을 갈아 입고 발소리 내지 않으려
조용조용 걷는 그 모습이 안쓰럽다.
간밤에 언짢아했던 내 모습을 지울 수 있으면
지우고 싶다.
남편에게도 용기내어 사과하고 싶은데 그저 난 잠이 든 척
억지로 눈을 감고 있다.
작은 몸동작만으로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서며 키를 돌려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후 난 오지 않는 잠을 돌려 보내고
일어나 앉았다.

우리의 싸움의 주제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아주 많은 시간을 산 분들이 보기엔 그저 사랑싸움이라고
별것도 아닌데 먹고 살만하니까 싸움만 한다고 할 지도 모른다.

항상 별 일도 아닌것이 발단이 되고
목숨을 걸 만큼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해결없는 문제제기만 한다.

어제도 여러분들을 모시고 식사를 하게 되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짜증나는 정치얘기,경제가 어려운 얘기,
아이들 교육비등 피부에 와닿는 얘기들을 나누다
자연히 노후대책으로 방향이 흘러갔다.
우리 남편의 사고방식은 어른들 말씀으로 치자면
너무 건전한 사고방식이고,
젊은 우리들의 눈에는 보수적이다.
아이들이 결혼할 때 결혼 당사자를 집으로 데리고 와
인사시킬때 딱 한가지만 물어보아 "네"라는 답이 나올 경우만
결혼승낙을 하고 그렇지 않을시에는 인연을 끊는 일도 할거라고
확고한 자기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있다.

물어본다는 그 한가지 질문은
"너 나중에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살거냐고"

너무나 확고한 그 소신에 난 반기를 든다.
나 자신도 부모님을 위해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데
어찌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느냐고
상황이 되면 모시는 거고
효라는 것은 그렇게 억압적으로 하는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스스로 느끼게 하는 거라고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내 나름데로의
논리를 들어가며 설명을 하지만 우리 남편에게는
그것이 통하지를 않는다.
나도 그 성격을 아니까 어지간해서는 맞추며
그냥 당신이 옳소 하는데 어제는 나도 비위가 틀려서
한마디를 했다.
당신은 한달에 어머님께 몇번의 전화를 하고
정말로 효도를 하고 있냐고 가슴에서 묻고 싶었던 언어들을
여러사람이 있는데도 그냥 막 뱉어냈다.
나도 어머님 모시고 못산다고 결정적인 말까지 끝으로
못을 박듯이 해 버렸다.
그 마지막 말에 나도 놀라고 옆에 계시던 분들도 놀랐다.
나 자신이 갑자기 용감해진건지 생각도 못했던 말까지 나와버렸다.
남편의 표정이 확 바뀌며 여러사람이 있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언성을 높히며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분인데 왜 못 모시냐고
타당한 이유를 대라며 너무도 크게 화를 낸다.
나 자신도 마지막 말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내가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이유도 없이 싫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너무 강요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우리둘만이 있는 것처럼 끝까지 가보자는 심산으로 지지않고...
순간 우리들을 보고있던 분들이 분위기상 우리들을 말리며
어디 누구 엄마가 그럴 사람이냐,조금씩 참으라 이해를 하라며
서로의 맘을 누그려 트리려고 갖은 애들을 쓰는걸 보면서,
또 내가 너무 심한말을 한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어
그만 하자고 내가 심했다고 마무리를 지으려 했으나 너무 화가난 남편은 한참을
대꾸없이 있다가 여러분들이 계시니 어쩔수 없이 화를 삭이며
여러분께 죄송하고 누구엄마 맘도 풀어주라며 노래방이나 갔다 오라며
우리들을 내보냈다.
열심히 노래부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내집엘 들어서니 아직까지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담배연기가 자욱.
내 발자국 소리에 잠든척 남편은 누워 있지만
아직 풀어지지 않은 담배연기는 천정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더 이상의 대화도 없이 나도 슬그머니 남편의 옆에 누웠다.
잠을 청하려 해도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오히려 더 맑아진다.
지금이라도 내가 진짜 잘못했다고 얘기할까?
아니야 얼마든지 할 수도 있는 말이야.
십몇년을 살았는데 그까짓 말도 할 수 있지.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어머님을 모시고 살 수가 없다는 말까지 할 수가 있어.
이래도 저래도 맘만 혼란하고 어지러울 뿐...

팔남매를 키우신 어머님을 생각할 때마다
안타깝고 안쓰러움에 목이 메여 오지만
때때로 그걸 내세우며 너무 일방적인 효를 강요하는 남편이
숨이 막히고 답답할 때가 있다.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며
손주들이 며느리가 하는 모습이 영 맘에 안들때
그저 한마디씩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면 나도 얼마든지 그걸 받아들일텐데
조금의 실수도 용납이 안되고 그저 어머님이 최우선시 되는 상황이 힘에 버겁다.
남편의 입장에서 당연히 나에게 요구할 수 있는 거지만
그래도 이젠 내가 들어설 자리를 남겨 주었음 한다.
아내를 믿고 아이들을 믿어
남편의 어머니이며 나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분께 우리들의 몫을 맡겨두고
조금만 방관을 했으면 좋겠다.

내 이런 맘도 남편이 이해를 해 주었음 좋은데...
나도 어머님을 사랑하고 자기만큼은 아니겠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걸...

우리 남편이 하는 말이 다 옳다.
내부모 형제가 제일루 소중하고 귀한것을 알지만
맘 한편으론 너무 강압적임에 반감이 드는걸 알고 강제적임이 아닌
자율에 의한 맘이 진정한 맘이라고...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겠지만
맘이 무겁다.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한없이 작아 보였고
살아가실 날이 얼마 되지 않음에 맘이 더 급하여 그리
강요를 하는지도 모르는 남편의 마음씀을 알지 못하는 내 자신이
못미덥고 부끄러워 큰 소리치는지도 모르겠다.

부부란 정말 가깝고도 먼사이인가보다.
진심을 갖고 말을 함이 어려운가.
서로의 이해만 구하려 해서 힘이드는건가.
내입장에서만 바라보아 어려운가.

그치만 난 남편을 사랑한다.
내 아이들을 사랑하고 나의 어머님을 사랑하고...

힘없이 출근한 나의 남편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야겠다.
아직도 밖은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