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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를 깎아 점수를 따다!!!


BY sieg 2001-10-15

저는 이른바 갱상도 머시마 입니다.

갱상도 머시마의 턱없이 부족한 표현력을 결국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유해졌다고, 주변 사람들이 그럽니다.>>

그래서, 2년 전 저의 여자친구집에 처음으로 놀러 갔을 때, 아니...사실은 이사하는 날이어서, 처음으로 일하러 갔을 때, 마치 군대에서 상관에게 대답하 듯 짧고 굵게 "네!", "아닙니다."로만 일관했었지요.

하지만, 저의 여자친구는 정말 애교도 많고 감성도 풍부하고 그래서 자신의 감성을 못이겨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화도 잘 못내는 그런 사람입니다. 물론, 자신의 그러한 선량함이 받아 들여 지지 않느 상대에게는 틀림없이 날카로운 자존심을 세우지요.

그렇게 무뚝뚝한 저와, 애교덩어리인 제 여자친구가 함께 있는 것을 보면 저보다는 제 여자친구가 저를 더 좋아하는 것 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저녁에 총명하신 제 여자친구의 할머니께서 하시느 말씀이, " 내가 보기에는 우리 손녀가 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기가!?"

그리고 저의 입에서는 이런 소리가 나왔습니다.

"아휴, 깜짝이야...."


사실은 그것과 반대지요.

쉽게 이야기 해서, 제 여자친구는 가만히 있는데 제가 나름데로 치밀한 계획하에(?) 그녀를 꼬신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진실이 처가댁에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신랑감 0 순위로 자리매김 하는데 틀림없이 미묘한 방해요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그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밥 보다 과일을 더 좋아하시는 저희 장인어른께서는, 일부러 맛있는 과일의 생산지를 직접 찾아가서 사 오실 정도로 과일 매니아이십니다.
1999년 여름 어느날...마루 테이블 위에는 어김없이 참외들이 놓여져 있었고, 마침 할머니, 장인어른, 장모님, 제 여자친구 그리고 저 이렇게 다섯이 모여 앉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아무도 참외를 깎아 먹으려 하지는 않았지요. 저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조용히 과도를 집어 들고는 참외를 깎아 내려 갔습니다. 그 때 장인어른께서 하시는 말씀, " 임마야, 살 다 떨어지겠다. "... ... 여전히 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한 방울의 식은 땀...그렇게 참외 하나를 깎아서 길쭉하게 4등분 해서 접시에 올리니, 또 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 " 씨 빼라 씨. 씨무믄 배탈난다." 그래서 칼로 쭈~욱 밀어서 씨를 다 빼내고 포크로 하나 푹! 찍어서 할머니 손에 하나, 장인어른 손에 하나, 장모님 손에 하나, 제 여자친구 손에 하나 들려 주었습니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배가 짜부날 때 까지 참외를 깎아 먹었습니다.

장모님께서 하시는 말씀...
"여자가 세 명이나 되는데, 니가 혼자서 참외를 다 깎았네..."

그에 대한 저의 대답...
"누가 깎든 어떻습니까..."

장인 어른의 반응...
"어떻긴 뭐가 어때 임마야, 아까븐 살키 껍데기에 다 붙이 놓고는..."



아무튼,

그것이 훌륭한 시발점이 되어서,

그 이후로 저의 딱딱함을 조금씩 누그러뜨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에 또 시간이 나면, "장모님과 고스톱 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