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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지혜(?)와 용단의 덕택으로


BY ungic 2001-01-16

아내의 지혜(?)와 용단의 덕택으로

지금 내 사는 집을 새로 지어 이사한지가 이제 십년째 이른다
이웃의 집 모습과 그리 다를 바 없는 단독주택으로
처음 집을 짖고자 구조와 배치를 생각하고 설계도를 완성할 때 까지
아내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했었다
부엌의 위치와 동선을 고려한 주방시설의 배치
공기 흐름의 원활함을 위한 창문의 크기와 그 대칭성
내부 마감재료의 색상과 재질에 이르기까지
난방연료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석유와 도시가스의 열량과 편리성 등을 감안 고심 끝에
그 비용이 다소 많은 도시가스를 결정했었다
크린 에너지라는 이유만으로

이사 그 첫해 겨울을 지내고 보니
난방비용이 만만찮았다 내 벌어옴과 견주어보니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버티어 낼 수밖에 실내온도를 조금 낮추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더운물 쉽게 사용하려고 설치한 태양열 덕분으로 사시사철 풍족하게 뒤집어쓴다
태양열은 난방과 겸하지 않는 터라 더운물을 마치 공짜인 듯 펑펑 사용하는
나쁜 버릇이 생겨나고 말았다
햇빛으로 데운 물 우리 다섯 식구는 다 쓰지 못하기도 하니까

해가 거듭 날수록 난방비는 우리의 가계를 압박했겠지
살림살이에 관여 않는 난 잘 알 수가 없었지만
아내는
IMF라는 우환이 들고 부터는
난방구조를 바꾸려고 여러 가지 궁리 끝에
지난해 늦여름
갑자기 내게 알려왔다 심야전기 온수보일러로 바꾼다고
비용은 얼마며 공사기간은 몇일에 유지관리 비용과
도시가스와의 비용의 경제성 등등을 열거하면서
마치 나의 최종 승낙을 구하는 듯 해 보였다
난 별 대수롭잖게 흘려듣고 말았지
찬성도 반대의 표시 없이
내심 뭘 알기는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인지 다소 못미더운 표정만 보였겠지
그럴듯한 분석 자료도 없이 구두로만 설명하였으니까

몇일후 아내는 내게 최후 통첩이라도 하는 듯
오늘 공사계약 한다고 낮에 시간좀 내어 달라고 하길래
근무시간에 어떻게 라고 퉁명스레 말하고 말았지
퇴근후 넌즈시 제품설명서와 여러 가지 비교분석자료들을 보니
괜찮은 시스템이라 납득도 생겨났었지만 내색하지 않았지
나도 들은 바도 있고 하니
그래도 내 이름으로 문패 달고 사는 집이라
보일러는 어디에 설치하고
전기 배선은 어떻게 하며
기존 배관과의 접속은 이렇게
도시가스 보일러는 비상시를 대비하여 그대로 두고
노출 배관의 마감은 또 어떻게
등등을
거침없이 일러주었다
그 동안 나 혼자 생각 해둔 것을 종합해서
아내는 어리둥절하고 말았지

공사 착공하는 날
아내는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왔다
지금 좀 와 줄수 없는지를
어끄제 설명한 것을 잘 모르겠으니 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일면 사정쪼로
난 못 이기는 척
조금 퉁명 그리다가 휑하니 달려가 좀살스러울 만치 이것 저것을 주문을 했지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마치 공사 감독관이라도 된 것 같이
감독관은 감독관이지 내가 집주인이니까
그런대로의 공사를 하루에 걸쳐 끝냈다

늦 여름인지라
그 성능을 시험할 수가 없었다
날 춥기를 기다릴 수밖에
보일러를 작동하기 까지의 근 석달간 아내는 조바심의 연속이였다
가끔식 내가 아내를 비꼬며
겨울에 보자며 엄포도 놓았으니까
고약한 심뽀였지 그건

마침내 겨울은 오고야 마는 것
의기 양양해진 아내는 잘 외워둔 사용 설명에 따라 보일러를 작동 시켰다
증명해 보이려는 심산으로 성능의 최대치로 설정해 두면서
그래 한달 후에 보면 알지
전기요금 고지가 오는날
지난해 같은 달의 도시가스 요금과 비교하여 내게 알려준다
그러나 별 차이가 없었다
그때 아내의 표정이 조금은 난감해 졌지
난 속으로 웃는다
지금은 알수 없으며
그건 한 겨울을 지내보아야 아는 것이기에
아내의 넉두리
『올 겨울이 추워야 할텐데.......』에
난 『이젠 겨울이 없어』라고 대꾸했었다

웬걸 올 겨울은 왜 이리도 추운지
난 외투조차 없는 사람인데
도시가스와 심야전기의 격차는 2배 차이로 벌어지고 말았다
아내의 완승
아내의 표정은 밝아져 오고
자신의 선택이 현명하였음을 세상에 알리려는 기색으로
의기 양양하여 개선 장군이라도 된듯
마치 승자의 여유있는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난 이럴 때 어찌해야하는지를 잘 알지
아내를 추켜세우는 것에
내가 너무 속보이는 행동인가
어머님이 계시는 자리를 골라
『올 겨울엔 며느리 덕에 잘 보내는 줄 아세요』
『이 집에 맏며느리는 잘 보았어』
얘들 앞에서도 추켜세운다
아내를 안아 주면서
『우리가 이렇게 따뜻하게 보내는 것은 다 엄마 덕인 줄 알아라 너희들은..』
『닭살 돋는 말씀하시네』
『이놈들이 무어라...』
그러면서 우린 웃는다

사실 그랬다
그전엔 조금은 떨며 겨울을 지내었지
때론 한방에서 함께 자기도 했으니까
아내 덕택으로 유난히도 추운 올 겨울을 거진 벌거숭이로 지낸다
아내의 그 높은 지혜(?)와 용단으로
그 즐거움 뒤로 또 하나의 먼 걱정거리가 생겨난다
전기 만들어 파는 회사를 민영화시키면
그놈의 전기료가 엄청 오를텐데
그러다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못해도 삼년은 지나야 하는데
전기료 올라 투자비 회수 못하면
아내는 억울하다 못해 마음 상하지 않을까에 걱정이 된다

몇일전 아내가 내게 묻는다
『재형저축 만기일이 1월 달이죠?』
『글세 10월 인줄 아는데...』
이런 그건 왜 물어본담
그건 내 몫인데
그 저축금 받아 빌린 공사비 갚는다나 어쩐다나
나 원 참
모처럼 부자연습이라도 하려 했는데
나는 숨을 곳도 숨길 곳도 없고 마는가
삼년간 원천징수 강제 저축한 건데
그것 마저 바쳐야 하다니
빚내어 따뜻한 겨울 보내는 서글픔과
그 빚 내가 갚아야 하는 것에 조금은 억울한 듯 하여
에젠 실내온도 삼십도로 올려 두고
이불 덮지 않은 채로 잤다
그래도
따스한 겨울을 보내게 해준
아내가 예뻐 보이고 사랑스럽다

辛巳年 正月 열 여셋날
날 추워 내 집이 더 없이 따스함을 느끼니 아내에게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