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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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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BY adjung 2001-10-15

엄마!
엄마가 나의 엄마가 되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는게 내 인생에서 얼마나 큰 행운인지
엄마 알고 계세요?

초등학교 이학년때였죠. 아픈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동생과 둘이 집을 지키다가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으로 오셨어요.
그리고는 나를 쓰다듬어 주셨죠.
내 귀에 아주머니께서 나누시는 말씀이 우리 엄마가 돌아 가셨다네요.
꿈이겠죠... 정말 그랬었음 싶었나봐요. 쌔근쌔근 잠든 동생 옆에서
나도 그냥 잠든척 했어요. 머리까지 담요를 덮어 쓰고 기도했죠.
"하느님, 제발 제발 꿈이게 해주세요!"
눈물이 났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그냥 멍한 느낌. 전 너무 어렸나 봐요.
지금 어렴풋이 기억 나는건 엄마 땅에 묻히신 그날 동생과
뒷좌석에 거꾸로 앉아 뒤에 오는 차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댔던 기억... 어린 마음에 차 타는게 즐거워서 일까요?
아마도 똑바로 앉아서 나를 보기만 하면 눈물 흘리는 친척들과
고개숙인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기 겁이 났었나봐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죠. 아빠는 열심히 일 하시고...
그런데 훗날 술취하신 아버지가 그러시대요.
너희와 함께 죽으려고 했었다고... 우리를 차에 태우고 외곽도로에서
뛰어 내리려 했었노라고.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표현없는
아빠와 함께 놀러가는줄 알고서 얼마나 신나서 재잘댔는지 노래까지
부르더래요.
그래서 차마 그럴수 없었노라고. 그리고 다짐 하셨다죠.
이 두 아이를 위해 더 열심히 살자구요.
다른 친구들은 엄마들이 오셔서 선생님도 뵙고 가는데, 맛나는 간식
거리 챙겨서 선생님 드리고 가시는데... 어린 마음에 그러고 나면
선생님이 그 친구만 예뻐하시는 것 같아 얼마나 부럽던지.
그래서 집안 곳곳을 뒤져 몇번 썼지만 깨끗한 볼펜, 작은 비누들
바리바리 챙겨서 선생님 가져다 드렸죠.
선생님은 아셨을까요?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가져와 말없이 놓고
가던 작은 아이의 마음을...
친하다는 친구들이 내 상황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쟤는 엄마가 없어"
하고 말했다는 소릴 전해 듣고 절교를 선언하고, 놀림 받는 동생을
위해 덩치큰 동네 오빠들에게 악을 쓰며 대들었죠.
장난꾸러기 동생에게 장난이 심하다고 야단치던 아줌마께 "엄마가
없으니 애가 저런다"는 얘길 들었을때도 집까지 쫓아가서 눈을 부라렸어요
무서운것도 없고, 눈물도 안나왔어요.
그리고 점점 뻣뻣한 아이가 되었죠. 나를 보며 측은해 하는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엄마! 그때 엄마가 내게 아니 우리에게 오셨어요.
참 세련되고 자상하신 엄마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우리 엄마가...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엄마가 땋아 주신
머리를, 엄마가 떠주신 스웨터를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는지.
엄마!
그거 아세요. 저 어릴때 엄마 앞에서 아빠 손 한번 잡지 않았다는
사실... 왜 그랬는지 잘 몰라요.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어린 마음에 엄마가 맘상하시진 않으실까 걱정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만큼 엄마가 우리 곁을 지켜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였던것 같아요.
워낙 표현 없으신 아빠는 우리 앞에서 더 엄한 호랑이 아빠가 되셨죠.
엄마 손을 거치지 않으면 작은 선물 하나도 안겨 주시지 않으시던
아빠... 너무 어렵고, 무서운 아빠. 그 덕분에 우리 남매는 엄마를
더 따르고 좋아했어요. 늘 우리를 이해해 주시는 고마운 엄마시니까.
이제 생각하니 아빠 행동들이 이해가 가요. 엄마를 우리와 더욱
가깝게 해 주시려는 세심한 배려셨다는거, 그리고 엄마에 대한
사랑이셨다는거...
엄마께 정말 잘 해드리고 싶었는데, 사실 엄마랑 저 많이 싸우기도
했죠. 한참 예민한 사춘기 시절엔 엄마가 남동생만 좋아하시는것
같아서 너무 샘도 났죠. 너무 어리석게도 이제서야 깨달았어요.
장난 심한 동생, 아버지께 많이 야단맞던 동생 다른길로 빠지지 않게
그렇게 붙잡아 주시려는 마음. 그래서 더 많이 신경 써 주셨다는거...
엄마는 그런 분이셨어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시고,
저를 늘 믿어 주셨죠.
저는 엄마가 새엄마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아요.
아니, 새엄마라고 생각한적 별로 없던거 같아요.
나를 낳아 주신 엄마랑 살았어도, 사춘기 시절엔 갈등을 겪었을 테고
작은 일로도 몇일씩 말도 안했을테고, 잘못하면 매도 맞았을 테니까
그러다 풀고, 웃고 누구나 다 그렇게 살테니까...

엄마, 참 고생 많으셨죠.
엄마는 저희에게 처음으로 백화점이란 곳을 데려 가주시고,
맞춤 옷에, 예쁜 양산에, 늘 곱게 화장을 하신 모습이셨는데
그렇게 세련되시던 엄마가 몇년을 시집오실때 가져오신 옷만으로
사시고, 엄마를 위해선 음료수 한잔도 아까워 하셨죠.
치매걸리신 할머니 병수발도 하셨고, 친척들의 따가운 시선도 받으셨
다는거 알아요. 오랫만에 만난 친척들은 저의 모양새만 살폈죠.
혹시나 고생하는건 아닌가 싶은지 뒤로 불러내어 "엄마가 잘해주시니?" 하고 물었었죠.
난 이렇게 행복한데, 엄마가 있다는것 만으로도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데... 엄마는 그런 사실 왜 모르셨겠어요. 다 아셨죠?
엄마의 마음 고생이 오죽했을까 싶어서 지금 저, 가슴이 아프답니다.
지금 시집와서 아들 낳고 살고 있지만, 엄마께 고마운 마음 가슴에만
담고서 이렇게 생활에 쫓겨서 사는게 너무 죄송스럽네요.
엄마, 추석때 엄마 손을 보니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그 곱던 손이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졌더군요.
그 주름 하나 하나에 저희를 위해 열심히 사신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그래서 그손을 잡으며 손을 비비며 눈물이 날뻔 했어요.
엄마, 다음 세상이 있다면, 엄마가 제 딸 하세요.
아무리 해도 엄마가 저에게 주신 사랑만큼 못할것 같지만,
그래도 꼭 보답하고 싶어요.
엄마가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맘 고생 시키고, 소리지르고 대들고,
잘난척 하신다 해도 제가 다 받아드릴께요^^
엄마 제발 건강하게 오랫토록 제곁에 계셔 주세요.
엄마는 저의 힘이예요. 그리고 친구고요.

사랑해요 엄마!
엄마가 제 곁에 계셔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