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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주부의 영.화.수.다 - 11. 조폭 마누라


BY 꼬마주부 2001-10-14

조폭 마누라

지난 주에 이 영화를 봤습니다.

"또 조폭이야?
이 놈의 영화감독들은 죄다 깡패 밖에 없는거야?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해야 그게 정말 영화지, 맨 싸움박질만 하는 영화가 무슨 영화야, 영화긴."

"재밌잖아."

영화를 늘 재미로만 보려는 우리 신랑 때문에 '봄날은 간다'를 보고 싶었던 저는 입이 댓빨 나온채 팝콘을 들고 있어야 했답니다...

어디갔다 이제 나온건지, 오랫만에 보는 신은경.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남자 박상면.

사실 전 제가 은근히 좋아하던 신은경과 박상면이 나온다는 것 빼고는 이 영화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뭐, 괜히 멀쩡한 여자배우 깡패 두목으로 만들어 놓고 허무맹랑한 스토리로 호기심 자극 시키는 그냥 그런, 한마디로 유치빤스한 영화일거라는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죠.
그 정도로 별 관심이 없었으니 당연히, 남들 다 아는, 아니, 너무 유명한 '서세원 프로덕션'이 제작했다는 사실도 그날, 영화 자막을 보고 알았답니다. 아니, 처음에는 이 서세원이 그 서세원인지도 모르고 신랑한테 킥킥 웃으며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히히, 서세원 제작이래, 서세원. 이름이 똑같아서 사람들이 그 서세원으로 알겠다, 그치?"
"이 서세원이 그 서세원이야."
"뭐야? 진짜야?"
"엉. 그런데 이 번에는 성공했다잖아. 이틀만에 본전 뽑았대."
"뭐야?...근데 왜 그걸 나만 모르고 있어?"
"넌 사랑 영화만 좋아하니까."
- -++

치, 내가 언제 사랑 영화만 좋아했어. 내가 '친구'를 보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데. 그리고 내가 뭐 사랑 영화를 좋아하는건가? 사람 사이의 섬세한 감정 교류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좋아하는거지, 저렇게 무뚝뚝하기만 하니 사랑이 뭐냐고 물어보면 자세하게 캐 묻지 말라고나 하지, 내가 텔레파시를 보내도 느끼지도 못하면서..치...궁시렁궁시렁...

어쨌든, 영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역시 첫 장면은 싸움질이었습니다.
신은경은 어디있나.....호기심이 생기긴 했습니다.
신은경이 중성적인 이미지이긴 하지만 그건 미소년의 이미지이지 남자의 이미지는 아니라서 조폭을 어떻게 소화해 낼까 궁금했지요.
한차례 싸움질이 끝나고....가위를 들고 나타난 우리의 신은경, 아니 부두목 차은진.
헐렁한 점퍼와 바지 차림의 신은경은, 아니 차은진은 에구 이런...너무 귀여운 거 있죠.

고아원에서 헤어진 언니를 찾으면서부터 차은진 결혼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을 보고 남자를 사로 잡기 위해서 특별강의를 받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죠. "이잉~~오빠~~~" 룸사롱 세라가 할 때는 남자들 여럿 녹일 애교였지만, 조폭 부두목 차은진이 하니 남자들 여럿 쫄게 할 말투였죠. 우여곡절 끝에 동사무소 말단직원, 순딩이 강수일(박상면)과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좌충우돌 서로 맞지 않는 트러블만 잔뜩 생기죠....

조폭 두목으로 변신한 신은경은 귀엽긴 했지만 참 잘 어울렸습니다. 무뚝뚝한 말투에 앙칼진 눈빛, 터벅터벅 걷는 팔자 걸음,..마치 신은경은 원래 저런 성격을 가진 사람인 것만 같았죠. 박상면이야 뭐, 정말 뭘해도 잘 어울리니 칭찬할 필요도 없구요, 아, 티비에서 임금 역활을 보여주었었던 안재모의 느끼한 변신도 정말 느끼했어요.

조연 배우들도 화려하지 않고 폭 넓게 선택이 된 것 같아서 모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낯은 익지만 영화에서는 처음 만났던 세라와 마징가(신은경의 오른팔)의 숨겨진 매력도 엿볼 수가 있었죠.
서세원씨가 제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곳곳에 무명 개그맨들이 출연하는 것을 보고 여러사람에게 기회를 많이 줬다는 것도 느꼈답니다.

영화 내내 얼마나 웃었던지,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전 알 수 있었답니다.
조폭 마누라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폭 생활이 아니라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요.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차은진이 유일한 피붙이인 언니의 말 한마디에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갖으려는 행동들..불만투성이의 아내이지만 가족의 행복을 지키려는 강수일...싸움질 끝에 배를 움켜 잡고 "배만 건들지마..아기가 있어.."라고 고통스러워 하는 차은진...병 든 언니가 숨질 때 언니를 부등켜 안고 "언니! 언니!..죽지마....엄마...."라고 하는 차은진의 눈물을 볼 때는 가슴이 짜안 했습니다.

'신라의 달밤'처럼 별 볼 일 없는 싸움질 영화인지만 알았는데, 잘 만들어진 영화는 분명 아니지만, 뭔가 전해주려는 메세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뿌듯했습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저도 괜히 가족의 소중함이 찌릿 느껴져서 애정 가득한 눈으로 신랑을 바라보니, 우리 신랑도 한 마디 하대요.
"아잉~~~오빠~~~우하하하"
정말 분위기, 산통 깨는데는 도사입니다. 우리 남편.

아무튼, 그 후로 저는 티비에서 평론가들이 나와 조폭 마누라를 두고 '뻔한 조폭 영화' '한국 영화, 조폭 영화가 한계인가!" 뭐 그딴 얘기들을 하면 저, 조용히 한 마디 합니다.

"재밌잖아.."

^^

2001. 10. 14
- 그런데 왜 15세 이상 관람이지? 분명 귀에 거슬리는 욕설과 폭력, 베드신...등등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장면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데....서세원이 윤리위원회에 돈 좀 썼나?

어제 뉴스에서 괴롭힘을 못 견딘 고딩이 괴롭힌 학생을 수업시간에 칼로 살해한 사건이 나왔던데...영화 친구 마지막 장면을 보고 살해 계획을 세웠다고 그러던데.....아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