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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꽃, 지는 꽃 그리고 사람들


BY 느티나무 2001-10-14

가을비가 추적추적 이틀 동안 내리고 나니 기온도 떨어지고
하늘은 쪽빛이 돌며 한없이 한없이 높아만 간다. 예전에
읽었던 수필이 생각난다. "손가락으로 파란 하늘을 콕 찌르면
쪽빛 물이 뚜욱 뚝 떨어질 것 같다."라고 했던가...이 비가
멈추니 앞 뜰, 뒷 산 모두가 계절의 옷으로 갈아 입는다.
아침 저녁으로 출근하면서 길 옆에 볼 수 있는 은행나무,
느티나무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머지않아 거리에는 노란 은행잎, 분홍색 느티나무 잎이 쫙
깔리겠지...

정원에는 환한 금송화가 마지막 찬란한 금빛을 발하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밝게 하고 있다. 늦 여름에 피어서 서늘한
가을을 맞아서 계절의 바뀜을 거부하는 몸짓인지 처음보다
더 짙은 향기를 풍기고, 산뜻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올 해에 심어서 다 자라지 못한 부용화가 꽃을 못 피운 것을
못내 아쉬워 하면서 몇 송이 늦은 꽃을 피우고 있어 애처롭기도
하고 그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도 한다. 보통 이 부용화는 여름에
핀다. 목단이나 장미보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무궁화처럼 생긴
넉넉한 예쁜 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꽃 색깔도 흰 색, 붉은 색,
분홍 색 등으로 다양하다. 부용화야, 내년에 예쁜 꽃을 피워다오.

등나무 벤취 뒤에 있는 정원에는 지금 처갓집 동네 야산에서
옮겨다 심은 야생 들국화의 일종인 '벌개미취'가 마지막 꽃을
피우고 있다. 은은한 연보라색의 꽃이 잔잔한 느낌을 주어서
좋다. 나는 보라색을 아주 좋아한다. 지금도 자수정을 보면 아주
갖고 싶어진다. 언젠가 드림랜드에 갔을 때 브라질 산 자수정
원석을 수석 형태로 받침대를 해서 팔고 있었다. 반으로 절단한
커다란 돌안에 반짝이는 자수정은 나의 가슴을 뛰게 했었다.

이제, 과꽃은 내년을 기약하고 꽃씨를 맺어가고 있다. 원래 분홍
색 꽃만 있었는데 내가 작년에 동네에 다니면서 보라 색 꽃 씨를
받아다 올 봄에 뿌렸다. 그러니 늦여름에 보라색 꽃을 활짝 피워
아주 정원에 환하게 되었다. 이 과꽃은 많은 정성을 들이지 않아도
잘 나고 자란다. 씨도 전년도에 땅에 떨어진 것이 다음 해에 다시
나서 꽃을 피운다. 그 모양도 수수해서 내가 어릴 때 누나의 모습
과도 같다. 나는 어렸을 때 '과꽃'노래를 많이 불렀었다. 그 때는
과꽃이 어떤 것인 지 모르고 불렀는데 이제 과꽃을 가꾸면서 그
노래를 생각하니 정말 수수하고 꾸밈이 없는 누나와 같은 느낌이
든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 '과꽃'노래를 불러본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 보면 꽃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지 온 삼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정원 한가운데 심은 해바라기꽃은 이제 마지막 남은 몇 송이가
이 가을을 맞아 더욱 쓸쓸하게 보인다. 뜨거운 여름에 태양과
함께 여름을 불살랐었는데 태양의 열기가 식으니 같이 정열이
식었다. 대신에 내년을 기약하며 가을 햇볕에 올 여름 맺은
열매를 알차게 여물게 하고 있다. 그 열매가 무거워 무거워
고개를 떨구고 있다. 식물도 익으면 이렇게 고개를 숙이는데
요즘 우리들은 자연의 지혜를 배우지 못하고 겸손의 미덕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해바라기여 내년에 다시 만나자!!

이제, 기온이 떨어져서 가을의 냄새를 솔솔나게 풍기니 가을의
주인공인 국화가 살짝 꽃을 피워 인사를 한다. 아직 완연하게
무르익은 가을은 아니니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계절의 소식을
알아차리고 우리 곁에 찾아온 이 진객이 어찌 반갑지 않으랴.
예로부터 선비들이 하필이면 서리내리는 추운 겨울에 핀다고
해서 많은 사랑을 주었다. 옛날 어느 시인은 "아마도 오상고절
(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하고 칭찬을 했다. 나는 국화,
너를 보며 옛 선비의 기개를 배우고 싶다.

꽃은 이렇게 계절에 따라서 피고 또 진다.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그 피는 모습과 지는 모습은 다
달라도 자연의 일부로서 계절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고 그
거대한 흐름에 순응하고 있다. 올해를 접고 내년을 또 기약하며
씨를 남기고 가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이 대자연의 일부이다. 누구라서 계절과 세월의 흐름을
역행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이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려는
사람이 많다. 주름살 수술을 하고, 머리에 염색을 하고... 나이를,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얼마간의 짧은 시간이나마
멈추게 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여자를 꽃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 꽃을 찾는 남자는
벌이나 나비에 비유한다. 그러면 수많은 꽃이 피고 지는데 왜 인간의
꽃인 여자라고 피고 지지 않겠는가? 꽃이 지는데 벌과 나비는 어디로
가겠는가?

자연보다 더 위대한 교사는 없다고 한다. 이 가을에, 나는 계절의
바뀜과 흐름을 보면서 자연에 순응하며, 복종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고 싶다.

"위대하신 자연의 어머니시여, 감사합니다. 저에게 생명을 허락하시여
이 세상에서 온갖 만물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해주심에 감사드
립니다. 이제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많은 생명들이 내년을 기약하고
씨앗을 남기고 어머니 품에 돌아갔습니다. 내년에 그들이 남긴 생명
을 다시 태어나게 하여 주십시요. 저 역시 이 생을 다하면 어머니
품에 돌아가겠습니다. 그 때 저를 기꺼이 품에 안아 주시기 바랍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