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래간만에 탐스러운 함박눈이 꽃잎처럼 춤을 추며 허공을 수놓았다.
어지간한 눈에는 반가움보다 길 미끄러울 걱정이 앞서던 무딘 내 가슴도 하염없는 눈발 아래 스르르 빗장을 풀고 말았다.
긴 세월을 살다 보니 눈오는 날을 즐기는 낭만보다 현실적인 우려가 항상 먼저인걸 어찌하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펄펄 내리는 흰눈 속에서는 아직 잠들지 않은 낭만이 겨우 남은 심지에 불을 붙였다, 짱구아빠와 눈 내리는 거리로 나섰다.
이렇게 눈오는 날 미술관에서 마음을 움직일 그림 한 점을 만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또한 함께 할 든든한 동지가 곁에 있음에야......!
오랜만에 탄 전철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미술관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내렸으나 도로가 미끄러워 버스나 택시가 다니질 않았다.
목적지까지는 1.5 km 남짓-- 우리는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걷기로 했다.
쏟아지는 눈 때문에 눈앞이 보이질 않아 우산을 펼쳤다.
멋없이 우산을 쓰고 눈을 맞는다고 투덜거리던 짱구아빠도 잠시 후 우산 밑으로 들어섰다, 눈보라가 워낙 거칠어졌다.
길이 미끄러워 우리는 저절로 둘이 꼭 붙들고 의지하며 걸었다.
"이 봐라, 재미있지?" 짱구아빠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웃음을 웃는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행복이 있었다니........!
우리가 그렇게 진지하게 갈등하며 꿈꾸고 가꾸려던 행복은 너무도 가깝게 있었던 것이었다.
평소대로라면 분명 미끄러운 도로 걱정에 불안해하던 내 마음이 이렇게 날아갈듯 산뜻하다.
피부에 닿으면 못이기는 척 녹아 내리는 눈발의 감촉도 새삼스럽다.
눈보라 속에 서 있는 미술관의 조각상과 근처의 야트막한 산이 어우러져 묽은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그대로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는 언제인가 기억도 가물거리는 그 옛날의 행복한 자유로움을 맛보았다.
우리는 너무 편리함에 길들여져 쉽게 만날 수 있는 행복을 외면한 것은 아닐까?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 흔히 말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쉽게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신속한 기능성과 정확한 계산에 익숙해지면서부터 톱니바퀴 같은 도시생활에 어렵게 적응해왔다.
나도 모르게 변해 가는 행복의 조건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얽어매는지는 한번도 계산하려 들지 않았다.
내가 얻은 것은 내가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고 원래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얻고자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았던가?
자연이 주는 해방감!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했던가?
편리함을 잃고 아울러 질서의 균형이 흔들렸지만
대 자연이 나에게 만들어준 눈 밭에서 나는 어느 때 보다도 자유롭고 행복했다.
대 여섯 명의 멋지게 차려입은 "아줌마" 들이 길에서 갈팡질팡한다.
아마도 어떤 모임이 있었나보다, 우리는 그들 곁을 지나쳐야했다.
일행 중 눈부시게 성장을 한 "아줌마" 가 목청을 돋구었다,
"야! 이렇게 눈도 오고, 친구도 있고, 한잔해서 기분 좋은데 무슨 택시타령이야?"
그 중 한 명이 같은 톤의 목소리로 동조했다,
"그래, 오랜만에 눈맞고 걸으면서 기분 좀 내보자!"
나도 지나치다 웃음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친구들 손잡고 걸어 보세요, 아주 기분 좋아요!!!"
행복은 늘상 우리곁에 함께 있었다, 다만 우리가 몰라봤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