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는
들깨가 아이들의 키만큼 자라 있었다.
대추가 익어가고, 감이 익어 가며
가을이 익어 가고 있었다.
붉게 물든 대추 한알을 입에 넣어 보니
단맛이 입안 가득 베어든다.
대추 한보따리를 주시며
익은 것은 골라서 먹고 아직 푸른 색 대추는
널어 말리면 색이 붉게 된다고 하셨다.
두었다가 삼계탕에 넣거나, 대추차를 끓이면 좋겠다고 하신다.
뒤늦게 달린 고추들이 발그스레한 얼굴을 하고
수줍은 시골처녀 마냥 내게 반갑다고 인사한다.
여린 고추를 따서 밀가루를 묻쳐서 파릇하게 찐다음
양념간장에 참기름 살짝 둘러 버무려 먹는 맛은
어릴적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땅속의 고구마가 토실하게 여물어 가고
다 같은 파인 것 같아도 유난히 시골 밭에서 갓 뽑아낸
대파는 향긋하고 알싸한 매운기가 입맛을 돋구어 준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파를 썰며 그 싱싱함을 맛보았다.
일곱살짜리 딸아이는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이다음에
예쁜딸을 낳는다는 나의 말에 귀가 솔깃하여 사십여개의
송편을 마치 찰흙놀이 하듯 그렇게 술술 빚어내고.....
아이의 마음속에 이는 그 욕심이 난 또 귀엽기만 했다.
알밤을 까는 남정네들의 손이 바쁘고
낼름 낼름 먹어대는 아이들의 입이 바쁜
나날들이었지 싶다.
나물 볶는 냄새로 고소하고 향기로운 집안엔
모처럼 북적이는 식구들로 그득하고
어머니의 얼굴에 이는 웃음이 그저 흐믓하기한 한
며칠이었다.
떠나던 날
들마루 가득 어머니가 꾸리신 보따리가 늘어서 있고.....
어머니의 손맛어린 김치는 그렇게 익고 있었지.....
결혼하고 10년이 다되었건만 아무리 해도 김치만은
그 솜씨를 못 따라가지 싶다.
어머니께서 담가주신 김치가 너무 맛있어
얼마전 내가 담근 김치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김치찌개용으로나 써야 할지 모른다.
친정오라버니는 나의 음식솜씨를 늘 칭찬하지만
그 솜씨가 어쩜 어머니 솜씨인걸 알지 못하는 탓일게다.
어머니께서는
뒤울안에 커다란 솥을 걸어 두고 불을 때서
무청 시래기를 삶으셨다.
자작하게 된장지짐을 해서 별미로 먹으라 하시니
난 지난 겨울날 말려주신 시레기를 날콩가루 묻혀
된장국을 끓여 먹던 생각이 났다.
이제 일상속으로 돌아와 추억하듯 그 모습들을 그려보며
나는 며칠동안 넉넉한 식탁을 차릴 수 있을 거 같아
마음마저 넉넉하기만 하다.
트렁크 가득 실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무엇으로도 대신할수는
없음을 마음에 담아두고선 아쉬운 걸음을 재촉하였다.
아이들은 몇번이나 헤어지기 아쉬워서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
어머니는 에미 직장만 아니면 아이들 데리고 며칠간 푹 쉬어
가면 좋으련만 하셨다.
어차피 큰 아이 학교 때문에 가야하는 것을 모를리 없으시지만
그저 하루라도 더 옆에서 함께 있고 싶어 하시는 게
오래도록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시는 탓인지
점점 헤어짐을 쉽게 놓치 못하시는 어른들을 뵈는
이번 명절엔
그 어느때보다 많은 생각을 한 듯 하다.
그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아계시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머지 않은 날에
어머니께 된장, 고추장 담그는 법도 제대로
전수를 받아야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맛을 잊지 못하여서.....
늘 그자리에서 그 맛으로 우리 곁에 계시던
어머니의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까닭에
가장 가까이에서 그 분을 느끼며 살고 싶어서인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모처럼
개운한 시레기 된장 지짐을
뚝배기에다 만들어 봐야 겠다.
점점 그리워지는 것들이 늘고 있다는 건
나를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 빠른 세월의 탓일까.....
***에세이방의 여러님들 .....
즐거운 명절 연휴 보내시고
오늘쯤은 모두 일상속으로 돌아오셨겠지요.....
고향을 추억하며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