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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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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ob Light 한 모금, 그리고 햇밤 한조각.


BY allbaro 2001-10-04

Michelob Light 한 모금, 그리고 햇밤 한조각.

정말 조용한 저녁이다. 혼자다. 어쩌다 혼자가 되었다. 어제
지독하게 마신 결과에 의하여 머리가 울린다며 오후 3시까지
사경(?)을 헤메이던 아우는 일찍 도망을 갔다. 나를 외롭게
하다니, 하고 슬픈(?) 표정을 지었더니 더 빨리 탈출했다. 앞
으로 한 달 동안은 술을 끊을 겁니다. 사람이 안하던 짓하면
오래 못 살어...

어둠이 정말 자연스러운 요즘의 이곳은 발목 언저리의 차가운
가을이다. Michelob Light 한병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안주는
뭐가 있을까? 다시 냉장고를 열었다. 요즘은 의식의 연결이
잘 안되고 있다. 뇌세포가 점점 짙은 잿빛이 되어 가는 모양
이다. 아니면 납이 되어 가든가...

햇밤이 예쁘게 또아리를 틀고 있다. 강릉에서 어머님이 챙겨
주신 것이다. 각시도 없는 것이 술안주나 제대로 챙겨 먹는
지... 혼자서 중얼거리시며 밤을 깎던 어머님의 어깨가 무거
워 보였다. 나와 어머님 사이에 침묵이 가로 놓여 있었다. 나
는 괜찮아요. 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말로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더 이상 길게 이야기를 늘이고 싶지 않아서 였다. 오
랫동안 차 안에 있던 Stan Getz의 CD를 다시 꺼내 왔다. 예외
적인 실황 공연이다. 좁은 공간은 다시 둥실거리며 Jazz의 선
율에 떠오른다.

Michelob Light 한 모금, 그리고 햇밤 한조각. 송곳니에 닿은
햇밤은 통~ 하니 명쾌한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어쩐지 밤알
에 소리를 잡아 가둔 기분이 들었다. 다시 Michelob Light 한
모금, 또 명쾌한 소리. 나는 반복하고 있었고, Jazz는 흘러가
고 있었다. 시간은 여유롭게 놓여져 있었고, 나는 느긋하였
다. 담배 하나를 꺼내어 문다. 10분의 시간이 사라질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시간 5분, 그리고 줄어든 목숨 5분.

작게 고개짓을 한다. 발끝도 조금 움직인다. 키보드를 건드리
는 손가락 끝도 어쩐지 Jazz의 템포에 맞추어 춤을 춘다. 아
까 써둔 글을 다시 읽어 볼까? 아니면 보고 있던 산문집의 목
을 마저 죄어 버릴까?를 잠시 생각한다. 갑자기 커서가 마구
움직인다. 어허? 이런 파리다. 이 차가운 날씨에 아직도 파리
라니... 재빨리 파리채를 들어 날카로운 스매싱을 먹인다. 이
런 예상치 않은, 아니 원하지 않던 결과가 나타났다. 모니터
화면위에 터져 버린 것이다. 부랴 부랴 휴지를 조금 뜯어 정
성스럽게 닦아낸다. 잘 안닦여서 침을 묻혀 낸다. 앗! 방금
침을 묻힌 쪽은 어디더라... 어지럽다. 소독을 해야지, 다시
Michelob Light 한 모금, 그리고 햇밤 한톨이 입에서 예쁜 소
리를 낸다.

창밖에서 자꾸만 그리움이 틈을 노리고 있다. 비집고 들어오
려는 의도를 이미 알고 있다. 모처럼의 한가한 저녁이니 나를
좀 내버려 두라고 불쌍한 눈 빛 공격을 보낸다. 손가락 사이
에 코끝을 끼워 잠깐 힘을 주어 본다. 시원한 압박이 미간으
로 번진다. 손 끝에서 구수한 연초향이 난다. 잠시 숨을 깊게
들이 마셔본다. 때로 초컬릿 향이 나기도 하고 때로 역한 향
이 되기도 한다. 손가락 끝과 담배의 성분에는 변화가 없으
니, 후각신경이나, 심경의 변화에 따라 향기도 변하는 것이리
라. 그렇다면 또 다시 희망이다. 언젠가는 내가 기억하는 가
장 향기로운 그 향기도 변화하거나, 잊어질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한다.

잠시 산책을 하려다가 그만둔다. 이렇게 여유로운 고독은 드
문일이다. 그러니 있을 때 즐기자. 한가로운 시간을 가지는
자에게도 어떤일이 생길지 모른다. 문득 아까 읽은 구절이 머
리에 떠올랐다. 프랑스 알프마리 지방에서 산불이 났다. 불을
완전히 끄고 나서 사람들은 신기한 것을 발견하였다. 반들반
들하게 타버린 검은 덩어리, 마치 돌고래처럼 기이한 것이 산
중에서 발견 된 것이다. 조사 결과 그것은 사람이었다. 잠수
복을 입은 사람. 어찌된 것일까 해안에서 30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산중에서 어째서 잠수복 차림의 시신이 발견된 것일까?

결국 사건은 산불을 끄기 위하여, 해안까지 부리나케 왕복하
며, 20초당 10Ton의 바닷물을 무지막지하게 담아 올리던 소방
용 비행기의 도관이, 해저의 물고기를 쫏던 한가로운 휴가객
까지 빨아 올린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책에서는 인간 개구
리, 인간 새, 인간 불도마뱀이라고 익살 스러운 표현을 썼으
나 나는 웃지 않았다. 그 불운한 휴가객이 바로 우리들중의
누가 될 가능성이 이제는 너무나 농후해 져 버렸기 때문이었
다. 실제로 우리는 비행기를 보면, 아침 일찍 출근하여 다시
는 돌아오지 않는 어떤 장면을 그리지 않는가. 하여 혹시라도
비행기가 서식지의 상공을 나르면, 혹시 누구에게 원한 산 일
없수? 라고 쓴 농담을 던지곤 한다. 그러니 주어진 여유로운
고독은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있을 때 즐길만한 것이었다.

지금 흐믓하다. 오전에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서식지를 한시
간동안이나 털고 쓸어 내었다. 문밖에서 휴지를 태우던 아우
에게 자랑하였다. 내가 치워도 깨끗하게 정돈이 되는군! 거봐
형도 하면 되잖아! 어쩐지 내방같지 않은 장소에서 다시 흐믓
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Santana의 CD를 걸었다. 갑자기 주변
이 시끌거린다. 정적은 저만치 물러가고, 갑자기 당신이 다가
온다. 이 노래 정말 좋아요. 그렇지 않아요? 머리를 잠시 억
지 목욕으로 젖은 강아지 처럼 털며 Michelob Light 한 모금,
그리고 햇밤 또 한조각.


세 그루 소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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