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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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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런 노래 부르고 싶다.


BY my꽃뜨락 2001-10-02



윤도현 밴드에 매료된 딸, 아들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심심치 않게 윤도현의 음악 CD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
게 된다. 몇번 텔레비젼에서 본 그의 인상은 야무진
차돌멩이 같은 얼굴에 다이내믹한 힘이 느껴지는 락
가수였다.

젊음이 주는 넘치는 활력과 폭발적인 가창력에 힘입
은 그의 목소리는 오십을 바라보는 아줌마가 소화하
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 CD를 반
복해 듣다 보니, 우연히 애조 띈 멜로디의 노래를 듣
게 되었다.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난 왜 널 닮은 목소리마저 가슴에 품고도
같이 가자 하지 못했나...

그 노랫말을 알아채는 순간 괜시리 눈물이
앞을 가렸다. 묵직하게 가라앉는 목울대를
갈아 앉히고 귀 기울여 애절한 멜로디에 숨
겨진 노랫말을 새겨 듣기 시작했다.

듣고 또 들어도 가슴이 아파지는 이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밤늦게 돌아온 딸
에게 이 노래의 뒷이야기를 물었다.

엄마, 이 노래 참 슬프지, 어떤 여대생이 군대
갔다 의문사한 남자친구를 묻고 돌아오며 쓴
시에 임준철이 곡을 붙인 것이래...

그랬었구나, 어쩐지 처음부터 끝까지 슬픔을
가눌 수 없는, 듣고 또 들어도 눈물이 나는 이
유가 거기에 있었구나. 노랫말에 숨겨진 사연
을 안 순간부터 나는 더욱 열심히 그 CD를 챙
겨 듣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듣는 것이 성에
안차 내가 직접 노래를 부르기로 작정했다.

노랫말을 적어 들고는 아들의 코치를 받아가며
반복해서 노래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추석 다음
날, 멍청히 앉아 턱 처들고 텔레비젼만 쳐다보는
남편에게 먹을 것 하나 챙겨주지 않고 음정도 제
대로 맞지 않는 목소리로 계속 노래를 불러 제꼈
더니 드디어 남편이 들고 일어났다.

아니, 이 여편네가 미쳤나? 그 노래가 당신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당신은 최진희의 꼬마인형
이나 불러야 제격이라고...당장 입 다물고 송편
하고 과일 좀 내와...

에이 씨! 노래도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게 하고,
정말 성가신 서방이로구만. 당신 계속 시끄럽게
떠들래면 앞으로 내려오지 마...소리를 빽 지르
니 남편도 어이가 없는지 박장대소를 한다.

간신히 돼가는 것 같은데, 남편이 집에 있는 한
더 배우기는 틀렸다. 그런데 참 희한하지? 왜 그
렇게 멜로디 익히기가 힘들까? 나 스스로 비교적
음감이 뛰어나고 목소리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요
즘 젊은 얘들 노래는 따라 부를 수가 없네...

이제는 좋아하는 노래도 마음대로 불러지지 않는
나이가 되었구나. 트로트나 뽕짝으로 고래고래 소
리 지르며 관광버스 춤이나 추는 그런 아줌마는
정말 싫었는데,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노래
만큼은 남에게 빠지지 않았던 나도 별 수 없구나.

나이의 벽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내
가 세대차이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에서도 그 나이에 어울리는 몸짓이 있
다는 것, 처량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오늘.
그래도 나는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를 멋지게 부
르고 싶다.

꽃뜨락